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사는 왜 자기분석을 받아야 하는가?
Skovholt 와 Ronnestad(1992)는 초심상담사에서 전문상담사로 발달해가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성찰이라는 것을 주장하였는데, 이 외에도 수 많은 학자들은 치료사가 발달해 나가는 과정중에 자기성찰은 가장중요한 핵심덕목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과연 자기 성찰은 그냥 되는 것인가....?
오늘 만난 내담자에게 역전이 감정을 느끼고 집에와서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하고 미안해 하면 그것이 자기성찰인가?
여기서 <역전이>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일반 심리학이나 상담학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뜻을 설명해 드리자면,,,,
심리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치료사가 내담자에 대한 감정으로 치료사 본인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나 문제를 환자를 향해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치료사가 딸보다 아들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집에서도 딸과 아들에게 차별대우를 하면서 자식들의 원성과 원망을 들으면서도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내오던 50대 여성 치료사가 있다고 상상해 보라. 마침 내담아동이 자신이 예뻐하던 아들의 어린시절 모습과 닮아서 그 내담자를 마치 자기 아들인양 예뻐하는 것이 <역전이> 감정이다.
반대로 자신이 미워했던 딸의 느낌과 비슷한 내담아동이 왔을때 그 여자아이가 괜시리 미워지거나 자신도 모르게 싫은 감정을 티를 낸다거나 아이에게 냉랭하게 대하는 문제 역시 <역전이> 감정이다. 내담자가 상담자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것은 정신역동학적으로 정상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역으로 치료사가 내담자에 대해 자신의 감정이 투사되는 것은
정상적인 치료적 관계를 해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치료사역시 인간이기 때문이 이러한 역전이 감정은 누구나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이
내담자로부터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상담사 자신의 무의식적인 갈등에 의한 산물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때가 있다.
이 둘을 구별하는 능력은 전적으로 상담사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것이 역전이를 이해하고 감시하는데 매우 큰 가치를 갖는다고 하였다.
Freud 또한 초기에 역전이의 부정적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자기탐색(self-exploration)이나
자기분석(self-analysis)을 시도할 것을 권하였고,
치료사는 자신의 교육분석 등을 통하여 이러한 역전이 반응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심리치료분야에서 역전이 경험이 어떻게 치료적 활용에 도움을 줄 것인가에 대해 많은 여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담사가 내담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역전이 반응을 자각할 수 있다면, 역전이는 내담자가 가진 문제의 이해를 돕는 치료적 도구로 매우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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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로 나는 자기분석을 받기로 결정하였고, 나의 정서적 이슈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분노'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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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일종의 성격장애라 표현하면 적절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착취적이고 가학적이다. 육체적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닌 언어적 폭력과 정서적 방치를 일삼으며 70대 중반이 가까운 나이에도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른다.
나는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 다소 그릇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키웠고
스스로 내가 어떤점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성인이 되었다.
엄밀히 말해서 겉으로 보면 유복한 가정에서 그야말로 '정상적으로' 큰 것 처럼 보였고
멀쩡한 남편과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나의 정서적 결함은 아이를 낳은 후부터 시작되었다. '엄마'가 무엇인지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채 숙제하듯이 아이를 낳고 연변아주머니에게 육아를 맡긴채, 나는 회사로 출근했다.
이후 나는 내 엄마와 비슷한형태의 정서적 방치를 아들에게 하기 시작했고,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세월은 흘러 아이는 유치원생이 되고
유치원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걱정되신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 일곱이었다.
곧 실장자리를 코앞에 둔 나의 디자이너 경력을 뒤로 한 채 나는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그만 두었고,
아이의 심리치료에 집중했다.
하지만,
전업주부라는 직업은 내게 맞지 않은 옷처럼 너무도 불편하게 다가왔다.
나는 곧 우울증에 휩쌓여서 아들은 심리치료실에 넣어놓고
혼자 밖에 카페에 나와 울면서 앉아 있던 날들이 쌓여만 갔다.
엄마가 정서적 우울과 불안정을 겪고 있는데 아이가 나아질리 만무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은 고통스럽게 지나가고,
나 역시도 심리상담을 받으며
우리 모자는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상담> 하는데에 썼다.
그러면서 부부사이는 악화되어 내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 속에서 내 아이가 받던 미술치료를 나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치료대학원에 진학하게 되고, 나는 그렇게 제2의 인생의 막을 힘겹게 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