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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Sep 27. 2020

슬픔이 남은 소록도

한 많은 사연이 파도 소리 되어 슬픈 음악이 된다

한하운의 시를 생각하며 소록도로 향한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의 남단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섬으로 사슴을 닮아 ‘소록도’이다. 육지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었고,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섬이다. 2009년 3월 3일에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승용차로 오갈 수 있어 편리하다. 소록도는 한센인의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교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발길을 옮기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한 맺힌 역사의 현장이다. ‘보리피리 휴게실’이 보인다. 한하운 시인이 인간사가 그리워 보리피리로 불렀던 마음이 휴게소 이름으로 남아 있다.     


휴게소에서 조금 올라가니 길가 안내판에 오래된 사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그 사진에는 길 양쪽에 일렬로 늘어선 행렬이 보인다. 말 그대로 탄식의 장소 ‘수탄장’이다. 부모와 미감 아동들의 면회 모습이다. 한쪽에는 어른들이 있고 다른 한쪽은 아이들이 서 있다. 도로 양쪽에 서서 눈으로 대신하는 애달픈 상봉이다. 보기만 해도 슬프다. 한 달에 한 번씩 눈물바다를 이룬 곳이다. 지금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억새밭 사이로 들려오는 것 같다. 사연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의 한이 더 애를 태운다.    


해변을 따라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안내소와 주차장이 있고, 병원이 있는 병사 지대와 직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길목에는 도양면 소록도 출장소와 우체국, 성당, 교회가 있고 7개 마을에 1,0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순록탑은 6·25 동란 중에 6천여 원생들을 보호하다가 인민군에 끌려가 학살된 10명의 직원과 목사님을 추모하기 위한 탑이다. 비문과 순직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소록도 중앙공원 구라탑 밑에 새겨진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와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가 있다. 소록도 사람들의 손으로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경관이 오히려 답답하다.     


나병은 피부와 말초신경을 썩게 하고, 손가락이 구부러지거나 시각 장애를 일으키며, 살과 뼈가 썩는 병이다. 그러나 이제 나병은 발병률도 낮고 치료도 쉽고, 불치병도 아니고 항생제로 나을 수 있는 3종 전염병이다. 지난날에는 나병에 걸린 한센인들이 산속이나 다리 밑 움막 같은 곳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고, 전염된다는 이유로 일반인들은 물론 부모 형제와도 이별하였다. 1936년 소록도에 국립병원이 생겼고 그때부터 한센인들을 이곳에 이주시켰다. 그들은 일제 강점기에 강제 노동과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살았다. 이 슬픈 섬에서 한하운 1919∼1975의 시 세계를 만났다. 나병 환자 한하운의 마음이 시로 남아 애통했던 삶을 전하며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하운의 시 ‘여인’이다.

눈여겨 낯익은 듯한 여인 하나/ 어깨 넓적한 사나이와 함께 나란히/ 아가를 거느리고 내 앞을 무사히 지나간다./ 아무리 보아도/ 나이가 스무 살 남짓한 저 여인은/ 뒷모양 걸음걸이 하며 몸맵시 하며 틀림없는 저…… 누구라 할까……./ 어쩌면 엷은 입술 혀끝에 맴도는 이름이요!/ 어쩌면 아슬아슬 눈 감길 듯 떠오르는 추억이요!/ 옛날엔 아무렇게나 행복해 버렸나 보지?/ 아니 아니 정말로 이제 금 행복해 버렸나 보지?/    

한하운이 나병에 걸리기 전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는데 나병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옛 연인이 곁을 지나가면서도 일그러진 자기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일그러진 얼굴에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들킬까 봐 담벼락에 숨어 지나치는 옛 애인을 보았다. 그때 괴로운 자신의 심정을 절규하듯 표현한 시가 바로 ‘여인’이다.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 먼 전라도 길/    

중국 베이징대학을 졸업한 한하운은 경기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였다. 1949년에 시집 ‘한하운 시초’를 간행하여 나병 시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26살에 강제로 소록도로 끌려갔다. 그때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이 시를 발표하여 많은 사람에게 감동했다. 소록도에 끌려가 절망과 고독을 삼키며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지까다비’는 우리말로 ‘신발 겸용 버선’이고, ‘다비’는 우리의 버선에 해당한다.    


한하운의 ‘파랑새’이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죽어서 파랑새가 되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대부분 문학에서의 ‘파랑새’는 희망을 상징하지만, 이 시에서의 파란색은 슬픔과 아픔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기가 죽은 뒤를 노래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그냥 파랑새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야 파랑새가 되어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노래도 부르겠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다닐 수도 없고,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괴로운 심정을 말한 것이 ‘파랑새’다.    

우리는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탤 수도 없다. 그들의 삶에 감정이입 없이 보기만 한다. 보고 들은 것만을 담기에도 내 가슴이 너무 작다. 그들은 고통이 삶이었다. 현지 주민의 안내로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는 그들의 거처를 엿본다. 잘 가꾸어진 교회와 적막한 성당과 주거 공간을 카메라에 담고, 바닷가를 따라 걷노라니 한 많은 사연이 파도 소리 되어 슬픈 음악이 된다. 무거운 마음을 파도 소리에 실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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