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빠른 종결 욕구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5단계를 보면, 발제- 의문 제기- 해답- 이익- 행동의 순서로 나뉜다. 언뜻 보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우선 1. 듣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이야기를 제시한다. (발제) 2. 해결이나 답변이 필요한 문제나 의견을 제시한다. (의문 제기) 3. 제시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해답) 4. 해답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구체적을 제시한다. (이익) 5.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부추긴다. (행동)
이런 설득의 과정을 학교나 직장에서 응용해서 써먹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막연하거나, 혹은 마땅한 예시를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아주 큰 도움이 될만한 해결책을 소개하겠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최소한 대한민국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5단계를 지겹도록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TV 홈쇼핑이다. 상품이 무엇이든 간에, TV홈쇼핑에서 상품을 설명하는 순서를 가만히 분석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늘에서 입이 귀에 걸리는 미소를 지을 만큼 정확하게 그의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화장품을 예로 든다면? 인기 드라마가 끝나고 무심코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TV홈쇼핑에서 뭔가 화장품을 하는 것 같다. 상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쇼호스트의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이거 하나로 끝!”, “이것만 나와 함께 한다면 언제나 물광 피부!” 이 부분이 바로 듣는 사람의 주의를 끄는 이야기, 즉 발제가 나온다. 그러면서 바로 쇼호스트는 물광 피부를 방해하는 여러 이유를 댄다. 환절기, 미세먼지, 황사, 자외선 등등…… 이게 바로 해결이나 답변이 필요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문 제시다. 그러고 나서 쇼호스트는 각종 피켓 등을 상품과 함께 보여주면서 상품의 우수성을 부각한다. 이 부분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하는 해답 부분이다. 그리고 이 해답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거 하나로 끝!”, “이것만 나와 함께 한다면 언제나 물광 피부!” 이것 하나만 있으면 피부에 관련한 것들은 모두 다 해결될 것처럼 얘기한다. 그러고 나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부추기는 한마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자동주문전화를 이용하세요!”
이 과정 전체를 시청자에게 모두 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능력 있는 쇼호스트들은 전체 메시지를 빼놓지 않고 전달하면서도 시간 조절을 10분, 7분, 5분씩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럼 또 하나의 질문이 자동적으로 뇌리를 스칠 것이다. ‘이렇게 10분 동안 얘기하면 도대체 얼마나 매출이 오른다는 거야?” 놀라지 마시라. 어지간한 TV 홈쇼핑 채널에서는, 시간마다 매출이 다르겠지만, 어림잡아 한 시간에 평균 2억 정도는 해야 다음 방송을 기약할 수 있다. 10만 원짜리 상품이라면 한 시간에 2천 명이 주문을 해야 가능한 액수다. 시간만 좋다면, 이를테면 송중기가 나오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끝났을 때, TV홈쇼핑에서 이런 상품을 한다면, 한 시간에 만 세트, 10억 도 가능하다. 물론 앞서 얘기한 설득 문법으로 말이다. 화장품만 이런 것이 아니다. 패션을 해도, 건강기능식품을 해도, 생활용품을 해도 어떤 상품이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5단계는 아주 훌륭한 설득 무기가 된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넘어선 존재라고 봐야 한다. 2천 년도 더 된 그의 주장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들어맞으니 말이다.
그런데 낚시를 잘하려면 일단, 고기가 많은 곳에 가야 한다. 그것도 안되면 고기를 모아야 한다. ‘설득’도 마찬가지, 아무리 좋은 설득 단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제일 첫 단계인 주의를 끄는 무언가가 훌륭하지 않으면 사람이 모일 리 없다.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시선 끌기,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야기, 길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 한마디는 무엇이 있을까? 이것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이현 의장 편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주인공 은수는 부모와 같이 살다가 직장 문제로 따로 독립해서 살고 있다. 직장도 직장이지만 연애나 결혼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나이여서 이런저런 남자를 만나다가 어느 주말 본가로 가겠다는 부모님하고의 약속을 잊고 연애하던 남자와 밤을 보낸다. 전화기는 꺼진 상태. 부모님의 반응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
‘현관에 들어서는 나를 보자 엄마는 곱게 눈을 흘겼다. 아버지는 화가덜 풀린 눈치였다.’ “한심한 짓이나 하고 다니려면 당장 짐 싸서 들어와.” 대충 아버지의 성격이 짐작이 간다. 뭐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또 부모님들이 이렇다. 확실한 고정관념이 있는 일방통행 식의 말투와 생각. 아버지의 확실한 성격은 바로 그다음 장에 나온다.
