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뉴스레터 14호는 영화 속 최애 캐릭터를 인터뷰로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시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영화 <미스 슬로운>(2016)에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분한 최고 로비스트 '슬로운'입니다. 슬로운은 일밖에 모르고, 업계 최고답게 통찰력이 뛰어나며, 이길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점이 좋아요?
사실 윤리적인 잣대로 슬로운을 평가하자면 문제가 많은 쪽에 가까워요. 슬로운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걸리적거리는 것은 가차 없이 치워버리는 사람이거든요. 동시에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일은 단칼에 끊어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총기 옹호 측 거물 의원이 슬로운을 찾아와 총기를 구입할 때 신원조사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을 높여 달라고 제안합니다. 거물 고객인 만큼 당연히 수락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슬로운은 면전에서 비웃으며 거절하죠. 총기 규제를 지지하기 때문에요.
저는 슬로운이 자신이 지지하는 법안만 맡고, 양심이나 감정 따위는 제쳐두고 그 일에 승리하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가 '신념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게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는 점이 킬링 포인트랍니다.
닮고 싶은 면, 닮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면?
슬로운은 능력 면에선 완벽에 가깝습니다. 로비스트답게 상대의 수를 꿰뚫어 본 뒤 어떻게 대비할지 빠르게 준비하고, 말도 정말 청산유수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몰입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릴 줄 아는 모습도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습니다. 커리어 쪼렙인 제가 정말 닮고 싶은 부분이에요.
하지만 슬로운은 승리에 너무 집착하는 나머지 함께 일하는 동료를 이용하고, 배신하기도 합니다. 뛰어난 협상 능력을 자꾸 동료들에게 쓰려고 해서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죠. 아무리 이기는 게 좋고,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점까지 닮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할 만한 배짱도 없지만)
슬로운의 MBTI를 맞춰본다면?
ENTJ일 것 같아요. 생각을 말로 표출하는 걸 좋아하고, 직관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논리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참고로 ENTJ인 실존 인물으론 고든 램지, 스티브 잡스, 나폴레옹이 있고, 가상 인물을 보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분한 미란다 프리슬리 편집장이 있네요. 어떤 사람인지 느낌이 오죠? MBTI로 놓고 보니 ISFJ인 저와 정말 다른 사람인데, 그래서 끌리는 건가 봅니다.
슬로운이 나의 상사가 되어 일할 기회가 생긴다면?
너무나 유능한 사람이지만, 상사로 두면 정말 정말 피곤해서 저라면 일주일 안에 잘릴 것 같아요. 밤낮으로 일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리서치한 내용은 달달 외울 수 있어야 정상. 직설적으로 말하는 탓에 마음의 상처도 가득 입을 것 같아요. 목표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언제 배신을 당할지도 모른답니다. 그래도 슬로운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한 3개월 정도 밑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슬로운에게 어울리는 음료를 고른다면?
슬로운은 무엇이든 아주 씁쓸하고 독한 게 어울리네요. 진한 에스프레소나 쓰리 샷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위스키나 보드카만 진짜 술로 취급할 것 같은 느낌? 몸 속 피까지도 진하게 농축되어 있을 것 같은 사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