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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Sep 22. 2020

열세 살 짐꾼

죽을 때까지 짐을 져야 할 운명이다

‘다큐멘터리 오늘’에서 ‘히말라야 소년 짐꾼, 소남이’를 만났다. 이들은 히말라야를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루크라’는 히말라야 아래, 문명이 닿을 수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이곳에서부터 사람의 두 발로만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대자연의 풍광을 감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관광객들에겐 추억의 길이지만, 이곳에 사는 짐꾼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날라야 하는 생계의 길이다. 네팔의 짐꾼들은 구경해보지도 못한 관광객의 사치품을 짊어지고 히말라야에 오른다. 인간의 두 발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등반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네팔의 짐꾼들은 그들의 짐을 나르며 생계를 꾸린다.     


에베레스트의 관문이라 불리는 ‘루크라’에 사는 열세 살 소남이도 짐꾼이다. 그는 아직 어린 나이 열세 살이지만, 환갑이 다 된 어머니와 사고로 발가락을 잃은 아버지를 보살펴야 한다. 짐꾼으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해발 3,440m 고지의 ‘남체’ 마을에 물건을 배달하면 돈을 벌 수 있다. 소남이의 꿈은 열심히 공부해 사업가가 되는 것이지만, 학교에 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소남이는 짐을 이고 히말라야에 오른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동상을 입어 발가락을 절단한 뒤로는 가정의 실질적인 생계를 어머니가 책임졌다. 그러나 환갑이 다된 어머니마저 관절염에 걸려 일을 나가기 어렵게 됐다. 이제 가족의 생계는 소남이의 두 어깨에 달렸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의 삶을 위해 그는 소년 짐꾼으로 길을 나섰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30kg의 짐을 지고 히말라야에 오른다. 그러나 처음 가보는 산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길이 험하고 아찔한 구름다리가 곳곳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급한 경사에 관절염을 앓던 엄마는 자꾸만 뒤처진다. 평생 짐꾼으로 살아온 엄마가 무릎이 아파서 일행과 자꾸 뒤처져 울고, 그런 엄마를 지켜보며 소남이도 속이 상해 운다. 고통을 호소하는 엄마의 눈물에 속상한 그는 급기야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하고 만다.     


등산객이 며칠 걸려 올라가는 험한 산길을 짐꾼은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해도 그들은 가난하다. 손에 쥐는 돈은 간신히 생계유지에 급급하다. 만약에 산에 오르다 넘어지거나 다치면 굶어야 한다. 평생 등짐을 지고 날라도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죽을 때까지 짐을 져야 할 운명이다.     


소남이의 엄마도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 사랑으로 살고 있다. 평생을 히말라야에서 짐꾼으로 사는 삶이 엄마의 자식 사랑이고, 짐꾼들의 운명이다. 이들이 받는 돈은 일주일에 한화로 15만 원 정도인데 식비 등으로 사용하고 남는 돈이 12만 원 정도 된다. 네팔의 인건비가 한 달에 15만 원 정도라고 하니 그곳에서는 많은 돈이다. 소득원이라고는 농사일밖에 없는 척박한 오지에서 힘든 일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짐꾼을 평생 직업으로 여기며, 가족의 행복을 책임진다.     


그들의 세월은 부자 관광객의 보따리를 등에 메고, 작은 지혜는 머리에 이고, 해지고 달뜨는 방향도 알려하지 않고, 짐꾼의 길만 간다. 높은 산에 올라 마을을 한눈에 담으며 힘겨운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그들은 산에서 내려오면, 삶이 계속되는 한 크고 작은 짐을 다시 등에 다시 진다. 그들의 등짐은 누구도 나눌 수 없다. 그들은 세상이 버겁다고 탓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생을 마치는 날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그 산에 묻히면 자연은 그들을 품는다. 그들의 삶 속에 우리의 삶이 보인다. 우리의 삶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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