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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Aug 20. 2022

해인사 소리길을 걸으며

소리(蘇利)길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한여름 시원한 계곡을 찾아 나섰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도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가 걷는 가야산은 선사시대 이래 산악 신앙의 대상으로서, 고려 팔만대장경판을 간직한 해인사를 품에 안은 불교 성지이다.


오늘의 해인사는 소리길로 시작된다. 얼마를 걷다가 유식한 친구가 말한다. 가야산 소리길이라 하는데 소리길은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런데 한자로 표기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자를 한참 찾더니 없다고 포기한다.  어학사전에 보면, 소리란 사람이나 동물의 귀에 전달되어 청각 작용을 일으키는 공기의 파동이라 하였고, 영어로 표기하는 sound가 아니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자 표기를 찾아보았더니 소리(蘇利)길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자 사전을 찾아 소리(蘇利)길의 의미는 찾아보았더니, 깨어날 소(蘇)와 이로울 리(利)로 소리(蘇利)는 이로운 것을 깨닫는다는 의미였다. ‘소(蘇)’자는 소생하다, 쉬다, 되돌아오다, 죽음으로부터 소생하였다는 뜻이 있고 ‘리(利)’는 화합하다, 통한다는 뜻이 있다. 현상적인 소리의 의미는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이며, 언어적으로는 극락, 천당 등 우리가 추구하며 가고자 하는 이상향을 나타낸다. 소리(蘇利)길은 나와 가족, 사회 민족이 화합하는 소통의 길이며 깨달음의 길이다.


옛날에 가야산에는 지금은 소실되고 없는 소리암(蘇利庵)이 있었고, 소리암 가는 길이라는 의미로 소리길이라고 명명했다. 서거정의 시문집에 가야산 소리암 충창가가 있다.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두 번 만들어졌다. 첫 번째 『대장경』은 고려 현종 때인 1011년, 거란의 침입에 맞서 77년 동안 만들어졌다. 1232년에 몽골군이 침입했을 때 불에 타 사라졌다. 그 후, 몽골군에 대항하기 위해 새로 《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1236년에 시작된 《고려 대장경》 사업은 1251년까지 이어졌다. 『대장경』은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경판은 국보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처의 가르침인 불경과 그것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을 보존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 전경. 대장경은 법보전을 비롯해 수다라장, 동사간고, 서사간고 등 모두 4개의 동에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조선왕조가 세워진 이후 지금의 해인사로 옮겨졌다. 그때 만들어진 건물이 장경판전이다. 1488년 조선 성종 때 완공됐다. 길이 61m, 폭 9m. 장식도 기교도 없는 소박한 목조건물이지만, 여기에는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할 건축기술이 담겨 있다. 해인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자, 서남향에 자리를 선택했다.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고, 겨울에는 햇빛이 풍부하게 드는 천혜의 장소였다 .


건물 구조는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남쪽은 아래쪽 창문이 더 크지만, 건물 북쪽은 위쪽 창문이 더 크다. 동남쪽에는 부는 바람이 건물 내부를 돌아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조다. 경판을 보관하는 판가는 건물의 길이 방향으로 배치해 공기가 이동하는 통로가 되게 했다. 이는 목판이 썩거나 틀어지지 않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접 가서 보면 아래위 크기를 달리 한 창문과 문살 하나하나가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오늘날의 첨단 건축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졌다. 바닥에는 소금, 횟가루, 숯을 차례로 깔았다. 경판을 보존하는데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장마철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건조할 때는 수분을 내보내 적절한 습도를 유지하게 했다.


과거 장경판전의 지붕은 청기와가 덮여 있었다. 청기와는 상당한 고온에서 구워지기 때문에 백금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낙뢰가 떨어져도 청기와가 피뢰침 역할을 해 목판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해인사가 수차례 화재로 소실되는 동안 장경판전은 한 번도 불이 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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