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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30. 2020

영덕 해변에서

바닷길을 걸으며 삶을 확인하였다

영덕 해변에 도착하니, 산꼭대기에 죽도산 전망대가 보이고 그 모습이 군더더기 없이 하얗고 깨끗하다. 바닷가에는 두 사람이 겨우 비겨갈 수 있는 폭이 좁은 현수교가 바다 위를 지나고 있었으며, 사람이 지날 때마다 출렁거렸다.  


축산항에서 해변을 걷기 시작한다. 해안초소 입구에서 4㎞ 쯤 걸어가니 초병들이 경계근무를 섰던 장소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 바다와 인접하여 숲길과 모래 길이 이어지고, 멀리 축산항과 죽도산의 등대가 보이며 밀려드는 파도는 갯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진다. 경정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의 영덕대게 원조마을 표지석이 있고, 굽은 해안이 나타나며 빨간 표지등과 하얀 등대가 기다린다. 해초 냄새가 풍기고 바닷길이 이어지고, 바닷가 방파제에 수많은 갈매기들의 서식장소가 있으며, 그들이 온 바위에 하얗게 얼룩을 만들어 흔적을 남겼다.

도시에서 듣던 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자연의 소리만 들린다. 바다 옆에 걷는 길이 있고 머리 위에 차도가 있다. 바다는 시간의 흐름을 남기고 눈앞에 보이는 자연을 말할 뿐이다. 파도와 햇볕이 스스로 부서지는 너른 바다를 보노라니 살아온 날들만 기억하는 내가 부끄럽다. 푸른 대게의 길에는 잡념을 지워주는 자연이 있고, 파도와 어우러진 숨결이 있다.


아름다운 석리에는 외진 길을 따라 시원한 정자와 아담한 해수욕장이 우리를 반긴다. 노물항에 도착하니 바위 곳곳에 걸터앉은 원색 차림의 낚시꾼들이 세월을 낚느라 말이 없다. 오보에는 오보교와 해안을 지켜주는 해수욕장이 있고 백사장과 어촌마을이 아담하다. 파도에 씻겨 둥근 모양으로 줄을 서 있는 수많은 바위들이 예쁘고 대탄 해수욕장은 규모가 작아서 더 예쁘다.

해맞이공원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파도소리 따라 숲 속을 지나 환상의 바닷길이 이어지고 망망대해와 숲이 동무가 된다.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은 바닷가 경치가 이국적이라며 셔터를 눌러댄다. 멀리 있는 바다는 하늘색을 품고 가까운 바다는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어 사진으로 완성한다. 이 길의 감흥을 담노라니 어느덧 강구항에 도착한다. 넓은 주차장과 주변의 경관이 평화롭고 말이 끄는 마차에 시간을 즐기는 관광객들도 눈에 들어온다. 산 밑으로 상가가 줄을 잇고, 횟집 앞에는 수족관이 마련되어 있으며, 대게와 물곰이 생을 이어가고 있다. 대게는 바다 밑바닥에 몸을 붙이고 살다가 어부들에게 잡혀와 여기 수족관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식당 수족관에 물곰을 들여다보니 동작이 느리고 흐느적거리고 방향을 빠르게 바꾸지도 못하며 진화가 덜 된 것처럼 행동이 둔하다.

5시간에 걸쳐 자연이 내어 준 13km를 걸었다. 우리는 내 마음의 길,  바닷길을 밟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걷기로 표현하였다. 오늘은 출렁이는 바다의 파도에 내 영혼을 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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