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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Sep 12. 2020

소록도 천사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가 그들의 고향이었다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진정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깊은 사랑과 희생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존중받는 꽃이 되고 대상이 된다. 삶의 목표에 따라 관심도가 다르고, 공헌한 정도에 따라 행위 가치도 다르다.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라도 잘할 수 있다. “누군가 하나의 인생길에 헌신하기로 하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그를 도와주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의 힘이라 부른다.”라고 ‘빈스 롬바르디’가 말했다.


하루도 봉사하기 어려운 일인데, 1960년대 초반 20대의 나이로 소록도에 찾아와 40년 이상을 한센병 환우들의 천사로 사셨던 마리안 나, 마가렛 두 오스트리아 수녀님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짠하게 한다. 그들은 낯선 소록도에서 한결같은 봉사활동으로 40여 년을 헌신하였다. 소록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젊고 아름다운 수녀님들이 소록도에 왔을 때의 모습이 백로 두 마리가 소록도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고 했다. 당시 소록도에는 수많은 한센병 환우들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간호사 자격 소유자였던 두 수녀님이 도착하자마자 초인간적인 삶을 시작했다. 당시에 소록도 한센병 환자 수는 6천 명에 달했고, 의료진은 겨우 5명에 불과하였으며, 수녀님들의 일과는 매우 분주한 날이 계속되었다. 두 수녀님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이 외부로 알려지게 되자 인터뷰 제의와 상을 수여하겠다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들은 응한 적이 없었다.     

회갑이 되어 주민들과 병원 측에서 감사의 표현으로 회갑 잔치를 준비하자 ‘기도하러 갈 시간’이라며 홀연히 사라졌다.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도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소록도까지 찾아와야 줄 수 있었다. 본국에서 보내오는 생활비는 한 푼도 남김없이 환우들을 위해 사용했다.   

  

연세가 드신 두 수녀님은 40년간 동고동락했던 한국인 간호사가 정년퇴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아쉽지만 큰 결단을 내렸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더 있어도 도움을 줄 수 없고, 방해할 것 같다고 판단하여 어느 날 이른 새벽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객선에 올랐다. 두 분이 배를 타고 떠나던 날에 멀어지는 소록도의 모습과 주민들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그녀들은 처음 소록도로 들어올 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소록도 주민에게 보내는 간략한 편지 한 통을 썼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전에 떠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였으며, 저희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용서를 빕니다.”    


뒤늦게 두 천사가 섬을 떠난 것을 알게 된 소록도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생이별로 좌절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성당에 모여 두 수녀님을 위한 기도만 하였다. 그렇게 천사 두 분이 소록도에서 천사의 꽃으로 숨어 피고 날아갔다. 두 분은 아무런 대가도 원하지 않았고, 소록도 환우들을 돕기 위해 찾아와 헌신한 두 마리 백로였다. 두 분이 외로운 섬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을 위해 몸소 보여준 헌신과 희생은 아름답고 성스럽다. 꽃다운 나이에 왔다가 할머니가 되어 떠난 두 분이 뿌린 사랑은 세상을 따뜻하게 한다.     


두 분이 살았던 집은 좁았지만 정갈하였다. 좁은 마루 한구석에 가재도구가 놓여 있고, 마음을 스스로 겸손하게 한다는 뜻의 ‘下心’이라는 글씨가 성모상과 함께 걸려 있었다. 꽃다운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조국인 오스트리아가 낯선 땅이 되었다. 그들은 오스트리아에서도 3평 남짓한 방 한 칸에 살면서 그곳에 우리나라의 숨결이 담긴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지난날의 소록도 생활을 꿈속에서 만난다.     


고흥 소록도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두 간호사에 대한 노벨평화상 수상 여부가 오는 2020년 10월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의 팬더믹 상황이 수상 여부의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참봉사를 실천해 온 마리안느·마가렛 간호사의 노벨평화상 추천, 전국 서명인은 100만 명을 넘었고, 노벨위원회에 101번째 평화상 공식 후보 추천까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런데 이후 변수가 발생했다. 코로나19의 팬더믹 상황 속에서 홍보는 물론 노벨위원회의 현지 실사 등 핵심 심사 평가 절차가 이뤄지지 못한 채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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