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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27. 2020

알맹이 채우기

알맹이와 껍데기는 하나다

걷기에 나서는 것은 평범한 운동이 아니라 껍데기에 알맹이를 채우는 과정이다. 나는 친구들과 걷는 동안 알맹이를 채우며 몸으로 산다. 어쩌면 걷는 것은 단순히 장소만을 이동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몸으로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다. 껍데기 속에 알맹이를 채우다 보면 단순히 풍광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만나고 인내를 즐기는 시간이 되었다. 내 알맹이를 채우는 날짜가 바뀌고 한 주를 보내고 한 해가 지면서 인생의 쳇바퀴가 돌아갔다. 묵은 친구들과 대화하며 걸으면 활동의 자유를 얻고 허술한 껍데기에 알맹이가 채워졌다. 껍데기에 알맹이를 채우며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가슴에 담고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두면 낯선 길이 낯이 익었다. 사실 몸과 마음이 잘 따라주지 못해 박력과 패기는 겁났다. 그러나 알맹이를 채우는 일로 발자취를 남기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껍데기와 알맹이는 형식과 내용이다. 껍데기와 알맹이는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다. 알맹이가 항상 알맹이로만 있지 않고 그 알맹이가 언젠가는 모양을 바꾸어 껍데기가 되기도 한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감싸고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을 방어해준다. 알맹이는 껍데기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고 삶을 이어간다. 이들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오만해지면 사랑이 깨진다. 껍데기와 알맹이의 역할을 잘 구분하고, 헌신하는 것이 사랑이다. 껍데기와 알맹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역할과 자식이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껍데기 없는 알맹이가 없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도 없다. 아무리 값비싼 껍데기라도 그 속에 무엇인가 채워져 있지 않으면 그저 빈껍데기일 뿐이다.


부모는 껍데기이고 자식은 알맹이다. 껍데기는 알맹이를 꼭꼭 감싸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맹이는 껍데기에서 슬며시 빠져나오고 껍데기는 흙으로 사라진다. 그것이 껍데기의 슬픈 사랑이고 인생이다. 껍데기가 늙으면 알맹이는 독립하고 껍질만 남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말 그대로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알맹이에 집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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