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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Sep 25. 2020

산꽃 전설

할미꽃, 초롱꽃, 도라지꽃, 동자꽃의 전설

자생하는 이름 모를 꽃이 산골짜기에 지천으로 피었는데 그 종류가 300여 종이 넘는다. 산을 오르내리다 낯선 꽃을 만나면 생김새가 비슷하여 혼동되고, 꽃 무리가 신비감을 준다. 산에 핀 야생화에 수많은 사연과 전설이 있다. 산에 핀 야생화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사연을 물었다. 산 꽃을 볼 때마다 야속한 전설이 보인다.     


할미꽃은 4월경에 꽃줄기 끝에서 자주색 종 모양의 꽃이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난다. 흰 깃털로 덮인 열매의 모양이 할머니의 하얗게 센 머리를 닮았다고 할미꽃이라고 하며 한자어로 백두옹白頭翁이라고 한다. 꽃대가 구부러진 모양이 할머니의 구부러진 허리를 닮아 할미꽃이 되었다고도 한다. 꽃말은 ‘슬픈 추억’이고,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산골에 세 딸을 키우던 할머니가 세 딸을 결혼시키고 혼자 남았다. 첫째는 부자에게, 둘째는 똑똑한 선비에게, 셋째는 마음씨 고운 총각에게 시집을 보냈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딸들이 보고 싶어 죽기 전에 얼굴이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추운 겨울날에 지팡이에 의지해 꼬부랑 고개를 넘어 세 딸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첫째 딸집에 도착했지만 첫째 딸은 늙고 초라한 어머니가 못마땅하여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둘째 딸 집을 찾아갔는데 서방님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누룽지 한 주먹만 주면서 내보냈다. 한바탕 눈보라가 휘몰아친 다음날 눈을 치우던 셋째 딸은 자기 집 앞의 눈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하였다. 마냥 슬퍼하던 셋째 딸은 햇볕이 잘 드는 산언덕에 어머니를 묻어드렸다. 이듬해부터 어머니의 무덤가에는 자줏빛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그 꽃을 어머니의 넋을 기리는 뜻에서 ‘할미꽃’이라 불렀다.     


초롱꽃은 초롱 모양으로 흰색 또는 황백색이며 꽃말은 감사와 성실이다. 꽃은 하얗고 숫자도 많으며 초롱이 매달린 것 같다. 옛날 어느 마을에 종지기가 살고 있었다. 종지기는 어린 나이에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전쟁터에 나가 무릎을 다친 이후로 종 치는 일을 하였다. 매일 종을 쳐 아침에는 성문을 열게 하고 정오에는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저녁에는 성문을 닫게 하여 성 안 사람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삶의 보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포악한 성주가 부임하여 종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종 치는 일을 못 하게 하였다. 마지막 종을 치는 날 종지기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높은 종각에서 뛰어내려 죽었는데 그 다음 해부터 그 자리에 ‘초롱꽃’이 피었다고 한다. 


도라지꽃은 흰색 또는 보라색으로 종 모양이며 꽃봉오리는 풍선처럼 공기가 들어 있다. 옛날 강원도 어느 고을에 ‘도라지’라 부르는 예쁜 외동딸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라지 처녀는 마을 뒷산으로 나물을 캐러 갔는데 가난한 총각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후에 도라지 처녀의 눈에는 자나 깨나 총각의 자태가 아른거려 상사병에 걸렸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도라지의 부모는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골라 혼인날을 잡았다. 혼인날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도라지 처녀의 마음은 애달아 마침내 자리에 누었다. 도라지 처녀의 병은 점점 깊어져 혼인 사흘을 남겨두고 죽었다. 그녀는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죽거든 총각이 사는 길가에 묻어 달라고 했다. 부모는 처녀의 유언대로 그곳에 묻어주었다. 그러자 그해 가을부터 도라지 처녀의 무덤에 보라색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도라지 처녀의 이름을 따서 도라지꽃이라 불렀다.


동자꽃은 짙은 홍색의 꽃이 7∽8월에 핀다. 꽃받침은 원통형이고 꽃잎은 5개이다. 옛날 어느 암자에 스님과 동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산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눈이 녹을 때까지 며칠을 기다렸다가 올라가 보니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가 얼어 죽었다. 스님은 동자를 고이 묻어주었는데 이듬해에 동자가 얼어 죽은 자리에서 동자의 얼굴처럼 둥글고 붉은 꽃이 피었다. 후세 사람들은 그 꽃을 ‘동자꽃’이라고 불렀다. 


산꽃은 할 말도 많다. 산꽃은 청순함을 간직하고, 하나 같이 못내 아쉬운 사연을 안고, 그때 그 자리에서 꽃이 되어 저만치 피어 있다. 그 산 꽃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애절한 사연을 말하고 싶어 산골짜기에 숨어 있다. 비에 시달려도 산이라서 좋고, 모여서 함께 피어나니 외롭지 않고, 자기만의 사연이 있어 좋다. 해지는 저녁노을에 오솔길 벤치에 앉아 숨어 있는 산꽃 전설을 누군가에게 한 아름 안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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