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확신하는 기억
정이현의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중 ‘타인의 고독’에서주인공인 나와 주희는 이혼한 상태다. 서로 헤어진 후 별다른 연락 없이 지내면서 ‘나’는 독신으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 처인 주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사실은…… 할 얘기가 있어.” 수화기 너머 짧은 침묵이 흘렀다. 헤어진 뒤 주희와 나 사이에 이런 식의 긴장감이 감돌기는 처음이었다.
“몽이 말이야…… 네가 데려가면 안 돼?”(몽이는 그들이 신혼 때 데려왔던 강아지 이름이고 헤어진 후로는 주희가 데려가서 키우고 있었다.)
“어디 외국이라도 나가게 된 거야?”
“아니,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실은 좀 복잡해.” 주희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만나는 사람이, 몽이를 부담스러워해. 아, 차갑거나 그런 사람은 아닌데 어릴 때 동네 개한테 물린 적이 있대. 팔에 상처가 남아 있거든.”
“………….”
“여보세요? 여보세요?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어, 미안한데 나 지금 중요한 전화 기다리고 있거든. 좀 이따 다시 걸게.”
나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신사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별로 예민한 편이 못 되는 그녀가 나의 진심을 알아챘을까? 꼭 그러기를 바랐다. 비열하다는 오해를 살 만한 방식이라 조금 께름칙하기는 했지만 나는 핸드폰 전원을 끄고프랑스 국가 대표팀과의 축구 경기를 계속했다.
누가 봐도 ‘나’는 몽이를 데리고 올 생각이 없다. 말을 피하면서 완곡한 거부의사까지 비쳤다. 이쯤 되면 ‘주희’는 ‘나’의 말을 알아듣고 더 이상 몽이 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핸드폰까지 껐다. 그렇게 ‘나’는 몽이라는 생각 자체를 지우고 살고 있다. 더군다나 전 처에게서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는 말까지 들었기 때문에 몽이에 대한 생각은 더더욱 싫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언제 데려갈 거야?”
무방비 상태에서의 습격이다. 두 시 오 분 전. 물론 새벽이다. 옛 와이프의 전화가 달가울 시간은 아니다. 더구나 그녀가 다른 남자와 열애에 빠진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뭘?”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몽이 어떻게 할 거냐고!”
“아 씨, 뭘 어떻게 해?”
“데려가기로 했잖아. 잊어버렸어?”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내가? 내가 그랬다는 거야?”
“그랬잖아!”
여기까지 읽었다면 두 사람의 첫 번째 대화를 다시 훑어보시길. 자세히 봐도 그렇고 대충 봐도 똑같다. 주인공 ‘나’는 몽이를 키우겠다는 말은커녕 뉘앙스도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주희는 놀랍게도 정반대의 생각과 말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소설이어서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작가가 억지스러운 설정을 한 걸까? 만약 억지 설정이었다면 실망하면서 바로 책을 덮어버리는 게 정상인데 점점 재미있는 것으로 보니 억지가 아니다. 살면서 흔하게 겪는 경우다.
쇼호스트로 방송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는 시간당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방송을 했던 담당자 모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던 때였다. 그러니 피디나 쇼호스트 모두 상품의 프로모션에 상당히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피디, 엠디(머천다이저), 상품 제조사 담당자와 같이 상품 미팅을 하는데 매출이 좋지 않은 상품을 하게 됐다. 당연히 피디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판매 조건까지 좋지 않으니 혈기 왕성했던 피디가 상품 담당 엠디와 협력사 관계자 앞에서 “나 이런 조건으로는 방송 못해요!” 화를 버럭 내면서 상담실을 나가버렸던 일이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다음에, 회식자리에서 당시 엠디와 우연하게 합석을 하게 됐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때 당시 일을 웃으면서 했다.
나: “그때 정말 황당하지 않았어요? 나는 입사 한지 얼마 안 되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엠디: “아…… 그 얘기 저도 알아요. 그런데 문석현 님이 뭘 모르시네……”
나: “네? 뭐를요?”
엠디: “그때 미팅엔 저 없었어요. 제가 아니고 다른 친구였는데……”
몇 년 만에 더 황당한 일을 겪게 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몇 초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그리고 그때 영상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리고 분명히 이 사람이 그때 몹시 당황해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었는데..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겪게 된다. 특히 회사 업무를 처리하다가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다. 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엘리자베스 로프터스(ElizabethLofters)의 실험이 있다. 실험 참가자에게 교통사고 화면을 보여준 후에 두 그룹으로 나눠서 각각의 그룹에 다른 질문을 했다.
A: 서로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 두 차는 대략 얼마나 빨리 달렸나요?”
B: 차가 서로 접촉사고를 냈을 때, 두 차는 얼마나 빨리 달렸나요?”
이렇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보니 놀랍게도 차의 속도는 A그룹의 답변이 훨씬 빨랐다. 심지어 일주일 후에 이들을 다시 불러서 “사고 현장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많았나요?”라고 묻자. A그룹은 있지도 않았던 유리 조각에 대해서 확실하게 유리 파편이 많았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그 경험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게 완벽하지 못하다는 게 함정이다. 실제 일어났었다고 기억하고 그것을 믿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는지. 그래서 한 마디로 얘기해서 기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시간이 지나면서 편집을 하는 것이라고 봐야 옳다. 자기 자신에게 유리한 것, 그렇게 됐다고 믿고 싶은 것, 그렇게 됐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기억에 영향을 미치면서 엉뚱한 기억이 될 수 있다.
이쯤 되면, 우리의 기억은 진짜 기억일까?라는 책 제목 그대로의 의문이 든다. 그래서 항상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 하나. 하지만 기억은 우리 믿음과 다르게 생각보다 쉽게 조작되거나 사라지고, 허위로 생겨나기도 한다. ‘내 기억은 언제나 정확해!’라고 믿는 것은 ‘나는 언제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사람이야!’라는 착각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앞서 언급한 불편한 추억도 추억일 뿐이지 정확한 기억이 아닐 수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미팅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엠디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아무튼‘내가 언제나 옳다’고 말하면 상대는 ‘당신은 꼴통의 가능성이 상당하군요.’라고 듣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직급이 높을수록, 경험이 풍부할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자신에 대한 확신은 근거 없이 커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