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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Jun 26. 2022

친구

친구가 없는 자는 한쪽 팔밖에 없는 인간과 같다

미국의 어떤 학자가 7,000명을 대상으로 9년간 단명한 사람과 장수한 사람들의 차이점을 연구하였다. 예상과 다르게 이색적인 결과가 나왔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친구의 수’였다. 친구의 수가 적을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구나 웃고 싶을 때, 외로울 때, 아플 때, 서러울 때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좋다. 


탈무드에 친구 이야기가 있다. 어떤 남자에게 물질, 인간, 선행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주인공이 죽게 되어 평소 가장 친했던 물질 친구에게 달려갔다.

“여보게! 물질, 내가 이렇게 죽게 되었네. 날 좀 도와주게. 염라대왕에게 몇 마디 해주게나.”

그런데 물질이라는 친구는 자네를 본 적도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주인공은 다음으로 인간이라는 친구에게로 갔다. 사정을 들은 인간 친구는

“그것, 참 안되었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무덤까지 함께 가는 것일세. 그 이상은 갈 수가 없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선행이라는 친구에게 찾아갔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자네가 나를 평소에 가까이하지는 않았지만, 자네가 한 것만큼만 염라대왕에게 가서 변호해 주겠네.”

이 이야기는 세속적인 가치를 좇아 천박한 인생을 산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말한다. 첫 번째 친구인 물질은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서로 친구라고 여기고 있다. 두 번째 친구인 인간은 사랑은 하고 있었으나 물질 친구만큼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세 번째 친구인 선행은 친구라고는 생각했지만 두 친구만큼 관심을 주지 않았다. 첫 번째 친구인 ‘재산’은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죽을 때는 남겨두고 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친구인 ‘인간’은 화장터까지는 따라가고 그냥 돌아간다. 세 번째 친구인 ‘선행’은 보통 때는 눈에 띄지 않으나, 죽은 후에도 함께 한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 항상 필요한 빵과 같은 친구, 그리고 가끔 필요한 약과 같은 친구, 또 피해야 할 병과 같은 친구가 있다. 완전한 친구를 찾는 자는 단 한 사람의 친구도 얻지 못한다. 오랜 친구 한 명이 새로운 친구 열 명보다 더욱 귀중하다. 친구가 없는 자는 한쪽 팔밖에 없는 인간과 같다. 


나는 묵은 친구들의 모임으로 정년퇴직 후에 대학 동기들이 모여 1주에 한 번씩 등산하는 모임이 있다. 오늘은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장으로 향한다. 김포를 지나 강화도에 이르니 해변을 따라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고 군인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른 아침에 대전에서 출발하여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고려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고려산은 고려 때,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천도한 후에 부르게 된 이름인데, 송도의 고려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곳에는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창건됐다는 천년고찰 백련사와 적석사 등 볼거리가 많다. 

  

안개로 덮인 고려산이 진풍경을 연출하며 우리를 기다리고, 안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물방울이 되고 한 알 두 알 떨어진다. 잘 정돈된 등산로를 따라 마음마저 흠뻑 젖는데 산에 오르는 발걸음은 변함이 없다. 촉촉한 봄비도 아니고 물먹은 바람도 없는데 봄 안개에 등산복이 젖는다. 상춘객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안개가 원망스럽다. 온 산이 미궁에 빠져 진달래꽃은 보이지 않고 앞사람 모습만 보인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한참을 올라 정상에 다다르니 넓은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정상에는 안개가 걷히며 최전방 휴전선이 내려다보이고,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정상 뒤쪽으로 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진달래꽃 풍경이 담긴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그 앞에서 상춘객들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앞쪽으로는 전망이 탁 트여 있고 옆으로는 바람막이 텐트가 있고, 평지에는 천막이 설치되어 햇볕과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배려하였다. 우리가 중앙에 자리를 마련하니 처음 보는 사람도 옆에 와서 앉고 먹을 것을 나누어 먹으며 안면이 많은 사람처럼 친절하다. 어떤 여자분이 다가와 다정한 말투로 여분 젓가락이 있으면 달라고 하여 한 친구가 바로 건네준다. 많은 사람이 여기저기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운치가 있다. 점심 식사 후 늘어난 등산객들과 걸음을 맞추고 안개 바람에 섞여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며 사진을 촬영하였다. 


우리는 미꾸지 고개로 내려갔다. ‘미꾸지’가 무슨 뜻인지 ‘미꾸라지’라는 말이 줄어서 된 말 같다는 사람도 있고 의견이 분분하다. 사연을 알아보니 본래의 의미는 ‘미구지美口地’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미구지’의 뜻은 ‘아름다운 입구의 땅’이라는 것이다. 미구지가 변형되어 ‘미꾸지’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로 예전에 이곳 지명을 ‘메곶’이라 불렀는데 오래전부터 동네도 예쁘고 꽃이 필 때면 더 예뻐 아름다울 미美자를 써서 미꽃이 마을이라 불렀고 그 이름이 변형되어 ‘미꾸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예전 어른들이 부르시던 ‘메곶’이란 말이 ‘메꽂이’로 변형되고 다시 ‘미꽂이’로 변하여 ‘미꾸지’가 되었다고도 한다. 미꾸지 고개와 적석사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조금씩 보이는 진달래꽃 무더기가 반갑기만 하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6호, 강화 내가면 고천리 고인돌’이라고 쓰인 안내판이 발길을 잡는다. 고려산 주 능선 길을 따라 여기저기에 많은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탁자처럼 만든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높은 곳까지 분포되어 있다. 고려산 주름을 따라 내려오니 안개가 조금씩 밀도가 낮아지고 하산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지 꿩 한 마리가 응원 소리를 낸다. 관광버스가 세워진 곳으로 내려오는데 버스정류장 표지판에 ‘산화’라고 적혀 있다. ‘산화’란 무슨 뜻일까? ‘메곶’이라는 말을 이두체로 바꾼 것 같다. 그러면 메꽃을 한문으로 직역하여 뫼 산山, 꽃 화花이다. 말 그대로 ‘산화山花‘가 된다. 

 

산기슭에 사는 할머니가 관광버스 옆에 안개를 뒤집어쓰고 각종 나물을 팔고 있다. 일행 중에 인정이 많은 사람이 우리 부모님들의 정성을 팔아준다. 우리는 안개로 덮인 고려산에서 아무것도 못 본 것이 아니라 안갯속에 묻혀 있는 우리 조상들의 발자취를 보았다. 오래간만에 촉촉한 안갯속에서 추억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도 멀었다. 일행이 많아 이른 시간에 저녁을 마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간단한 저녁 식사로 가락국수를 선택하고 단체로 주문했다. 휴게소 상인들이 음식을 빠르게 준비하는 솜씨에 놀랐고 친구들이 너무도 빠르게 식사하는 모습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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