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품기] 출산 전, 마지막 벚꽃.

시릴까, 기쁠까?

by 백문아

올해도 우리 집 앞 골목에는 어김없이 벚꽃이 만개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우리 동네가 일명 '벚꽃 맛집', '핫플'로 유명해지며 꽃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고, 경찰차가 끊임없이 순찰을 돌며 '차도에 계신 분들 인도로 올라서주세요! 차가 못 지나갑니다!'하고 끊임없이 사이렌을 울려대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고 꽃은 꽃인지라 눈에 급히 바르기에도 참 예쁘장한 풍경이었다.


남편과 결혼하며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벌써 세 번째 맞이하는 꽃이지만 매번 꽃을 볼 때마다 감회가 남달랐다. 첫 해는 '내가 결혼을 하다니', 두 번째 해에는 '작년에 이어 이 풍경을 또 보다니'였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봄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어쩌면 조금은 벅차고, 조금은 다행스럽고, 괜스레 설레는 감상에 가까웠다.

올해는 남편과 함께 청춘들이 즐비한 거리를 거닐며 둘이 내내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우리가 애기가 생기기 전 보는 마지막 벚꽃이라니.


마지막 봄이라니.'


'마지막'은 늘 단어 말미에 서운함을 함께 가져온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하기 싫은 일이었든, 곧 끊어내고 싶은 인간관계였든,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치 창고 깊숙이 숨겨놓은 어릴 적 앨범을 꺼냈다가, 빛이 바래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사진 한 장을 쓰다듬듯 저릿한 느낌이 온몸을 스치우곤 했다. 인생에서의 어떤 장면이든 넷플릭스 보듯 다시 되감을 수 없고, 지금 내가 보는 이 씬과 유사한 그 어떤 씬도 다시는 내 삶에서 재생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는 아쉬움은 졸업, 이직, 이별, 이사 등 그 모든 순간에서 늘 모래알을 씹는 듯한 씁쓸함을 남기고 갔었다.


올해의 봄은 나에겐 마지막의 의미가 깊지만, 또 여느 때의 마지막과는 사뭇 다르다. 아기가 생기기 전 마지막 봄, 마지막 벚꽃놀이! 남편과 벚꽃길을 걷는 내내 만삭처럼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레 '마지막 자유야~'라고 뇌까리다가, 또 서로 짐짓 웃어 보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가야, 내년에는 셋이 함께 보자~'. 그러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뿌듯해진다. 마지막이 자랑스러워진다. 승전보를 움켜쥐고 고향을 향해 달려오는 장군처럼 세상을 다 가진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찬란한 마지막이라니. 또 내년이 기대되는 마지막이라니.


마지막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요즘이 행복하다.


마지막이 아님에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에 괜스레 마음이 샐쭉해져, 울먹거리는 눈망울로 빠르게 꽃들을 스쳐 지났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청춘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오히려 외줄 타기를 하다 정 가운데 우뚝 서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시작점과 끝점을 초조하게 찾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근에 내가 20대를 지나올 때 꾸준히 쓴 다이어리를 다시 정독하였는데, 대체 뭘 그렇게나 많은 항우울제와 수면제로 점철된 삶을 살았는지, 왜 그렇게나 이상한 인간관계를 끊어내지 못해 힘들어했는지 새삼 20대의 내가 가엽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또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안정적인지, (임신을 하면서 수면제는 강제적으로 못 먹게 된 것이지만) 약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건강하고 다행스러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마지막이 아닐 때에도 울었고, 마지막이라고 느낄 때는 삶이 무너질 듯이 사무쳐하며 울었다. 마지막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불안한 20대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한 30대 초반을 지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펴기 전 마지막 봄이다. 이제는 마지막이 두렵지 않다. 마지막 장면을 마친 후 눈앞에 수많은 관객의 기립박수를 앞두고 커튼콜을 나서는 연극배우처럼, 당당하고 굳센 모습으로 다가올 날을 맞이해야지.


아가야, 내년엔 셋이 같이 보자!

작가의 이전글[아가품기] 임신 31주차, 어느날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