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버킷리스트 쓰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걸 쓴다고 이루어질까?'라고 생각하며 관심이 없었다.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지난 5~6년간 여행 한번 제대로 안 해보고, 연애는 개나 주라며 스님처럼 살았다. 코로나 터지기 전까지는 집, 직장, 교회, 도서관 이렇게 네 군대를 뺑뺑 돌면서 지냈다. 그마저도 코로나 이후에는 집, 직장이 되어버렸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아니 나의 영혼이 의도한 것일 수 있겠다. 그 시간 동안 책을 만났다. 책 속으로 뛰어들어 책과 함께 나의 내면을 여행을 했다. 신은 나의 병든 영혼과 육체를 치유하였고, 신이 선물해 준 책들은 나의 썩은 정신과 마음을 치유하였다.
이제 어느 정도 내면의 여행이 안정적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슬금슬금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제는 직장 동료가 남자를 소개해 준다고 하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망설였을 것이다. 어제는 바로 Yes!라고 외쳤다. 스님 생활의 끝인가? 뭔가 마음이 열리고 있는 것 같다.
7년 전에 나에게 버킷리스트라 함은, 인간적인 욕망과 쾌락의 리스트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관점이 바뀌었다. 내가 이 지구에 온 것은 경험을 하기 위해 온 것임을 조금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지구별에서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내가 마땅히 즐겨야 할 것이고, 그것을 가지고 나만의 것을 창조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란 걸 알았다. 그런 마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싶은 걸까?
1. 한적한 숲속에 2층 집 짓고 살기. 매일 삼림욕을 하며, 겨울밤에는 집 앞에서 불 피워놓고 군고구마 구워 먹기. 마당에서 커피와 케익을 즐기며 책 읽기. 집 안에서 나뭇잎과 흙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듣기.
2. 자동차 렌트해서 이탈리아 전국 일주하기. 9년 전 이탈리아 여행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가보고 싶음.
3. 하와이에서 1년 살기. 너무 좋으면 눌러 앉기.
4. 열대 지방, 개발되지 않은 자연에 가서 산림욕을 하고 바다와 강에 들어가 스노클링 하기.
5. 중국 역사 여행하기. 중국의 무협 영화에 나오는 장엄한 산들 보러 가기.
6. 작가 되기, 그림책 작가 되기
7. 일본 온천 여행하기.
9. 책이 가득한 나만의 서재 갖기
10. 강아지 키우기.
11. 한 달 동안 산속에 들어가 책 읽고 글만 쓰기.
12. 중국 고전들, 그리스 로마 신화, 로마인 이야기, 로마제국 쇠망사, 헤르만 헤세의 책을 마음 놓고 하루 종일 질리도록 읽고 글쓰기.
13. 근사한 파티를 준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초대하기.
14. 부모님은 크루즈 여행 보내드리고, 조카들은 디즈니랜드 보내주기.
15. 고층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아보기.
16. 정원을 갖고 아기자기한 식물 키워보기. 그 식물로 요리해보기.
17. 연애하기.
여기까지 내가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경험할수록 더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날 것 같다. 그때마다 추가해야지. 버킷리스트가 모두 이루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는 정말 이것들을 원할까? 이렇게 작성하고 나니 기분이 좋다. 경험들이여 나에게 오라. 나는 이제 준비되어 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