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나. 지금의 나는 10년 전에 꿈꾸던 내가 아니다. 10년 전 이맘때쯤에 나는 필리핀 마카티라는 도시에 있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한인교회에 새벽기도를 갔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하게 해 주세요"라고.
한국에 돌아와서 새로 구한 일은 유치원 일이었다. 그 뒤로 영어에 관심이 있어서 유아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였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알았다. 꿈이 원대했던 나는, 학원을 하나 차릴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일을 할수록 내가 이 일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사내정치를 못할 것 같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을 피곤해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책이다. 아이들에게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는 일을 하다 보니 세계의 많은 명작들을 만났다. 수업을 위해 작가와 그 책이 주는 교훈, 이야기의 서론, 본론, 결론을 나누고 분석하였다. 그 시간들이 즐거웠다.
그림책을 자주 접하는 아이들은 상상력도 풍부하고, 창의력과 예술적 감각도 발달한다고 한다. 나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글을 쓰면서 생각해본다. 신은 책과 거리가 멀었던 나에게 어린이 그림책부터, 아주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는 것을. 정말 섬세하신 분이시고,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 라고.
또한 일을 하던 중에 유치원 안에서 반강제 독서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어 3년간 고전과 역사, 심리 관련된 책들을 한 권씩 접하게 되면서 나라는 사람이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신기한 일이다. 신이 이런 식으로 책을 만나라고 유아교육기관으로 나를 보내신 걸까? 신은 어떤 방법으로든 나의 길을 인도할 수 있다. 그중에 내가 관심 있어하고, 그나마 어린아이의 순수한 에너지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나를 훈련시키길 원하신 것 같다.
책을 어느 정도 읽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었다. 밖으로 내뱉고 싶었다. 책을 접하고 4년째 되는 해 '씽큐베이션'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났다. 1년간 매주 책을 읽고 매주 독후감을 썼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하늘이 주신 운이고 기회였던 것 같다.
계속해서 내가 책과 인연이 닿고, 글 쓰는 것에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있는 것 같기도 같다. 기도의 응답이었드면 좋겠다. 내 앞에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걸어가 본다. 어떤 문이 열리든 그 문으로 들어가서 무엇이든 감사히 경험할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기도는 변함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일을 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