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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Aug 14. 2019

14일: 한달살기

우리도 해요, 그 유행하는 "한달살기"

한달살기 대유행

휴가철이나 아이들 방학 기간이 다가오면 블로그나 각종 온라인 카페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도배하는 게시물들 중에 "#한달살기"에 관한 것이 정말 많이 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한달살기'는 짧게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지금 검색창에 한달살기를 넣어보니, #제주도 한달살기 #치앙마이 한달살기 #발리 한달살기 #하와이 한달살기 #말레이시아 한달살기... 이렇게 순서대로 관련 검색어가 자동으로 생성되었다. 다시 말해 이 다섯 곳이 한달살기의 '베스트 5'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일단 제주도는 번잡한 일상을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맛있는 음식과 휴식을 즐기기에는 최선의 선택이다. 무엇보다도 여권이나 비자와 같은 골치 아픈 증명 과정들이 생략되고, 언어와 음식의 장벽이 없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그 외에 치앙마이는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의 은퇴 후 정착지로 사랑받던 곳으로, 일 년 내내 온화한 고산지대 특유의 날씨와 관광객에게 최적화되어있는 아담한 도시의 인프라는 여전히 전 세계의 여행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다음으로 발리와 하와이는 바다가 아름다운 섬으로 일 년 내내 해양스포츠와 다양한 축제를 즐기기 위한 관광객이 넘쳐나는 '여행 천국'이다.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치안 수준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그리고 필리핀처럼 영어를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환경 덕에 영어 연수를 염두에 둔 가족들에게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는 추세다.


어찌 보면 나와 아이는 이번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일적으로 시각화되는 여타 한달살기와 그 결이 사뭇 달라 그렇지 분명한 한달살기이기는 하다. 보통 한달살기는 여름철 메뚜기처럼 관광명소를 띄엄띄엄 좌표를 찍어가며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머무르며 현지인들과 일상을 공유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여행자의 시선과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양발 걸치기' 전략의 여행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패키지여행이나 단기배낭여행의 아쉬움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더욱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닐라에서 한달살기

만약 누군가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달살기를 한다고 하면 아마도 아이의 영어교육 때문일 것이다. 반면 치앙마이나 발리에서 한달살기를 한다고 하면 그 이유는 실로 다양해질 수 있다. 필리핀 안에서도 세부나 보라카이와 같이 해변이 아름다운 곳은 오로지 휴양을 위해서 한 달간 즐겁게 머물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마냥 낙천적이고 느긋한 일상을 즐기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고 시끄럽다.

 

마닐라의 일상적 풍경


나는 이번 마닐라가 (기억이 맞다면) 다섯 번째이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해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매번 마닐라로 여행 올 때마다 길어야 3~4일 정도 머물렀다 급히 떠났었다. 그래서 주로 마닐라 베이(Manila bay) 부근의 호텔에 투숙하면서 풍성한 호텔 조식을 즐기고 리조트형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다가 거대한 복합 쇼핑몰 'SM 몰 오브 아시아(SM Mall of Asia)'에서 쇼핑과 식사를 즐겼다. 마닐라 베이 부근은 나와 같은 여행자가 유독 많은 곳이라 항상 활기차고 들떠있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여행의 흥취를 더욱 살려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마닐라 속의 신기루처럼 가공된 공간 안에서 1분 광고 영상 닮은 압축된 경험의 작은 조각들을 가지고 마닐라가 이렇다 저렇다 꽤나 잘 아는 것처럼 말하기도 했다.

 

화려한 마닐라 베이


지금 내가 '한달살기'를 하고 있는 이 곳은 마닐라 베이(Manila bay)에서 차로 30~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심 중의 도심 타기그(taguig city)에 속해있다. 특히 이 동네에서 나와 같은 외국인 여행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 눈에도 외지인으로 보이는 나와 아이는 그레이스 레지던스에서 나름 특혜를 누린다. 현지인들끼리는 살가운 인사나 밝은 미소가 다소 야박한 눈치인데, 나에게는 어김없이 반가운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우리 건물 1층에서 근무하는 경비원은 나를 볼 때마다 "안녕하세요~!"라며 살갑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덕분에 나도 입가에 경련이 올 정도로 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낯선 곳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는다는 느낌은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항상 반가운 미소로 우리를 맞아준 레지던스 직원


그동안 전형적인 관광객으로 짧게 머물렀던 마닐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이곳 사람들의 면면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하게 된 것이 이번 5번째 여행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현지인들의 일상과 섞이면서 낯설고 어려운 점들도 있었지만, 그 덕에 비로소 이곳에 있게 되었다. 이제 마닐라가 어떤 곳인지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느새 "#한달살기"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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