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도 넓히고, 글도 좀 써볼까?' 하는 무모한 생각으로, 한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에 잠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매주 간단한 토막글을 쓰고 그것에 대해 서로 나누는 모임이었는데, 글 쓰는 모임이라 전반적으로 텐션이 높지 않은 탓에 내향인인 나도 퍽 잘 어울릴 수 있는 것 같아 꽤나 맘에 들었던 모임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날 발생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우리는 으레 뒤풀이를 가지게 되었고, 역시나 뒤풀이 자리도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나도 적당히 웃고 적당히 리액션해가며 나쁘지 않게 대화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어떤 여성분이 대뜸 내 팔을 잡더니 저런 질문을 했다.
"근데 진짜 말이 없으시네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으신 편이세요?"
모임 내내 면대면으로 대화를 나눌 일은 많이 없던, 끝내 친해지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갑작스레 오른팔을 잡힌 채로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을 들은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예의를 최대한 갖춘 말씨였지만, 속 내용은 예의의 예자도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될 것이 걱정되어 날 자연스레 화제의 중심으로 돌려주는, 배려 가득한 말도 아니었다. 순수한 궁금증이었을까, 사실 아직도 나는 그 말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아니요,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재미없어서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래요."
라고 맞받아치면 얼마나 좋으련만, 나는당황한 웃음만 허허, 하고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횡설수설 지껄였다. 속으로는 상욕의 상욕의 상욕을 더하면서.
그녀는 내가 당황하는 걸 지켜보더니, 나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는 둥의 말을 몇 마디 하고는 급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 싫었고, 너무나 집이 그리웠다.
속된 말로 기분을 잡친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향인으로 사는 29년간, 수없이 저런 말들을 들어왔다. 맥락도 없고, 배려도 없이 그저 조용하고 말없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말.
"와, 진짜 한마디도 안 하시네. 여기 재미없어요?"
"그러다 입에서 단내 나겠다. 말 좀 해."
"너는 그렇게 말 안 하면 안 답답해?"
내향인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 근데 정말로 난 이 말을 물어보는 사람의 의도를 모르겠다. 말없는 사람이 갑자기 저 말을 듣고, '아, 그렇게 보였어? 어, 미안해! 이제 내가 말을 많이 해볼게!' 하고 갑자기 말을 많이 하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조용해서 분위기를 흐리니, 그것에 대한 주의를 주는 의도일까? 애초에 6명이 넘게 모인 자리에서 나 하나 말 없고 조용하다고 그게 그렇게까지 민폐를 끼치는 행동인가?
저런 류의 질문은 그저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저런 류의 말을 꾸준히 들어온 나는, 정말이지 저 말이 너무 싫었다. 가만히 잘 지내고 있다가도 저 말을 들으면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지도 않은 사회성을 끌어올리고 올려 이 모임에 참여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내가 아직도 남들에게는 '말 한마디 없는 바보'로 보인 것 같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를 '조용한 사람'으로 평가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그들의 눈에 내가 몇 마디 이상을 했고 어느 정도 대화에 참여했음을 확실히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은 게 '술'이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 흥이 오르면 나도 조금은 더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는) 부쩍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느낌도 들고는 했다. 특히 입사 초반 회식자리에서는 '문아 사원은 너무 조용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어~'라는 말을 들을까 봐 부득부득 이를 갈며 모든 술을 다 받아마셨다. 술이라도 잘 받아마시는 깍듯한 직원이고 싶었고,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회사 사람들에게 외향인인 척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온 결말은 소주보다 더 쓰디썼다. 그렇게 술자리를 가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내가 술김에 내뱉은 말들을 후회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쉽게 던진 말에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내 말 뜻을 단단히 오해했을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불안했다. 더 이상 '조용한 애'라는 지적을 받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모든 회식자리에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내뱉는 내 모습을 복기하는 밤들이 나에게는 더 괴로웠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술기운에 사회성을 억지로 끌어올린 후에는 그 스트레스를 가까운 사람에게 풀어버린다는 것에 있었다. 귀갓길에 핸드폰을 붙들고 친구들에게 취중 카톡을 보낸다던가, 썸남이나 애인에게 '지금 나 데리러 와라.'라고 막무가내로 통보하는 식이었다. 친구랑 신나게 혀 꼬인 소리로 전화를 하다가도 마음이 수틀리면 훽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언급하기 껄끄러운 일련의 취중 사고(?)들을 겪고, 난 더 이상 술의 힘을 빌려 '외향적인 척'하는 것을 관두었다.
말을 쉽게 뱉고 주변 사람들을 상처 주는 것과, 바보 같아 보여도 말을 삼키는 것. 난 둘 중에서는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마음을 고쳐먹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말이 없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혹시나 저런 류의 질문을 듣고 상처받았을 내향인들이 있다면, 하나만 확실히 알아두자. 저건 저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예의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기죽기를 바라서, 혹은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든 생각 없이 하는 질문은 맞다. 솔직히 말이 많은 사람에게 '야, 너는 왜 이렇게 시끄러워?' 혹은 살집이 조금 있는 사람에게 '야, 너 요새 왜 이렇게 살찌냐?'라고 묻는 것과 똑같다.
다음에 저런 질문을 들으면, 난 꼭 이렇게 되받아쳐줄 것이다.(라고 하고 실제로는 또 못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