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기분을 망치는 말 '여러분~'
직업상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나운서 시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결혼식 사회부터 시작해서
각종 행사 사회를 2-3백 번은 본 것 같다. 결혼식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어느 행사의 사회를 보든,
행사를 잘 이끌고 멋지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참석한 사람들, 청중의 집중도가 가장 중요하다.
사회자가 말을 하고 있는데 자기들 마음대로 떠들기 시작하면, 사회자는 당황한다. 그리고, 긋다
황하는 모습을 청중이 보게 되면 청중은 그 사회자를 무시하면서 더 집중을 하지 않는다. 그럼 행사의 진행은 거의 엉망이 되고 만다. 특히나 결혼식 사회는 신랑의 친구가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매끄러운 진행보다는 청중들의 집중도 때문에 안쓰러울 정도의 진행을 하기가 쉽다.
이럴 때, 아마추어라도 쉽게 청중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박수 유도’다.
이를 테면 이런 상황이다. 만약 내가 어떤 행사에 참여해서 진행보다는 옆 사람과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박수소리가 났다면? 십중팔구 옆 사람과 대화를 중단하고 바로 행사에 집중하게 된다. 바로그 원리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알고 있는 사회자가 산만한 분위기를 다시 돌리기 위해서 “여러분 힘찬 박수 부탁합니다!”라고 했다면? 그때의 박수소리는 사회자의 욕심만큼 우렁차기가 쉽지 않다. 다급 해진사 회자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여서 “여러분 다시 한번 힘찬 박수를 부탁합니다!” 해봐야 소리는 점점 작아질 뿐이다. 이렇게 한 번 수렁에 빠진 분위기는 좀처럼 집중도 높은 분위기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여기 서는구먼 포기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다잡을 수 있는 박수 유도 방법이 있다. 어느 한 집단을 콕 집어서 박수를 유도하면 된다.
“다음엔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아름답지만무척 긴장하고 있을 신부를 위로하고 다독여주기 위해서 이번엔 신랑 쪽 가족과 하객께서 힘차게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입장!”
그다음엔 평소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큰 박수 소리가 들린다. 그럼 자연스럽게 청중들은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실험한 결과도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막연하게 ‘여러분 박수를’이라고 부탁하는 것보다, 여성, 혹은 남성 식으로 타깃을 좁힌 다음 부탁을 하니 훨씬 더 박수소리가 컸다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더 이해가 빠르다. 내가 어딘가 결혼식에 하객으로 갔는데 사회자가 ‘여러분 박수를~’이라고 하면 처음엔 성의 있게 친다 할지라도 그다음부터는 그냥 넘어가거나 대충 박수를 치게 된다. 여기 수많은 ‘여러분’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나 하나쯤이야~’ 하는 무의식이 나를 지배한다. 그러면서 설렁설렁 박수를 쳐도 ‘이만하면 됐지.’하며 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회의 상황으로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팀장님께서, 이사님께서, 부사장님께서, 사장님께서 주재하는 그 수많은 회의 상황에서 누가 됐든 “여러분~ 열심히 해 봅시다.”라는 말을 했다고 치자. 그 말은 듣는 나의 생각은 어떨까? 정말 저분의 말씀대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어릴 적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는 엄청나게 긴 연설에도 있지만, 교장선생님께서 습관적으로 말씀하시는 ‘여러분’이란 말이 진정으로 힘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말했거나 혹은 사회적 위치가 올라가면서 별생각 없이 말할, 이 ‘여러분’이란 말에는 생각하지 못한 깊은 의미가 있다.
정이현의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모두가 임해야 할 회의에, 어떻게 하면 모두가 마음을 닫고 대충 회의를 할 수 있는지 잘 표현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편집 에디터들만의 주간 회의가 열렸다. 주제는 규모 있는 예산 관리를 통한 효과적인 제작비 절감 방안. 한마디로돈 좀 아껴 쓰라는 얘기다. 사실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회의주재자가 누구인지가 그보다 열 배는 더 중요하다.
“자, 장미경 씨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거야.”
그럴 줄 알았다. 이것이 안 이사의 방식이다. 무슨 친목 계모임 장기자랑도 아니고, 한 명씩 돌아가며 한 곡조씩의 의견을 순서대로 뽑아내야 한다는 발상에 짜증이 솟구쳤다.
“저희 팀 같은 경우는 진행 계획표대로 꼼꼼하게 진행을 해서 불 필요 한 페이지 낭비를 줄이고, 에, 또……”
‘교과서 같은 말씀. 장 선배는 심야 토론 프로그램에 발언자로 나선 방청객 대표처럼 진지하지만, 듣고 있는 안 이사의 표정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야속하게도 중간중간 고개 한 번 끄덕여주지 않는다.’
단 몇 줄만 읽어도 이 회사의 회의 분위기가 확연하게 그려진다. 이 글에서는 ‘여러분’ 이란 말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안 이사는 “여러분 효과적인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한 마디씩 해 봐. 자 장미경 씨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거야.”라고 말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심코 하는 한 마디지만, 그 한마디에 여러 사람의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일단 ‘여러분’이란 말을 듣는 순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마치 말하는 이는 높은 위치에 있고 ‘여러분’ 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 아래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더 강하게 얘기하면 ‘여러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와 너희들은 신분이든 뭐든 다르고 내가 더 월등하다.’라는 우월성까지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여러분’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나보다 사회적인 위치가 위였다. 그래서 나는 방송을 할 때 습관적으로 ‘여러분’이란 말을 사용하는 후배에게 항상 나의 의견을 전한다. ‘우리 이제부터‘여러분’이란 말 쓰지 말자고. 생각해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거만한 말로 들릴 수 있다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러분 큰 박수 부탁합니다.’ 들었을 때의 우리 행동처럼, ‘여러분’이란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나와는 상관없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느낌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함께 열심히 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여러분’이란 말을 피하는 게 좋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여러분’이란 낱말 하나가 동기 부여나 공동체 의식을 현저하게 떨어트리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리더와 보스의 차이’를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글이 많이 있는데, 그중 ‘여러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마디가 있다. ‘리더는 ‘하자’고 하고 보스는 ‘하라’ 고한다.’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어떤 사회생활을 하든지 누구나 훌륭한 리더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 한각 사회 단위마다의 조직원들과 동등한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자질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리더와 보스. 차이는 엄청나지만, 그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사소하고, 습관적으로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여러분’ 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