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호 감독의 <호우시절>
올해 제가 가장 좋아한 달달함은 차가운 청귤차의 맛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북촌의 한옥 카페 이채에서 마셨던 청귤차가 정말 달달하고 맛있었어요. 살짝 여운이 남는 듯하면서도 깔끔했던 새콤달콤한 청귤차의 향. 오늘은 그 청귤차를 닮은 영화, 허준호 감독의 <호우시절>을 소개합니다.
건설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동하는 출장으로 중국 사천을 방문합니다. 시간이 남아 시인 두보가 살았던 '두보초당'을 구경하던 중, 그곳에서 중국인 친구 메이를 우연히 만납니다. 메이는 동하의 유학 시절 친구이자 그가 좋아했던 여자이죠. 동하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 이틀 미루며 메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키웁니다. 메이도 오랜만에 동하를 만나 기뻐 보이지만, 진전되는 관계가 왠지 불편해 보입니다. 각자의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메이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요?
어떤 영화는 이야기보다 하나의 이미지가 깊이 남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지 10년 정도 흘렀지만, 두보초당 정원에서의 첫 재회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수없이 많은 대나무가 둘러싼 길을 걷는 장면의 미장센이 참 소박하면서 청량하고, 아름다웠어요. 마치 한옥과 참 잘 어울렸던 청귤차처럼요. 싱그러운 달달함을 느끼고 싶은 저녁엔 <호우시절>을 꺼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