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로 볼(low-ball) 전략에 대하여

by 문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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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든 전세든, 아니면 매매든 이사할 집을 알아보는 건 상당 한스 트레스다. 운이 좋아서 성인이 된 이후로 이사 경험을 그다지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실제 집 값에 맞춰서 정확하게 가격을 제시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봐도 그렇고 공인 중개사 유리창에 있는 광고를 봐도 마찬가지다. 꼭 실제 시세보다 낮은 금액을 표시하면서 고객을 유인한다.

아파트를 알아보는데 동네도 가격도 좋다. 반가운 마음에 실제로 그 동네에 가서 실제 시세를 알아보면 전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 그 단계에서 멈추면 되는데 지금까지 알아본 노력과 직접 방문한 것 등을 생각하면 그냥 돌아올 수는 없다. 마침 공인 중개사도 내 마음을 아는지 넌지시 물어본다. “고객님께서 보신 집은 그 사이 매매가가 좀 올랐고요. 대신 좋은 가격에 나온 것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이런 상황에서 “아니요 안 볼래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우니까 일단 발을 담갔으니 뭐라도 결과는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더 집을 알아보는 데 적극적이 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이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런 속 사정을 더 잘 안다. 언젠가 무심코 들어간 모델하우스 에그만 나도 모르게 정신이 홀렸다. 당시 살고 있던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한 공간에 산으로 둘러싸여 맑고 쾌적한 주변 환경. 더군다나 교통은 편리한데 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주거 공간. 낮이면 따뜻하고 환하게 집을 비쳐주는 햇빛. 그리고 모델 하우스를 한 번이라도 둘러본 사람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일단 들어가면 그 안의 실내 장식 등은 마치 길에서 우연하게 유명 연예인을 본 것 같은 놀라움과 감동 에둘러 쌓이게 한다. 그 감동에 푹 젖은 다음에 나의 행동은? 그냥 자동으로 상담석에 가서 앉아서 가격부터 물어본다. “이거 평당 얼마예요?” 매매가를 확인하고 나는 좌절했다. ‘그럼 그렇지…… 이 만한 동네에 나한테 만만한 집이 있을 리가 있겠어…… 그냥 포기해야지……그런데 이 집 너무 좋다.’

노련한 카운슬러는 내 표정을 보고서 한 마디 한다.

“일단 오늘은 신청 접수만 하세요. 나중에 추첨이 돼야 계약을 할 수 있어요. 다음 주 추첨이니까 오늘은 접수만 하고 추첨 때 꼭 오세요. 집을 살 지 말지 고민은 당첨된 후에 하셔도 돼요. 그런데 이 집은 고객님 하고 참 잘 어울리네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네 정 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상당한 무리인 줄 알면서도 나는 접수만 해도 된다는 말만 듣고 접수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추첨 현장에 가지 말았어야 옳았다. 그런데 기분전환 삼아 가끔 다녔던 산과 바로 그 아래에 새로 생기는 단지. ‘이 곳으로 이사 가면 아무 때나 산책 삼아 산행을 할 수 있다. 공기는 또 얼마나 맑아? 이렇게 깨끗하고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더구나 서울 강남이잖아. 그래 일단 추첨할 때 가자. 거기서 안되면 그만이고 만약 되면……. 된다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덤벼야지 뭐.’ 그다음부터 나는 남들은 떨어지는 집값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무턱대고 비싼 집을 계약해 버렸다.

사람들을 쉽게 설득할 수 있는 전략 중에 위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테크닉을 ‘로 볼 전략(low-ball tactic)이라고 한다. 일단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 수준을 제시하면 부담이 없는 상대는 스스럼없이 ‘YES’를 하고 받아들인다. 그다음 처음 부탁과 연계해서 다소 부담스러운 부탁을 한다면 상대는 좀처럼 ‘NO’를할 수 없다. 한 번 ‘예’라고 했다가 다시 ‘아니오’라고 말하기는 쉽지가 않다. 일단 올라탄 배에서는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서 집의 예처럼 사람들은 거래가 난관에 부딪혔다 할지라도 이미 마음속에는 내 집이 된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새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 등. 그럼 그 흥분과 기대를 새로 등장한 난관 때문에 냉정하게 깨트린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그래서 눈을 딱 감고 강행한다. 일단 시작한 일이고 여기까지 온 노력도 아깝고, 무엇보다 내 것이 된 다음을 생각하면 붕붕 날아갈 것 같으니까. TV홈쇼핑에서도 단골처럼 사용하는 기법이기도 하다. 잔뜩 가슴을 부풀리게 만든 후에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으로 주문을 유도하는 방법.

