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초 TV, <오, 여정: 봄/경주>
힘없는 퇴근길, 멍 때리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친 '여정'(이소희 역)은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다 꼬여 버린 이어폰 줄처럼 마음은 엉망진창입니다. 여정이 스스로 붙인 꼬리표는 '일 못하는 신입' '누군가의 전 여친' '철없는 막내딸'처럼 도무지 마음에 차지 않는 것뿐. 용산에서 내린 그는 겨울 바다를 보러 대천으로 갑니다. 하지만 온통 깜깜한 밤, 푸른 물결은 보이지 않아요. '이런 건 여행이 아니야.'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숙소에 몸을 누입니다.
여정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여행은 그가 속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이 투영된 발걸음입니다.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이로부터 '여행자'라는 새롭고, 기분 좋은 이름을 얻게 된 순간이기도 해요. 혼자 하는 여행에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지만, 여정은 손가락 주름과 그림자처럼 사소한 것을 관찰하며 흘러가는 풍경을 천천히 바라봅니다.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간 경주에서 여정은 서울을 동경하는 '경주'(오동민 역)를 만납니다. 경주는 현지 가이드를 자처하며 여정의 발걸음에 함께하지요. 잘 모르는 사이지만 어쩐지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 두 사람. 여정과 경주는 골목을 산책하고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오, 여정: 봄/경주>는 경주를 필름 사진처럼 인상적인 색감으로 담습니다. 기차, 바다, 경주 등 여정이 취미 삼아 짓는 삼행시도 인상적이고(취미로 삼행시를 짓게 된 사연은 작품에서 확인해 보세요) 여정의 독백이 마음을 차분하게 합니다. 마냥 즐겁지 않고, 때로는 외로운, 화려하지 않은 여행이라서 더욱 마음이 갑니다. 자신을 찾아 가는 여정은 제주와 부산으로 이어집니다. 여행의 의미와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오, 여정> 시리즈, 따뜻하고 나른한 조명 아래 경주편부터 감상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아름다운 색감으로 기억되는 여행지가 있나요? 여행을 통해 스스로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은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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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이 24호는 '한 해를 끝맺을 때 보면 좋은 콘텐츠'를 소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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