‘어차피 우리 집엔 오려내고 자시고 할 만큼 그렇게 커다란 가족사진도 없으니까. 몇 년 전 오빠 결혼식 날 그 비슷한 걸 찍기도 했다. 하지만 확대해주겠다는 사진관 측의 호의를 아버지가 딱 잘라 거절했다. 그날 맸던 자신의 넥타이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아마도 ‘세상에 거저는 없다.’는 투철한 세계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교묘한 바가지를 씌울 요량이 아니라면 왜 굳이 특별한 친절을 베풀겠다는 것이 아버지가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아버지의 성격이야 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5단계 중 첫 번째, ‘시선 끌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주인공의 아버지가 까다롭고 의심이 많은 성격이어서 설득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인간의 심리 중에 ‘인지적 구두쇠 욕구’(cognitive miser)라는 것이 있는데, 은수의 아버지 성격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체험으로 획득한 확실한 자기만의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 고정관념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행동하길 선호한다. 많이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것은 질색이다.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TV홈쇼핑의 주 고객은 중 장년 층이다. 그리고 이런 인지적 구두쇠 욕구와 연결되는 심리가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cognitive closure)인데, 이것은 무엇이든 서둘러 답을 정하는 걸 선호하는 심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심리에 대한 해설을 강준만은 ‘생각과 착각’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i]
l 어떤 문제든지 분명한 답을 원한다. 그 답이 정답일 필요는 없다.
l 불확실보다는 질서를, 자유와 개성보다는 규칙을,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을 원한다.
l 여러 가지를 해결할 수 있는 일체형 물건이나 장소를 선호한다.
l 기능이 다른 물건을 사서 일일이 정리하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을 선호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엔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 당연히 무언가 결정하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결정 장애’라는 말이 나올까. 사는 게 이렇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인지적 종결 욕구’에 조금씩 빠져드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설마 나는 그렇게 단순한 사람은 아니겠지’라고 늘 생각하지만, 어디선가 ‘이거 하나로 끝’이런 뉘앙스의 말이 들리면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바로 답이 보였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일체형 pc나 일체형 텐트, 종합 보험 같은,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는 것이면 더 좋겠으니까. 게다가 우린 결정적으로 ‘빨리빨리’를 너무 좋아하니까.
<반신욕기>
“‘손발이 차다.’ ‘소화가 잘 안 된다.’ ‘머리가 띵하다.’ ‘오전 중에는 기운이 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있으세요? 이게 다 몸이 차서 생기는 현상이랍니다. 몸이 차다는 건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는다. 몸속에 불필요한 게 많다는 의미거든요. 이건 노화가 뿐만 아니라 몸이 상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도 같이 상하거든요. 하나만 하시면 됩니다. 체온을 높이세요. 그럼 심신이 달라지고요.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반신욕입니다.
건강한 삶의 기본이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몸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하는 겁니다. 우리 속담에 ‘사람은 빨간 아기로 태어나 하얗게 변해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얼굴에 홍조도 띠면서 건강하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핏기가 사라집니다. 이게 바로 원활하지 못한 혈액순환이 문제거든요. 이제 하나만 꾸준히 해보세요. 안색이 아이처럼 달라질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지금 보시는 반신욕입니다.
중요한 건,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시선 끌기’다. 그런데 이 ‘시선 끌기’가 의외로 쉽다. 대부분 우리 모두는 쉽고, 단순하고, 빨리 되고,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거 하나면 만사 오케이!’, ‘이거 하나면 고민 탈출 행복 시작!’ 이 느낌만 강하게 전달하면 의외로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i] 생각과 착각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5’ 강준만. 인물과 사상.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