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에 의하면, 난 애기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만 보면 빽빽 울어댔다고 한다. 명절날 친척을 만날 때나, 낯선 사람들이 집에 놀러 올 때면 늘 엄마 뒤에 숨기 바빴고, 또래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야!' 하고 말을 걸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별명은 '벙어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난 6년간 학교에서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그것이 불안장애의 일종인 '선택적 함구증'임은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그 조그만 동네, 반이 4개밖에 안 되는 학교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괴롭히는 아이는 없었지만, 아이들은 철저히 나를 자신의 아래에 있는 '말 못 하는 불쌍한 애' 정도로 취급했다. 그 어린 나이임에도, 급식을 일부러 콩알만큼 주면서 보란 듯이 샐쭉거리던 혜주, 내가 돌려달라는 얘기를 못할 것을 알고 내 펜을 아무렇지 않게 가져가며 옆 친구와 키득거리던 유경이의 눈빛에서 나는 충분히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학교에서 바보취급을 당했던 사실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문아가 친구가 없어요.'라고 고자질(?)하면서 엄마에게도 들키게 됐다. 그날은 내 뇌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크게 혼이 났었다. 그 이후로 초등학교 생활 내내, 내 생활기록부에는 늘 '차분함', '조용함', '말이 없음', '친구들과 원만하게 어울리지 못함', '의사표현을 잘하지 못함'. '묵묵하게 맡은 일을 함' 등의 문구 따위가 적혀있었고, 그것을 받아 읽는 엄마의 표정에는 늘 어두운 낯빛이 드리워졌었다.
사회생활은 잘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런 걱정 따위를 한 것이리라. 사실 나도 내 성격이 죽도록 싫었고, 내가 이따위 성격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해왔기에, 부모의 그런 걱정이 기우였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때때로 숨이 막혀오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 '문아는 왔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을 건넬 때 굳어버리는 엄마의 표정, 등교하는 날이면 매일매일 친구들과 몇 마디를 했는지 전부 보고하라는 친언니의 다그침. 그 속에서 '나는 틀린 애'라는 관념은 내 내장 하나하나에 뿌리를 단단히 내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가족들을 걱정시키는 골칫거리가 되어있었음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고, 나는 무심하게도 어른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학교생활 속에서 인정을 받고자 시작한 공부가 꽤나 적성에 맞았는지 명문대를 입학했고, 부모님이 어깨를 으쓱해도 될 정도의 직장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제 어딜 가나 내 성격보다는 학교와 직장이 먼저 내세워지니, 그 이후로는 조용히 있는 게 오히려 겸손한 것으로 치부되어 조금 편해지기도 했다.그 거지 같은 경멸하는 눈빛들이 사라지니 사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그 어릴 적 한 구간을 견고하게 지키고 있던 생각들, '나는 틀린 애'라는 생각은 한동안 나를 지배했다. 당연히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순간순간, 내가 '내성적'이라서, 내가 '소심'해서,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을 그르쳤다는 자괴감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왔다. 그 생각은 요즘도 가끔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오곤 한다. 최근 남자친구가 자신의 친구들을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때였다.
"... 이번에는 좀 그래. 다음에."
남자친구의 서운해하는 낯빛이 눈에 들어왔다. 억지로 괜찮다고 했을 때 그날 하루 종일 걱정에 휩싸일 내 모습과, 모임에 나갔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벙거리는 바보 같은 내 모습을 견디기가 싫었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친구에게, 또 남자친구의 처음 보는 친구들 앞에서 다 발가벗겨져 보여지는 것이 새삼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꼭 발표를 앞둔 초2 때의 내 모습 같았다.
그 이후로 한동안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내가 그저 이렇게 꼬여있지 않고 해맑은 사람이었다면, 새롭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늘 밝은 사람이었다면. 괜한 서운함을 만든 것 같아, 또 그 예의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미안했다. "그래!"라고 앞뒤 생각 없이 응할 수 없는 여자친구인게.
그 누구에게나 처음부터 해맑은 사람으로 조건 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성격까지도 배려해줄 정도로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들을 남몰래 짝사랑한다.
4개월 정도 나갔던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누가 봐도 인기쟁이에 외향인일 것 같은 여성분을 만났다. 옆에 슬쩍 있기만 해도 행복한 기운이 분사되어 향기를 풍기는 것 같은, 정말 '해' 같은 사람이었다. 그분은 MBTI 공식 상담사 자격증이 있으신 분이기에, 나는 그분에게 MBTI 검사를 받게 되면서 그분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그녀는 내 검사지를 받아 들고, 대뜸 이렇게 말했다.
"문아님은 INFJ 이시네요. 제가 INFJ 들 너무 좋아해요!"
당시에는 내가 INFJ라는 것이 와닿지 않아서, 그녀의 그 말을 그저 시큰둥하게 들었었다. 그냥 으레 하는 인사치레겠지. 내 복잡하고 징그러운 이 성격을 누가 좋아해,라고 생각하고 넘겼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느낀 건, 우연히 그녀를 포함한 모임원 4명 정도가 카페를 갔을 때였다. 나는 9시부터 온라인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가 있었고, 그녀 또한 그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아무개의 '그거 그냥 틀어놓고 출석만 하고 놀자!'라는 말에 '그래, 그러자!' 했고, 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면 나도 출석만 하고 계속 같이 놀아야 하는 건가, 난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그녀가 날 보면서 물었다.
"문아님은 강의 들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문아님은 집에서 강의 집중해서 듣고 싶으실까 봐요! 불편해하지 말고 말씀해주세요!"
덕분에 나는, '저는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카페의 층계참을 총총 내려오면서, 나는 때아닌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그 순간 그녀가 나의 INFJ스러움을 고려해서, 내가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빠질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자신의 남자친구도 INFJ인데 말을 너무 예쁘게 하고 속이 깊다는 얘기와, 문아님도 글을 너무 잘 쓰시고 표현이 풍부하다는 등의 칭찬을 끊임없이 해주었다. 그녀의 말에서 진심이 묻어 나왔고, 나는 27년을 살면서 처음으로 내 성격도 어느 순간에는, 어느 누군가에는 괜찮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내 성격의 장점을 하나하나 찾아내 보여주는 그녀가 고마웠고, 어쩌면 그날 이후로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았다면, 내가 나 자신을 '틀렸다'라고 빗금 그어버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서도 세상에 모든 빗금 그어진 사람들을 다 끌어안아주는 그녀의 그림자 없는 삶이 한편 부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