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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29. 2020

회룡포 트레킹

여유롭고 느린 모습이 더 정겹다

나에게 산행은 자연의 표정을 관찰하는 여정이다. 계절에 따라 순환하는 풍경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건강을 다지는 것이 산행이다. 오늘은 육지 속의 섬이라는 경북 예천군 회룡포에 도착하였다. 회룡포는 우리나라 최고의 ‘물돌이 마을’이고, 국토해양부에서 우리나라 명승 제16호로 지정하였으며, ‘1박 2일’과 ‘가을동화’를 촬영한 곳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폭염에 용주 팔경 시비가 서 있는 곳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비룡산에 올랐다. 비룡산은 학이 춤을 추듯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비룡이 꿈틀거리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왼쪽 아래로 회룡포를 휘감아 도는 내성천이 있다. 곱디고운 하얀 모래가 눈길을 끈다. 날씨가 무덥고 그늘마저 훈기가 돌며 조금만 올라가도 땀이 흐르는데 바람도 없다. 조금씩 올라가며 숲 속에 모여 30분마다 물과 간식을 먹었다. 등산길의 경사가 완만하여 여유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더니 느린 모습이 더 정겹다.


고려 때 이규보가 정안사에 들러 읊은 시 한 수가 8백 년의 세월을 이어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이 절이다. 우리는 잘 가꾸어진 사찰을 둘러보고 약수를 마셨다. 약수터 옆에 세워진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맑고 아름다움을 보라’는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장안사에서 봉수대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노라니 나무판에 시를 쓴 작품들이 양쪽에 드문드문 세워져 있다. 대부분 내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시로 친근감이 다가온다. 회룡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회룡대에 도착했다. 회룡대는 절묘한 위치에 조망대를 갖추고 있다. 정자 난간에 기대어 회룡포 마을을 보노라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남동쪽으로 회룡포가 한눈에 들어오고, 좌측 멀리 산 아래를 돌아 서쪽으로 흐르던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회룡포 주위를 돌아나가고, 제1 뿅뿅다리가 놓여 있고, 강물은 서쪽으로 구불구불 휘어지며 낙동강과 만나는 풍광이 자연만이 빚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원산성으로 향하니, 능선 따라 이어진 길은 해발 200m 정도의 야트막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붉은빛을 띠는 적송과 참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능선에 일명 ‘따뷔성’이라고도 불렸다는 원산성터가 있다.


정상의 평평한 곳에 자리를 마련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원산성을 지나니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삼강교가 소나무 숲 사이로 눈에 들어온다. 급경사 내리막에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낙동강이 나타난다. 그 길섶에는 거친 모습의 잡풀들이 군락을 이루고, 강한 햇살을 이기고 줄을 잇는 칡덩굴이 앞을 가로막는다. 쉬고 싶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정자가 나타나고 가는 곳마다 사연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용포마을에 들어서니 벌을 키우시는 할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시원한 물을 마시고 가라며 친절하게 대해주신다. 할머니가 관리하는 벌들은 뜨거운 폭염에도 쉬지 않고 계속 맡은 일에 열중한다. 할머니의 마음과 벌들의 부지런한 마음이 만나 더욱 분주하다. 용포마을에서 내성천을 건너 회룡포로 가는 제2 뿅뿅다리를 건넜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지난 1997년 예천군에서 강관과 철판을 이용하여 다리를 만들었다. 여름철 강물이 불어나면 철판 다리 구멍으로 물이 퐁퐁 솟는다고 '퐁퐁 다리'라 불렀으나 언론에서 ‘뿅뿅 다리’라고 잘못 보도된 이후 이름이 바뀌었다. 이색적인 기분을 안고 강한 햇볕을 받으며 발길을 재촉하였다. 쏘가리, 은어 등이 서식하는 강물을 내려다보니 깨끗한 모래가 그대로 보이고, 강 건너 벼논에는 우렁이가 여기저기로 기어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5시간에 걸쳐 회룡포 주변 산길을 걸으며 감성여행을 하였다. 우리도 나이가 들어가는지 아니면 더위에 쉬어 가는지 이번 산행은 맞춤형 산행이었다. 산행은 얼마나 높은 곳에 오르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가슴으로 오르느냐에 있었다. 중요한 것은 땀과 마음으로 보아야 하고 시간을 쏟으면 흘러가는 강물의 삶이 보였다.


자신의 실수를 부끄럼 없이 말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물돌이 마을’에 남겨놓고 주차장에 모여 먼저 도착한 친구가 건배를 제의한다. 모두 술잔을 들고 ‘건강을 위하여’를 외치며 시원한 막걸리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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