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으면 씻어라
담배를 끊기 위해서 이런저런 궁리와 온갖 시도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있다. 한 대 피면서도 ‘이걸 끊어야 하는데, 끊어야 하는데……’만 반복하던 시절, 또 하나의 반복되는 버릇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흡연 후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 버릇이었다. 그러다 흡연했던 것이 영 못마땅했을 때는 양치질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원래 금연을 위해서는 흡연 욕구가 생기면 양치질을 하는 게 금연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나는 금연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일부러 하지 않고, 흡연 후의 찜찜함을 달래기 위해서 손을 씻거나 양치질까지 했다. 그러고 나면? 나도 모르게 반드시 끊어야 하는 담배를 피웠다는 민망함과 죄책감이 좀 잦아들곤 했다.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금연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사실 손을 씻거나 양치질을 할 때는 몰랐는데 ‘씻는다’는 행위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이것이 너무나 도 유명한 ‘맥베스 효과’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 맥베스가 부인과 짜고 자신의 성(城)을 방문한 국왕 던컨을 살해하는 장면에서 맥베스 부인은 남편이 국왕을 살해하자 자기 손을 씻으며 "사라져라. 저주받은 핏자국이여(Out, out, damn spot)"라고 말하며 미친 듯이 손을 씻는다. 그녀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지 않았지만 손을 씻으며 자신의 죄의식을 떨쳐버리려 한 것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을 씻으면서 죄의식이나 후회, 찜찜함을 해소하려 한다면 얼마나 어이없는 짓인가? 하지만 그런 행동이 부질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인간은 그런 것에서 위안을 삼는다. 이른바 사후 정당화나 합리화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담배를 피웠던 나도 손을 씻거나 양치질을 하면서 내 몸에 나쁜 짓을 한 것과, 나의 의지를 꺾은 것에 대해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 만약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크게 비웃을 일 일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에게 말도 못 한다. 그런 행동으로 위안이 될 수 있다니 인간은 얼마나 비 합리적인가. 이런 비 합리적인 행동은 종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침례는 세례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데 죄를 벗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몸을 씻는 의식을 한다. 물을 이용한 정화의식인 셈이다. 기독교뿐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전에 몸을 씻는 행동을 ‘우두’라고 한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수많은 힌두교도 인들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한다.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이라는 오명도 있지만 하루 6만 명이 이곳에서 몸이 아닌 영혼을 씻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손을 씻거나 무언가를 씻고 닦고 하면 마음이 편해질까? 일단 상상을 해보자. ‘내가 지금 지하철을 타서 모처럼 자리에 앉았는데 오른쪽 한 45도 각도쯤 옆에 연세 지긋하신, 또 걸음걸이도 불편한 할머니가 서계신다. 자리를 양보할까 말까 하다가 역도 많이 남았고, 몸 도피 곤하고 해서 ‘에이 모르겠다.’ 하고 눈을 감고 모른 척을 한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영 마음이 불편하다.’
누구에게나 이런 경험이 한 번쯤은 있다. 이런 게 아니더라도 떠올리기도 부담스러운, 생각하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커닝을 했던 기억이나, 남몰래 했던 못된 행동들…… 자 그렇다면 각자 있었던 찜찜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불편해하고 있는데, 내 눈 앞에 두 가지 물건이 있다.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눈 앞에는 볼펜과 소독용 거즈가 있다. 어떤 물건에 손이 갈까?
처음부터 읽었다면 이런 선택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미 글의 주제와 맥락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면, 아무래도 볼펜보다는 소독용 거즈에 눈이나 손이 더 많이 갈 것이다. 말 그대로 거즈이니까, 뭔지는 모르지만 닦고 싶은 마음이 강하니까. 이건 실제 실험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실험에서는 70% 가까이 거즈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있다. 2006년 캐나다 토론토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사이언스'지에 맥베스 효과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먼저 참가자들에게 과거에 자신이 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기억하도록 한 후에 중간에 철자가 빠진 'W--H, SH--ER, S--P'란 세 단어를 완성하게 했다. 그러자 비도덕적인 행동을 떠올린 사람들은 'WASH, SHOWER, SOAP'처럼 몸을 씻는 것과 관련된 단어를 적은 경우가 다른 답들보다 60%나 많았다. 윤리적인 행동을 기억한 사람에서는 이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i]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중 ‘실내화 한 켤레’에서도 격하게 씻는 모습이 나온다. 12년 만에 만난 여고 동창 경안, 혜련, 선미는 술을 마시다 나이트클럽엘 가고, 그리고 낯선 남자를 만난 후 네 명이서 혼자 사는 경안의 집으로 가 술을 마신다. 다음날 남자가 사라진 후, 선미는 경안과 혜련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 남자, 엄청 지독한 성병에 걸렸대…… 그게 너무 지독한 균이라서 그 언니가 결국 자궁까지 다 들어내 버렸다는 거야…… 자궁이 다 녹아내릴 정도로 무서운 성병이었대.”
‘경안은 점점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그 남자가 마신 술잔, 젓가락,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 덮었던 이불까지를 생각하자 경안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달려들어갔다. 고무장갑을 끼고 락스를 풀어 변기를 닦았다. 바닥도 락스를 풀어 닦고 샤워기의 뜨거운 물로 벽까지 씻어 내렸다. 그 남자가 썼을지도 모르는 수건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고 세상이 지겨워졌다. 경안은 문득 이물감을 느끼고 귀에 걸려 있던 커다란 링 귀고리를 뺐다.’
아마 모르긴 해도 경안은 귀고리를 빼고서 또다시 깨끗하게 청소한 화장실에서 피부가 벗겨져라 강력한 샤워를 했을 것이다. 그것도 매일같이. 이렇게 해야만 지끈지끈 아픈 머리도 가라앉고 지긋지긋한 세상도 좀 용서가 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집안 구석구석 남자가 흘렸을지도 모를 병균 생각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회나 죄의식 등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씻는 행동은 거의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즉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동 자체가 그대로 여과 없이 타인에게 노출된다. 아이가 갑자기 손을 깨끗하게 씻으려고 노력한다거나, 화장실에서 나올 때 손도 씻지 않았던 남자가 열심히 손을 씻는다면? 일단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떼겠지만 분명히 숨기고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냉정하게 볼 때는 어이없는, 비 과학적인 행동이지만 손 씻기나 샤워, 격한 청소로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닌 듯하다. 실제로 P&G의 메인 광고 카피로 “WASH YOUR TROUBLES AWAY”(당신의 근심을 씻어버리세요.)가 있을 정도니 이미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
소설 ‘모순’에서 신경숙은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인생이 이렇게 괴로움 투성이니 이렇게라도 위로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i] 시니어 조선. [이영완의 사이언스 카페] 손 씻으면 罪의식도 씻긴다. 2012.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