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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문식 Oct 01. 2020

글을 묶으며

꼭꼭 숨어 있던 글 묶음이 옷을 입고 책이라는 열매가 되었다

수많은 삶의 매듭처럼 글에도 매듭이 있었다. 공감과 소통의 깨달음도 글감이 되고 매듭이 만들어졌다. 매듭마다 글로 수를 놓고 들여다보며 속마음을 엮으면 대나무 마디처럼 한 마디씩 자랐다. 한 땀 한 땀 글로 꿰매어 한 묶음이 되고 나만의 이야기로 글솜씨가 느리게 자랐다. 주소도 없는 글을 책 페이지마다 펼쳐 놓고 꼭꼭 숨겨 놓았던 글 묶음에 옷을 입혀 책이라는 열매가 맺혔다. 


지난날에는 모든 매듭을 확실하게 묵어야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삶의 매듭짓기가 이어지면 되는 줄 알았지, 다음에 풀 생각을 하며 묶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다. 그때는 묶고 풀고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인 줄도 몰랐다. 이 책을 엮으며 짐보따리를 풀어보니 추억뿐이었다. 세월은 지난날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지만, 경험과 지혜는 남아 글감이 되었다. 


삶은 이정표도 사전예고도 없고, 연습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작품 속에는 연습할 삶이 있었다. 취향에 따라 빨라진 계절이 오고 단풍잎이 떨어진 길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행복도 맛볼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동화 속 세상과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와 겁 없던 패기도 살아났다. 다 잊은 줄 알았던 동요만 들어도 힘이 솟았다. 이야기 세상에 공들여 탑을 쌓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삶의 지표를 찾고 있었다. 


‘나는 왜 책을 쓰는가?’ 몇 권의 책을 썼으면서도 아직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고 싶어서, 명성을 얻고 싶어서 아니면 독자에게 새로운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있었다. 글을 쓰는 매력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깨닫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책을 쓰며 미래를 꿈꾸고, 생각의 폭을 넓힐 수도 있었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쓸 때는 코로나19로 답답한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마음은 딱딱하고, 의미 있는 일이 적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이 뜸한 곳으로 산책하고, 집안에서 단조롭게 움직이는 일만 주어졌다. 미지의 여행길을 떠나고 싶어도 사방이 막혀 있었다.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시기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을 주고받는 ‘브런치’ 세상이 힘든 시간을 견디게 했다. 답답하고 불안할 때, 책과 인터넷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 손을 잡고 과거와 미래의 세상을 보고, 내 곁에 없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세상의 소리가 들리고 지난 삶이 보였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고요하고 두려운 생각도 났다. 두려운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편법이 넘쳐나고, 서로에게 담을 치고, 냉담하고, 보통 사람들까지 기회만 되면 차별을 즐겼다. 돈과 권력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타인에 대한 불신, 멸시, 차별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숨 쉴 때마다 우리 몸에 스며들었고, 이 냉담한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력했고, 주눅 들었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경계하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당당한 이정표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의 삶은 오늘처럼 내일도 여전히 굴러갈 것이다. 타인과 공감하면 보이지 않던 무엇이 어렴풋이 보이고, 복잡한 사회구조만큼 주변과 얽혔던 일이 하나씩 풀렸다. ‘거리 두기’ 세상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을 다하는 것이었다. 사회 문제의 시작점은 공감의 부재에 있었다. 실패한 경험이 적고 승승장구한 사람일수록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다. 관심, 공감, 애정 같은 감정이 조건 없는 즉각적인 감정 반응이었고, 신뢰는 시간을 두고 확인할 친밀한 감정이었다. 사람이 자기를 먼저 생각하면 가식이 나오고, 남을 먼저 생각하면 진실이 나왔다. 공감과 소통이 있으면 인간관계에서 깊은 정서적 유대감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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