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제2의 뇌
정치인이나 국회의원이 사람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은? ‘악수’다 처음 보든, 친하든 그렇지 않든 일단 악수부터 하고 본다. 그것도 의례적으로 하는 악수가 아닌 꽉 잡은 듯한 악수다. 정치인과 처음 악수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두고두고 기억할 만큼 인상적으로 한다.
김정운 박사의 강연 때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정당 워크숍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강의가 끝나자 청중들 모두가 박수로 강의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현역 국회의원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고맙다며 악수를 청했다. 당연히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데, 손을 잡자마자 두 손으로 김정운 박사의 손을 꽉 잡고서 엘리베이터까지 멋진 강의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더란다. 예상치 않았던 환대를 받은 김정운 박사는 그 후의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 국회의원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내 손을 꼭 잡고 그렇게 오래 있는 걸로 봐서는 상당히 오래 해 먹을(정치인 생활을) 사람으로 생각했다.”
손은 제2의 뇌라고 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14개월이 되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서 언어 습득은 시작한다. (놀랍게도 침팬지는 이런 능력이 없다고 한다.)[i] 그리고 뭔가 만지고 찌르고 꼬집고 섞고, 뒤집고 하는 손의 자극을 통해서 뇌의 지식 능력도 같이 발달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손가락으로 뭔가 스마트 폰을 만지는 것도 당연하다. 그 손가락의 자극을 통해서 뇌도 같이 움직이니까.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두뇌 발달을 위해서 몇몇 교육자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바도 영어 수학의 영재 교육이 아니라 젓가락 질, 연필 깎기, 바느질, 뜨개질, 과일 깎기, 운동화 끈 매기, 실뜨기 놀이, 종이접기, 악기 연주, 타이핑, 레고 등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사람이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의미는 바로 손이 할 일이 없다는 뜻과 동일하다.
아주 부자연스럽게 생긴 이 사람은 캐나다의 신경외과 의사였던 와일드 펜필드(WilderPenfield)가 살아있는 사람의 뇌를 연구하여 인간의 대뇌와 신체 각 부위 간의 연관성을 밝힌 지도를 그린 것이다. 두뇌에 영향을 많이 주면 줄수록 기관의 크기는 커진다. 그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몸에 비해 손과 입, 눈, 코, 귀가 크고, 그중에서 손의 크기는 압도적이다. 그만큼 손과 뇌가 어떤 관계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인간이 진화했다는 의미는 두뇌가 스스로 하는 사고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손이나 눈, 코, 입 등 외부 자극을 통해서 사고를 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진화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중에서 인간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손이다. 바로 그 ‘손’이 인간의 대화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두 손을 꼭 잡고 한동안 상대를 응시할 수 있는 정치인은 심리학을 전공한 김정운 박사가 감탄할 만큼의 커뮤니케이션 고수다. 누구인지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오래 해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조정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서도 설득, 혹은 소통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이 어떻게 역할을 하는지 아주 ‘살짝’이지만 명쾌하게 드러나고 있다. 책 내용이 사교육과 입시 전쟁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학생과 학부모, 선생 간의 갈등 상황이 자주 반복되고, 그 갈등을 해소해 나가는 노력들이 자주 나온다.
“첨 뵙겠습니다.” 강 교민이 아이 아빠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는 이 말을 해 나가는 동안 줄곧 애 아빠의 손을 잡고 있었고, 눈길은 애 아빠의 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었다. “저거야, 바로 저거야. 나는 악수도 못했고, 눈으로 저렇게 제압하지도 못했잖아. 역시 오빠는 관록이 대단해.”
담임 강 교민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성 빼고 ‘동기야’로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것은 담임선생님뿐이었다. 그 따스함이 기억 저편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엄마의 품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알지?’ 하며 자신의 손을 잡았고, ‘믿지?’하며 이마를 맞대 사랑의 박치기를 해주셨던 것이다. 그렇게 해준 것도 선생님 한 분, 이 세상에서 선생님 오직 한 분이었다. 그 생각만 하면 언제나 그때처럼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는 했다.
손을 잡아 주고 머리를 맞대면서 친근함을 표현하고 신뢰감을 나타내는 말을 했더니 언제나 그 생각만 하면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했다. 이것이 소설에만 있는 것일까? 어느 실험에서 말로만 부탁을 하는 것과 손으로 상대의 팔이나 어깨 등 몸에 자연스러운 터치를 하면서 부탁을 했을 때 차이는 상당했다고 한다. 당연히 적당한 터치가 동반되었을 때의 성공률이 높았다. 따지고 보면 커뮤니케이션이란 것이 말을 멋지게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을 못 한다고 해서 커뮤니케이션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웃는 낯에 악수만 부지런히 잘해도 누구에게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고, 언제나 기분 좋은 사람으로 각인될 수도 있다. 두뇌보다 빠른 건 눈, 코, 입으로 전해지는 감각이고 그 감각 중에서 가장 빠른 것은 손이기 때문이다. ‘손’이 사람끼리의 대화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 과연 과장일까?
부연 하나만 더, 지금보다 더 나은 나의 두뇌를 원한다면, 역시 해답은 손에 있다. 부지런히 적고 메모하고, 그리고 수시로 입으로 읽고 눈으로 확인한다면? 나의 두뇌는 내가 원하는 수준보다 더 앞서갈 것이다.
[i] 손은 제2의 뇌다. 한겨레 1998.11.16 신동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