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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17. 2020

곤명에는 이런 것이

북경과 서안에 이어 3대 관광지로 꼽히는 도시이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직장 동료들과 중국 곤명으로 향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들이라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미지의 땅으로 떠나기 전에는 항상 기대감이 있어 더 좋다. 출발 일을 기다리는 마음은 아마 그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여행의 매력인 것 같다. 우리 일행은 공항버스터미널에서 만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2층 식당가로 올라가 한식 전용 식당에 갔는데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 그런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고 늦은 시간에 곤명에 도착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전용버스를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가 묵을 호텔로 가는데 첫 느낌은 도시가 생각보다 깨끗하였고 가로수나 거리가 말끔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눈을 떴다 세면을 끝내고 7시가 거의 되어 2층 식당에 내려가니 벌써 많은 여행객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아침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뷔페식이다. 식사를 마치고 여덟 시에 버스에 올라 오늘의 첫 관광코스인 서산으로 향했다. 서산은 곤명 시내와 인접한 산으로 ‘백계산’이라 부르고, 곤명시의 서쪽 교외 곤명호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서산이라고도 부른다. 해발 2,500m, 길이 4㎞여의 녹색 옷에 덮인 서산은 굽이굽이 기복이 있으면서 마치 긴 머리를 전지에 드리우고 잠자는 미녀처럼 보인다고 ‘수미 인산’이라 부른다. 


우리가 탄 버스는 산 8부 능선까지 올라간 후 정류장에 내려놓았다. 다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멀리 곤명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호수가 엄청나게 넓다. 서산 거의 정상에서 리프트에서 내렸다.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용문이 있고, 삼청각까지 암벽을 뚫어 만든 좁은 굴을 통과했다. 굴은 1,333개의 돌계단으로 되어 있고, 이는 청나라 중기에 시작하여 72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정과 망치를 사용하여 깎아낸 자국이 선명하다. 이곳 서산의 명소로는 화정사, 태화사, 용문에서 삼청각까지 가는 암벽을 뚫어 만든 길, 삼청각 등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고찰들이 있다. 화정사는 원나라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명․청 무렵에 확장공사가 이루어졌다. 

삼청각은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묘로 절벽 위에 세워져 있으며 ‘공중의 누각’이라고도 불렸다. 용문에는 돌로 만들어진 용의 형상이 있었는데 지나는 사람들마다 용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있지도 않은 여의주를 꺼내어 주머니에 넣은 시늉을 하였다. 이렇게 하면 주머니로 재물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재물 많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모두가 바라는 소망인 모양인 것 같다. 우리 일행도 한 번씩 재물을 바라는 마음으로 용의 입에 손을 넣어보았다. 


곤명은 중국 남단 운남성의 성도이며 해발 1,850m의 운귀고원에 위치한다. 사계절 내내 꽃이 끊이지 않고 피어 꽃의 도시라는 별칭과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 때문에 봄의 도시라고도 한다. 여름에는 기온이 20℃를 넘지 않고 겨울에는 8℃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한족은 물론 회족, 백족, 묘족, 합니족 등의 20여 개 소수 민족이 어울려 살 고 있으며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곤명은 산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유서 깊은 사원과 건축물 등이 있었고, 중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인 면적 330㎢의 곤명호를 끼고 있다. 인근에 있는 대리, 여강, 석림, 서쌍판납 등의 관광지로 가는 중심지로 북경과 서안에 이어 3대 관광지로 꼽히는 도시이다.     