<탈모치료 의료기기>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라는 영화 제목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따뜻하긴 하지만 좀 더 남다른 겨울로 만드세요. 그 해 겨우내 모발은 풍성했네.. 생각만 해도 신나시죠? 한 번 알아보세요. 상담 예약만 하시면 됩니다.”

“원래 발모라는 말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 계의 영역이었어요. 인간 능력밖에 이야기였죠. 그런데 이게 인간계로 내려왔습니다.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합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머리카락 때문에 힘드셨다면 오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신 겁니다. 알아보시고 확인해 보세요. 그래서 오늘은 상담 예약만 받습니다.”

굳이 물건을 사고파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이 아닐지라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로 볼 전략(low-ball tactic)’은 어렵지 않게 구사할 수 있다. 얼굴을 붉히며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위트 있는 한 마디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정아은 의장 편 소설 ‘모던 하트’의 미연은 살고 있는 아파트 층간소음 때문에 거의 폭발 일보직전이다. 참다 참다 급기야는 바로 윗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잔뜩 굳은 얼굴로 항의한다. 그런데 미연을 대하는 윗집 애기 엄마의 대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누구세요?”

“1707호예요.” ‘목소리 가살 짝 떨렸다.’

“야, 너네 조용히 해봐, 아랫집에서 올라왔잖아. 그러게 엄마가 조용히 하락 때 조용히 했어야지!”

‘여자는 내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집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임산부였다.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붙잡고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말을 반복하는 여자에게 더 이상 뭐라 쏘아붙일 수 없었다.’

“그만 갈게요. 앞으로 는 좀 조심해주세요.”

“평소에서 우리 애들 너무 뛰죠? 안 그래도 과일이라도 사 들고 함 내려갈라 캤는데 먼저 올라오시게 했네요. 죄송해요 언니.”

“괜찮아요. 쉬세요. 그만 갈게요.”

“그냥 가시게요?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세요, 언니. 진작 초대했어야 하는 건데.”

‘풋,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라니, 나를 언제 봤다고 언니란 말인가. 하지만 그런 여자가 뻔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자에게는 뭐랄까, 상대방을 너그럽게 만드는 친화력 같은 게 있었다.’

“지훈아, 나와서 인사드려, 아랫집 이모야.”

‘여자가 닦달하자 안쪽에 있던 남자애 하나가 나와서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불거리는 머리와 커다란 눈망울, 또렷한 입술 선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가 정말 예쁘네요. 꼭 서양 인형 같아요.”

이해를 돕기 전문 대신 대화 부분 위주로 편집한 내용인데, 결국 미연의 마음이 누그러진 결정적인 낱말은 ‘언니’와 ‘이모’였다. 아들을 대하는 윗집 여성의 행동이나 말투로 봐서는 성격이 그리 순하거나 착해 보이지는 않다. 하지만 이 여성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방법을 터득한 아주 적극적이고 활달하고 스마트한 여성이다.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낱말들을 구사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언니’, ‘형님’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차마 더 이상 냉정하게 몰아붙일 수 없다. 누군가 나에게 ‘형’이나 ‘언니’하고 다가오는데 냉정하게 쏘아붙이는 사람은 없다. 자연스럽게 친근한 호칭을 통해서 상대로부터 무언의 ‘YES’를 받아냈다. 그다음부터는 오히려 상대가 더 부드러워진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일단 통성명을 하고 난 다음부터 스스럼없이 ‘형님’, ‘누님’,‘언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그들이 친화력만 있고 자존심은 없는 사람들일 뿐일까? 아니면 인간관계의 ‘로볼 전략(low-ball tactic)’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수준 높은 커뮤니케이터일까? 일단 내가 먼저 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활용한 다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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