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베를린 일기>
해외 여행은 꿈도 못 꾸는, 그래서인지 더욱더 여행이 고픈 요즘입니다. 저는 이번 여름 휴가를 에세이 <베를린 일기>로 대신하고 있어요. 이 책은 자신을 '아시안 국제 호구'라고 부르는 최민석 작가가 베를린에 머문 90일 동안 쓴 일기입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활기'보단 '고독'이 어울려서, 그곳에서 쓴 일기면 왠지 적적할 것 같죠. 하지만 이 에세이의 장르는 생활 밀착형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보통 에세이를 읽을 땐 내 마음을 건드린 부분에 밑줄을 긋고 페이지를 접지만, 이 책은 웃긴 부분에 자꾸 마음이 갑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11월 4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 술을 진탕 먹은 밤에 핸드폰으로 마구 쓴 일기입니다. 이게 정말 등단한 작가가 출간한 에세이가 맞나 싶지 않나요? 와이파이를 연결하기 위한 고난(그의 말을 빌리면 '게르만 정보 참사'라 합니다)부터 할아버지 이발사에게 초코송이 커트를 당한 사건(이건 '게르만 두발 참사')까지. 웃긴데 왠지 쓸쓸한 베를린 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자꾸 킥킥대며 읽게 됩니다.
여행 에세이지만 사실 제대로 된 여행 정보는 없습니다. 베를린에 대한 애정이나 호기심이 막 생기지도 않아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아무리 좋은 도시라도 기대 이하인 구석이 보이기 마련이죠. 이 일기에는 그런 모습도 가감 없이 적혀 있습니다.("이제는 왜 어떤 노선은 안내 방송이 안 나오는지, 왜 어떤 역은 안 서는지, 왜 한 승차장에 여러 노선의 열차가 번갈아 들어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지, 의아하지도 궁금하지도 않다. 그냥 이곳의 시스템은 이해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98p) 하지만, 그냥 너무 재미있습니다. 시간은 많은데 코로나 때문에 갈 곳이 없어 고민이라면 집이나 호텔 방에 누워 이 에세이를 읽어 보세요. 만화책 보는 기분으로 읽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