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떠나지 않아도, 음식을 할 줄 몰라도 태리처럼 살 수 있어
나를 비롯한 모든 백수는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가 너무나도 부러웠을 것이다.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하다 지친 김태리(혜원 역)는 시골집으로 돌아가 사계절을 보낸다. 정말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그녀를 보면서 힘들 때 딱히 도망칠 곳도 없고, 음식도 못 하는 내가 괜시리 서글퍼졌다. 그녀처럼 자연에 파묻혀 지낼 순 없지만, 그래도 난 서울에서만큼은 누구보다 건강한 백수로 살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백수로서의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기 때문. 오늘은 내가 터득한 5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백수라서 힘든 사람들이 실천해보면 좋을 만한 방법들이다.
건강한 백수가 되기 위해선 운동은 필수다. 하지만 백수도 꽤나 바쁘기 때문에(밥 해 먹고, 집안일하고, 친구들 만나느라 얼마나 바쁜데!) 대단한 운동을 하긴 힘들다. 나 또한 처음엔 스쿼트며, 맨손 운동이며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꾀를 냈다. 간단한 운동을 일상 속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
백수의 아침은 나른하다. 평소라면 분주하게 나갈 준비를 하겠지만, 백수는 어차피 별 일정이 없어서 서두를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나는 느리고 게으른 아침을 방지하기 위해 일어나면 '눈뜨스'를 한다. '눈뜨자 마자 하는 스트레칭'이라고, 다노 언니로 유명한 제시 언니가 만든 스트레칭 루틴이다. (유투브에서 볼 수 있다) 다리를 쭉 늘리고, 팔을 쭈욱 늘리고, 허리를 쭈우우욱 늘리면 찌뿌둥했던 몸이 조금 풀린다. 한 일주일 뒤엔 이 기상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머리는 깨어 있어도 몸은 잠에서 깨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더라. 부팅이 한없이 느렸던 내 아침을 빠릿빠릿하게 바꿔준 것이 바로, '눈뜨스'다.
하지만 스트레칭만으론 건강한 백수가 되기 어렵다. 집에서 늘어지게 있는 만큼, 칼로리도 좀 소모해줘야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나는 서울 시민의 특권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그건 바로, '따릉이'! 서울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자전거인 따릉이는 정말 유용한 이동수단이자 운동기구다. 서울 전역에 꽤 많은 따릉이 거치대가 있어서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 이용하면 교통비도 절약하고, 기분도 상쾌하다. 신촌에서 망원동까지 이동할 때, 옆 동네를 놀러 갈 때, 종로에서 시원한 밤을 즐기고 싶을 때 따릉이를 타면 정말 꿀맛! 한 번쯤은 따릉이 앱을 다운받고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보길 권한다.
백수가 되면 자연스레 사람을 덜 만나게 된다. 아니, 사람을 많이 만나도 학교나 회사를 안 가서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백수가 되면 자의 반 타의 반 개인 시간이 많아진다. 그 시간이 괴로울 때도 있다. 나도 세상에 나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교류하고 싶은데. (하지만 실제로 세상에 나가도 우리가 그렇게 유익한 시간을 보낼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학교나 회사에 다니면 나만의 오롯한 시간은 아마 집에 돌아와서 씻고 자는 시간 뿐일 걸. 그러니 이때를 틈타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백수가 되고 사람을 덜 만나자 남는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풍요로운 시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글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 그렇게 브런치에서 '백수로그' 매거진을 시작하게 됐다. 재미있는 건, 나는 그냥 '백수'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시기에 왜 이렇게 행복감을 느끼는지 고민하면서 '백수라서 행복해요'라는 글을 썼고,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갈지 고민하면서 '내가 n가지 꿈을 포기한 이유, 이상 편 & 현실 편'이라는 글을 썼고,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각하다 보니 이 글을 쓰게 됐다. 나에 대해, 백수로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글로 기록하다보니 내 백수 시간은 더욱 풍성해졌다.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좋다. 사진도 좋고, 영상도 훌륭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나에게 집중해보고, 그것을 기록해보자. 아마 내가 꽤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면서 쌓아간다면, 꽤 큰 자산이 될지도.
오잉? 3번을 읽고 갸웃거렸을지도 모르겠다. 2번에선 사람을 덜 만나라더니, 이번엔 더 만나라고? 그렇다. 사람을 덜 만나기도 하지만 더 만나기도 해야 한다. 백수가 되면 사람들을 피하게 되니,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가 노력해서라도 더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백수 기간을 버텨나갈 용기와 원동력을 얻을 수도 있거든.
