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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Aug 31. 2020

홋카이도 겨울여행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산은 온통 눈꽃 세상이다

 그해 겨울, 나는 삿포로 땅을 걸었다. 우리 조상들이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탄광에서 중노동을 한 곳이다. 그 옛날 우리 아버지들이 징용으로 끌려왔던 땅을 우리는 자유로운 몸으로 걸었다. 홋카이도는 한국인을 징용으로 끌어들이더니 이제는 손님으로 맞이한다.


어디를 가나 한국 사람들로 북적인다.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이 열렸고, 주민은 190만 명인데 1년에 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널려 있는 온천과 오도리 공원의 눈 축제와 산재한 스키장에 한국 관광객이 넘쳐난다. 눈은 자주 내리고 대지는 통째로 얼었다. 대한항공의 특별 전세기가 인천에서 치토세 공항과 남쪽의 하코다테 공항으로 많은 사람이 오간다. 눈 쌓인 경사면엔 스키로, 눈 축제로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2011년 2월의 홋카이도는 길 양옆에 1∼2m씩 눈이 지층을 이루고 있다. 아니, 우리 부모들의 한이 쌓여 있다. 영하를 밑도는 기온인데도 차들이 잘도 달린다. 알아보니 차도에 열선을 깔아 노면이 잘 얼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노천탕에서 바라보는 산은 온통 눈꽃 세상이다.


역사적으로는 가마쿠라 시대 이후 본토에서 홋카이도로 이주를 시작했다. 평야지대로 멜론 산지, 라벤더로 유명한 곳이다.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이라고 자랑하지만 서민들은 형편이 좋은 것 같지 않다. 동토에서 추억을 만든다. 지금도 활동하는 화산 분화구를 찾고, 일본인의 전통 옷을 입고 온천탕을 오가고, 호수를 한눈으로 볼 수 있던 전망대에 오르고, 호텔의 신선한 먹을거리와 큰 꽃게도 먹어보고, 지옥을 연상시키는 산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뜨거운 열기를 체험하고, 4만 년 전에 분화가 형성된 시코츠 주변을 산책하고, 민속박물관을 견학하고, 각종 기념품 가게와 맥주 공장 등을 찾아 추운 겨울에 따뜻한 추억을 만든다.    


우리 고향에서도 많은 사람이 징용 갔다. 삿포로의 미츠비시 테이네 광업소에서 약 1,000명의 광부를 모집하였다. 그들은 1940년 9월에 논산을 출발하여 원산을 거쳐 수송선으로 홋카이도에 가기도 했다. 그곳은 우리 민족에게 혹한과 원한의 땅이다.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14만∼15만 명이 홋카이도로 끌려갔다. 전체 노무자의 5분의 1 규모이다. 대부분 탄광과 광산, 토목공사 현장에 배치됐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노역했던 시기는 1944년 5월로, 1,300여 명이 중노동을 하였다. 해방 당시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우리나라 노무자가 최대 3만 명에 이르고 이들 중 30%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은 연락선을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로, 이어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탄광에 들어갔다. 지하 탄광 막장은 한국인들만 노역에 종사하는 공간이었다. 위험한 일은 전부 한국인들에게 맡겼다. 탄광 속에서는 우리말만 했고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투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오르내렸다. 징용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쌀도 입으로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이고, 콩깻묵 즉 콩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넣고 밥을 지어주었다. 깻묵 안에 어떤 때는 곰팡이가 필 때도 있었다. 새벽에 그것을 먹고, 밥과 단무지로만 싸준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막장으로 내려가서 먹고, 교대할 때까지 일했다. 그때 일하던 사람 중에 사할린으로 끌려가 사할린 교포가 된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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