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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Mar 27. 2022

내향인의 고민, 나 오늘 사무실에서 몇 마디 했지?

회사에서의 사담은 어렵다.

평일 오후 2시, 점심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앉아있는 직원들에게는 가장 고역인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서서히 눈이 감기는, 춘곤증이 꽃가루 날리듯 퍼지는 바로 그 시간이다. 바로 이 시간,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나 오늘 너무 말을 안 했나? 나 몇 마디 했지?"




나는 사무실에서도 늘 조용한 편이다. 각자 자신이 맡은 업무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아이디어 회의처럼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활동이 없는 회사라서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조용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더 말이 없다. 특히 월요일이거나 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인사말과 업무 얘기를 제외하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특히 갑자기 옆자리 직원에게 농담처럼 건네는 사적인 대화는 정말이지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옷 새로 샀어요? 예쁘네요!" 라던지, "어제 뉴스 봤어요? 대박이던데!" 같은 말 말이다. 내향인의 회사생활이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 중 하나다.


내가 사무실에서의 사담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 직원이 바쁠까봐, 바쁜데 내가 말을 걸어서 민폐를 끼치는 것일까봐.

2. 대화를 유려하게 이끌어갈 재주가 없기 때문에, 한두 마디만 나누고 어색하게 대화가 끊길까봐.

3. 딱히 말 걸 주제가 떠오르지 않아서.

4. 딱히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예를 들어, 옆자리 직원이 지난 주말 예쁘게 머리를 하고 월요일에 출근을 했다. 그런데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그 직원을 열 번 넘게 호출하며 이런저런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옆자리 직원은 자리에 앉기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기느라 여념이 없다. 그럼 나는, '저 직원이 헤어스타일을 바꿨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그것에 대해 선뜻 말을 건네지 못한다.


'지금 바빠 보이는데, 내가 말 걸면 더 정신없겠지.'

'머리 예쁘네요,라고 해도 고마워요! 하고 끝날 거야.'

'머리를 어디서 했고, 얼마 주고 했는지는 사실 궁금하지 않아.'

'그리고 내가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 등등의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서, 결국 말 걸 타이밍까지도 영영 놓쳐버리고 만다. 혹자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피곤하지 않냐, 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놀랍게도 나는 위의 생각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한다.


그렇게 조용히 말 없는 오전을 보내고, 오후 두 세시 경이되면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나 오늘 말을 너무 안 했나?'


그런 생각은 종종 불안감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나를 너무 조용하고 재미없는 사람, 혹은 차가운 사람으로 볼까 봐 짐짓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 때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은 나의 불안감을 서서히 증폭시켜 왔다.

 

"문아야, 너 원래 이렇게 말이 없어?"

"여기 재미없어요? 진짜 말 없으시다."

"문아는 너무 조용해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감이 없네."


그 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표정, 말투, 혹은 대놓고 내지르는 비웃음을 동반했기에 늘 비수로 돌아왔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어 25년간 나 자신을 바꾸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180도 바꾸는 건 불가능했고, 들려오는 말들도 역시나 변함이 없었다. 나 딴에는 최대한 노력해서 말도 많이 걸고, 또 누군가가 거는 말에 최선을 다해 답을 해줬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도 늘 '말이 없다.'는 평가가 되돌아왔다. 정말 맥이 풀다. 내 자신이 '문제아'로 지적당했다는 사실에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의욕을 상실다.


사실 내향적인 사람이 많은 회사 특성상,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저런 말을 대놓고 들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속으로 나를 '말 없고 사회성 떨어지는 애'로 평가할 것이 두려운 나머지, 아직까지도 나는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이 즐겁게 사담을 주고받고 있으면, 왠지 무리에서 혼자 겉도는 주변인이 된 것 같아 숨이 막혀오고는 한다. 그렇다고 굳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달려 나가 대화에 끼고 싶지는 않은데, 또 끼지 않고 있으면 내가 무리에서 영영 겉도는 것 같아 불안감이 몰려오는 것이다. 가끔 나도 내 자신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우왕좌왕할 때가 많다. 외향적인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굴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영영 바깥으로 벗어나버리기는 싫고.


내향인에게 힘이되는 건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그럴 때 나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건,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는 직장 동료와 팀원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조용히 있다고 해서, "말 좀 해요!"라고 핀잔을 주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다가와 "많이 바쁘죠? 쉬엄쉬엄해요."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커피 마시러 갈래?" 하며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자는 제안을 해주기도 했다. "넌 묵묵히 할 일을 열심히 하잖아!"라며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는 선배도 있고, "나도 다른 팀원들이랑 안 친해."라고 공감해주며 위로해주는 동기도 있었다.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그 말 한마디가 주는 힘은 강하다. 내 입에서는 차마 쉽게 건네기 어려운 '말'임을 알기에, 그 말의 소중함이 항상 무겁게 느껴진다. 누군가 사무실에서 내 새 옷을 보고, "어머! 문아씨, 이거 너무 예쁘다. 어디서 샀어요?"하고 말을 걸어주면,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가 건넨 말의 온도가 얼마나 따스한지 알기에, 그 온도를 맞추어 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주변에 혼자 조용히 있는 직장 동료가 있다면, 한 번 다가가 따스히 말을 걸어보자. '왜 이렇게 조용해?'라는 말보다, '오늘 스타일이 조금 바뀌었네. 어울려요!' 하고 말을 건네보자. 아마 생각한 것보다 더 해사하게 웃으며 당신의 말에 반응해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차가운 '말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불안을 뒤로하고, 그 '말 한마디' 덕에 오늘도 따뜻한 퇴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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