나는 함께 독립출판을 했던 친구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독립출판을 준비할 땐 거의 매일 만났던 친구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워 날짜를 정해서 만나기로 한 것. 그리고 우린 만나서 정말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일명 '영터디'와 '글터디'. 영문학과면서도 영어 회화에 자신이 없어 격주로 영어 회화 스터디를, 꾸준히 글쓰기를 생활화하고 싶어서 '금요일의 글쓰기'라고 부르는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나도 내 삶에 이런 생산적인 모임이 시작될 줄 몰랐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친구들과 갑자기 영어를 공부하거나 글을 쓰는 게 좀 낯간지럽기도 하잖아. 그런데 한 번 시작해보니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종류의 모임이든 각자 시간을 내 친구들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만나는 게 참 좋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내니 이 친구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내적 핑계도 있으니까!
대단한 모임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는 글터디도 혼자 글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냥 모여서 정기적으로 모여서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서로 돌려 읽으면서 피드백을 하는 것 뿐. 오히려 2시간만에 글을 써내느라 전에 쓴 글보다 완성도가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만나는 시간이 매번 유익하고 좋을 수는 없다. 글이 안 써지면 안 써지는대로(오늘 내 옆의 두 친구는 조금 헤매고 있다) 그냥 같은 공간에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자.
백수는 마음도, 주머니도 가난하다. 실제로도 수입이랄 게 없고, 모아둔 돈이 있어도 맨날 지출만 하니 심리적으로 압박이 올 수밖에. 하지만 그렇게 위축돼서 지출을 줄일 생각부터 하는 건 좋지 않다. 백수의 시간은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니까!
다들 각자의 취향이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동네, 나만의 소울 푸드, 사랑하는 공간, 애정하는 커피 등 무엇이든 좋다. 아끼지 않고 소비하길 바란다. 나는 집착적일 정도로 '공간'을 좋아한다. 식당이나 카페를 고를 때도 단순히 '맛'만 따지기보단 그곳의 음악, 분위기, 소음, 가구를 신경 쓰고, 내가 일하는 곳의 환경과 느낌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시간이 차고 넘치는 백수가 되어서는 따릉이를 타고 사람을 덜 만나면서 아낀 돈으로 여러 공간을 바삐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를 가서 그곳이 왜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음악은 어떤지, 어떤 의자가 내 체형에 맞는지를 고민하게 됐다. 이렇게 공간에 대한 취향 자산을 하나하나 쌓아가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적당한 볼륨으로 울려 퍼지는 음악을 편안해하는 사람) 어떤 곳에서 더 집중을 잘 하는지(다른 사람이 있어도 서로 잘 보이지 않아 신경 쓰이지 않는 공간) 나에 대한 소소한 정보도 쌓아갈 수 있었고.
평소에 갈 일이 없어서 방문하지 못했던 곳을 들르고, 먹어보고 싶었는데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어보고, 길을 걷다가 들어가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겨 들르지 못했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보면 알 것이다. 내 취향 자산이 쑥쑥 크는 것을.
백수에게 가장 취약한 건 '남들의 성공'이다. 사실 또래에 비해 성공한다고 해봤자, 내가 선망하던 회사에 입사한다든가 돈을 펑펑 쓰는 여행을 하는 따위의 것들이다. 하지만 사소하게 보이는 그 차이도 내가 백수일 땐 얼마나 부러운지. 나는 뒤처져 있고 정체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엄청난 걸 이룬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백수의 시기는 질투를 느끼기 쉽다.
그래서 나는 '눈과 귀를 막고 질투를 멀리하자'고 권유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잘나가는 친구들 이야기는 웬만하면 피하자. 늦은 밤 남의 인스타 염탐하기? 절대 안 된다. 나보다 잘난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면 귀를 닫자. 어차피 내가 백수인 이상 그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으니까,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한 뒤에 질투하기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때, 그때 충분히 질투하자.
사실 이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다. 나는 마치 그런 감정에 초연한 사람처럼 '질투하지 맙시다'라고 설교했지만, 사실은 밤을 지새우며 질투해 봤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준비하기를 포기했던 회사를 들어간 친구를 보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사실 내가 준비하는 직무와 그 친구의 일은 전혀 다른 데도 내 속을 얼마나 갉아먹던지.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는 그 감정, 다 안다. 그래도 멀리하려고 노력하자. 잠이 오지 않는 밤 갑자기 질투가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할 때면 차라리 영화나 예능 프로를 보면서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게 낫다. 평온했던 내 밤을 망치는 생각은 문 앞에서 쫓아버리는 게 답이니까.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긴 힘든 이 다섯 가지 방법들은 내 삶의 질을 한층 더 올려줬다. 무엇보다도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이 시기를 충분히 즐겨도 된다고 스스로 다독여주었던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모두, 언젠간 백수에서 탈출하게 된다. 어차피 지나야 할 관문이라면 이 시기를 조금 더 건강하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태리처럼 옛 친구들이 남아 있는 시골로 떠나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할 줄 몰라도, 우린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