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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18. 2020

뻐꾸기 울음소리

키워준 어미 새를 언제 보았느냐는 듯이 멀리 떠난다

간편한 작업복 차림에 농부 모자를 눌러쓰고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농부다. 밭에 도착하면 입구에서부터 구석구석 지난밤에 얼마나 컸는지, 아니면 무슨 변고라도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첫 번째 임무다. 오늘은 더덕과 도라지가 더 푸르게 보인다. 들여다보니 아직 아침 이슬이 남아 있다. 작은 잎 위에 동그랗게 반짝이는 흰 구슬 모양의 이슬방울이 어찌나 영롱한지 혼자 보기가 아깝다. 


토마토가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에 묶어주다가 밭 모서리 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노라니 주위가 조용하다. 저쪽 산머리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 뻐꾸기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 모양이다. ‘뻐꾹뻐꾹’하고 우는 놈은 수컷이고 ‘삐삐’하고 우는 놈은 암컷이다. 저 소리는 자기 알에 전하는 소리일지도, 아니면 자기 알에서 깨어나오라는 신호일지도, 어쩌면 먹이를 열심히 받아먹으라는 응원의 소리일 것 같다.


뻐꾸기를 배은망덕한 새라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뻐꾸기는 스스로 집도 만들지 못하고, 알을 품지도 못한다. 그래서 기생하기 쉬운 상대를 고른다. 몸집이 작은 멧새, 개개비, 노랑때까치 등이 대상이다. 둥지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몰래 들어가 알을 낳아 맡긴다. 이 새는 색다른 생존 번식 방법으로 오랜 세월 번식에 성공하였다. 그 새가 지금 저 산속에서 번식하고 있다. 자기 새끼가 먹이를 받아먹고 잘 자라게 응원하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어미 역할을 하는 둔한 새는 뻐꾸기 새끼를 정성껏 보살핀다. 어미 뻐꾸기는 주변을 맴돌며 자기 알이 부화하기를 기다렸다가 부화하자마자 종일 천연덕스럽게 울어 새끼에게 진짜 어미가 곁에 있음을 울음소리로 알린다. 뻐꾸기 새끼도 먹이를 가져다주는 어미 새를 울음소리로 속인다. 먹이를 많이 받아먹기 위해 ‘삐약’ 소리를 쉴 새 없이 외친다. 어미 새는 잘 성장하고 있는 뻐꾸기 새끼가 마냥 대견스럽다. 그러나 뻐꾸기 새끼는 어미 새의 알과 새끼를 날갯죽지를 뒤틀어 둥지 바깥으로 밀어내기도 하고, 지금까지 키워준 어미 새를 언제 보았느냐는 듯이 멀리 떠난다.


뻐꾸기는 자신의 새끼가 알에서 깨어나 성장하는 과정에 멀리서 지켜보면서 자신의 울음소리를 새끼에게 들려준다. 이것은 자신의 새끼에게 너는 나의 자식이니 내 소리를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뻐꾸기는 태어난 자식에서 자신의 뿌리를 알려주고 완전한 뻐꾸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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