이어서 원통사로 향했다. 원통사는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버스로 10분 거리도 채 안 되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다. 산 전체가 공원으로 조성되어 원통산 남쪽 기슭에 있다. 이 사찰은 당나라 때 창건하였고, 팔각정을 비롯하여 기둥에 새겨진 황룡과 청룡이 정교하다. 원통보전 뒤편에는 태국의 건축양식인 동불전에 안치된 동불상은 태국 왕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금전으로 이동하였다. 곤명에서 7.5㎞ 떨어진 북동쪽 명봉산 꼭대기에 있고, 청나라 초기 오삼계가 세운 도교 사원으로 명나라 말에 창건되었다. 문, 액자, 석가래, 기둥에서 신상에 이르기까지 건물 전체가 금이 아니라 동으로 만들어졌다고 동와사라고 부른다. 명봉산에 자라고 있는 아열대림이 인상적이다. 석림으로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몸이 나른하며 졸리고 하품만 자꾸 나왔다. 모두들 그렇다고 하는 것은 고산증이란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날씨가 흐렸다. 이곳은 날씨가 흐려도 걱정이 안 된다. 아열대 기후라서 그런지 이렇게 흐리다가도 금방 햇볕이 나고 날씨가 좋다가도 금방 흐려지면서 비를 뿌리는 것이 이곳 기후다. 아침 8시에 석림을 향해 출발했다. 시내를 좀 벗어나니까 주위의 산들이 모두 돌로 된 산이다. 이곳 석림은 운남성에 위치하며 곤명에서 126㎞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이며. 2억 7천만 년 전 바닷속에 묻혀 있던 석회암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하고 오랜 세월 빗물의 침식으로 현재의 모양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도 바다 생물의 화석이 발견된다고 한다. 바위는 하나같이 형태가 기이하며 돌로 이루어진 숲 같다고 해서 ‘석림’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각기 크고 작은 괴석들이 빽빽하게 솟아 있는 이곳 광경을 보는 순간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한다. 석림을 따라 난 길을 걷다 보면 바닷속을 거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전체 0.8㎢의 면적 가운데 약 5분의 1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고, 대석림과 소석림으로 나뉜다. ‘석림’에 도착하니, 이곳에 거주하는 ‘사니족’이 전통의상을 입고 관광객을 맞이하여 흥미로웠다. 모자에는 양쪽으로 뿔 모양의 뾰족한 장식이 있다. 남자들이 그 장식을 만지면 결혼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의상과 복장이 특이해서 석림의 경치만큼이나 관광객들이 좋아한다. 석림의 관람코스는 먼저 대석림으로 가는데 석림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니족 처녀들이 대석림의 입구인 석병풍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준다. 여기가 석림의 처음이자 입구라는 표시로 석 병풍에는 石林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석 병풍 뒤로는 마치 미로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통로가 여러 군데로 통한다. 화살표를 잘 따라다니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대석림의 볼거리로는 연화봉을 끼고 있는 검봉지와 그 옆에 전망대인 망봉정인데, 이곳에 올라서면 대석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좁은 공간에 너무 사람이 많다 보니 사람들 틈에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좀 쉬었다가 다시 내려와 소석림으로 갔는데 소석림은 대석림에 비해서 크기는 약 5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이곳도 볼거리는 대석림 못지않았다.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곳 바위의 자태가 대석림에 비하면 적지만, 인공호수로 조화를 이루어 인위적인 맛이 풍긴다. 오전에 약간 비가 온 뒤라서 맑고 청명한 하늘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과 어우러진 기암괴석들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연녹색 녹음이 우거진 주변 환경들이 너무도 환상적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정경이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 되돌아 나오는 길에 식당에서 소수 민족 쇼를 보며 식사했다. 

다음날 관광코스로 한적한 시골길을 계속 달려서 구향동굴에 도착했는데 관광버스들이 많이 와 있는 것을 보니 관광지로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구운 오리고기로 점심을 해결하고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을 ‘정니곡’이라 하는데 길이는 600m이고 왕복하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좁다란 협곡을 배를 타고 지나면서 양옆으로 펼쳐진 비경을 만났다. 협곡을 다 돌고 나서 원래 길로 되돌아와 작은 길을 따라 계곡과 동굴이 깎아지른 듯하였다. 절벽의 높이는 70~80m이고 제일 좁은 곳은 겨우 20m밖에 안 된다. 협곡의 급류는 낙차가 크기 때문에 소리가 웅장하였다. 


협곡에서 안으로 한참 들어가면 입구와는 달리 동굴로만 이어지는데 층계를 따라 금교를 지나 와룡 동굴에 두 갈래로 갈라져 높이가 30m의 자웅 폭포가 있다. 이곳에서 50m쯤 가면 바로 구향 동굴에서 제일 독특한 풍경인 신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생긴 모양이 마치 산지의 다락밭 같은 형상이다. 동굴 마지막에는 커다란 광장이 있는데 수석들을 많이 진열해 놓고 팔고 있다. 굴을 빠져나온 다음에 다시 리프트를 타고 출발했던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고산지대라서 자외선도 많고 일조량이 많아서 에너지원으로 주로 태양열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보아 자연조건을 잘 이용하는 것 같다. 


오늘 저녁 식사는 조선족이 운영하는 ‘옥류관’이라는 곳에서 한식으로 삼겹살에 상추쌈을 맛있게 먹었다. 같은 민족이면서 분단의 아픔을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김치와 상추쌈과 된장을 대하면서 동족임을 확인하였다. 만경대 전시관에 들러 북한 여자 안내원의 말투에서 분단 세월의 이질감을 주었다. 이번 여행에서 음식도 사진에 담았으나 냄새는 담을 수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박물관과 화석전시관을 찾았다. 너무 웅장하고 고대 유물과 전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룡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는 재미도 있다. 이어서 꽃시장으로 향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중국인들의 섬세한 손 솜씨에 놀랐다. 여행이 끝났을 때 카메라에 기록된 파일 수는 400장이 넘었고 동영상도 10편이 더 되었다. 여행을 갔다 오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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