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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Sep 23. 2020

선운사 꽃무릇

꽃송이가 바람에 흔들리며 자기 사연을 전한다

선운산을 찾았다.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선운사를 품고 있는 선운산의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시냇물을 따라 이어진 아름다운 꽃길을 만난다. 가을을 재촉하는 꽃망울이 등산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그늘에 숨어 아침 이슬을 머금은 붉은 꽃이 머리만 내민다. 무딘 감각을 가진 우리를 고운 자태로 유혹한다. 그리움이 모인 꽃이 군락을 이루었다. 사람은 꽃을 구경하고 꽃은 그늘에 숨어 사람을 구경한다. 숲길을 걷던 친구가 말한다.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 모양의 뿌리라는 뜻에서 저 꽃을 ‘석산화石蒜花’라고도 해.”

“그렇구나!”

고즈넉한 숲에서 꽃무릇이 돌 틈에 피어났다. 이파리 하나 없는 꽃대 위에 가느다란 수술이 붉은 화관을 이룬다. 가녀린 꽃대 하나에 의지해 갈라진 꽃송이는 가볍게 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며 자기 사연을 전한다.


꽃구경은 하산하는 길에 하기로 하고 그냥 지나간다. 등산객이 많아 걷기가 불편하다. 선운사, 생태공원을 지나 소리재로 향한다. 한적한 숲길이 쾌적하다. 한참을 걷다 휴식하기 좋은 곳에 잠시 길을 멈췄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오이, 밤, 사과, 찐빵 등을 나눈다. 먹는 모습이 토끼가 마주 앉아 먹는 모습을 닮았다. 오늘의 특별 메뉴는 말벌의 애벌레이다. 건강에 좋다고 하니 너도나도 받아먹는다. 나는 아직 어떤 애벌레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몸에 좋다니 눈 한 번 감고 먹었다. 


낙조대에 올라 산행의 맛을 실감하고 천마봉, 도솔암, 마애불상, 장사봉, 진흥굴을 차례로 걸었다. 하산하는 길에 자상한 친구가 막걸리와 파전을 산다. 산속에 자리한 가게에서 은은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숲 속에 앉아 먹는 막걸리 맛이 시원하다 못해 달다. 선운산의 본래 이름은 도솔산이다.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이름이 선운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만큼 계곡미가 빼어나고 숲이 울창하다.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낙조대,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와 노닐었다는 선학암, 사자암, 만월대 등 이름난 경승지가 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꽃무릇의 붉은 군무를 다시 만난다. 그늘에 숨어 무리 지어 핀다고 붙인 이름이 꽃무릇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든다. 공원 관리인이 꽃무릇 군락지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안내한다.


사진을 찍다가 안내원에게 다가갔다.

“관광객들이 꽃을 촬영하려고 많이 오지요?”

“해가 떠오르기 전부터 많이 와요.”

“이 꽃에 대한 유명한 전설이 있어요?”

“선운사 스님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는 전설과 절집을 찾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한 스님이 짝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무덤에서 핀 꽃이 꽃무릇이고, 피를 토하고 죽어서 빨갛게 피어났대요.”    

애달픈 사연이 숨어 있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어 꽃말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그늘진 숲과 시냇가를 따라 수놓은 꽃무릇의 자태에 산새조차 숨을 죽인다. 선운산 관광안내소의 홍보요원이 상사화와 꽃무릇이 어떻게 다른지 말한다.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고 하는 꽃에는 상사화와 꽃무릇이 있어요.”

“차이점은 꽃 모양이나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지요.”

“상사화가 7∼8월경에 분홍색 꽃이 피고, 꽃무릇(석산)은 조금 뒤 추석 전후에 붉은 꽃이 핍니다.”

“두 꽃 모두 잎이나 꽃받침 같은 것이 없이 땅에서 불쑥 꽃대만 쭉 올라오며 꽃이 핍니다.”    


그렇다. 상사화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이고 꽃무릇은 일본이 원산지이다. 상사화는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외떡잎식물이다. 큰 나무 그늘 속에서 예쁘게도 피었다. 씨를 맺지 않는 불임의 꽃이다. 이 꽃을 사찰 인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스님들이 꽃무릇 뿌리를 탱화의 방부제로 사용하기 위하여 주변에 재배하기 때문이다. 뿌리에 방부제 성분이 함유돼 있어서 탱화를 그릴 때나 단청을 할 때 찧어서 바르면 좀처럼 좀이 슬거나 색이 변하지 않는다. 숲 속 길을 걸으며 생각할 때면 세상사 구애받지 않아 생각이 자유롭다. 오늘도 함께 걸은 숲 속에서 나 자신을 노래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성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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