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석현 Jun 22. 2017

말과 글의 차이

감정을 부풀리는 글

 완득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두근두근 내 인생, 노서아 가비…… 이 영화들의 공통점이 2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두 소설 원작의 영화라는 것이고, 둘째는 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거의 모두 공감할 것 같아 과감하게 밝힌다. 바로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고, 또 하나 영화를 만든 분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설에서 느꼈던, 말로 표현 못하는 감동들을 영화에서 같이 누리기엔 뭔가 좀 아쉬운 것이 많다. 

 아주 어릴 적에 ‘공포의 외인 구단’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그 당시 청소년들에겐 무조건 봐야 하는 필수 만화였는데, 마침 영화로도 개봉이 돼서 만화를 보지 않은 채로 영화를 봤는데 무척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만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 영화를 본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한, 냉담 그 자체였다. 심지어는 원작을 훼손했다고 흥분까지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흥분하는 이유를 이후에 원작을 다 읽고 나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글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직접 말로 듣는 것보다는 글로 보는 것이 더 감정의 폭을 더 깊게, 확대시켜 준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다 싶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소설에 빠져 들어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을 스스로 그려보고, 표정도 상상하고, 순간순간 사건의 정황, 배경 등을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읽는다. 똑같은 인물이 똑같은 스토리와 똑같은 결말을 낸다 할 지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각각의 다른 세계에서 소설을 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소설을 하나의 영화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내가 생각했던, 상상했던 인물과 동떨어진 이미지의 배우가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똑같은 내용이지만, 소설과 영화라는 표현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엄청난 이질감뿐 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똑같은 내용이지만 글로써 하는 의사전달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의 괴리도 크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왜 글과 대화의 차이가 클 까?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어떤 상대와 직접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하면, 언어 자체의 메시지와 함께 나와 상대의 비언어적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상대의 의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고, 나 역시 상대에게 왜곡 없는 의사표현이 가능하다. “이따 점심때 같이 밥 먹을래?”를 누군가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할 때는 나의 표정이나 몸짓, 억양 등이 여과 없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상대는 내 말의 의미를 쉽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따 점심때 같이 밥 먹을래?”를 문자로 보내거나, 누군가로부터 받게 되면, 그냥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 갑자기 나랑 밥을 먹자고 하지? 무슨 일이 있나?’, ‘나한테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러나?’, ‘나한테 서운한 게있었나?’,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혹시 나한테 고백을?’ 온갖 상상을 할 수 있다. 결국 직접 말을 하는 것보다는 텍스트로 의사소통을 할 때, 감정의 진폭이 훨씬 커진다. 그래서 좋지 않은 내용을 문자나 메일, 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지 않은 감정은 더 증폭된다. 반대로 기분 좋은 내용을 문자, 메일, 전화 등으로 전달하면 좋은 감정 역시 증폭된다. 인터넷 댓글을 생각해보시라. 한 번 나쁜 내용의 댓글이 올라오면, 비슷한 내용과 감정을 실은 댓글들이 들불처럼 삽시간에 달려온다. 물론 익명성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그것보다 악성 댓글에서 전달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덩달아 동조하는 것이 아닐까.  분노, 증오, 시기, 질투 등의 감정이 대화보다 텍스트를 활용할 때 더욱 폭발적인 효과가 있다는 걸 간접 체험으로 얼마든지 경험한 바 있다. 물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 한번 인터넷이나 SNS에 미담 사례가 퍼지기 시작하면 이 반응도 역시 폭발력이 상당하다. 

 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에서는 댓글을 이용해서 여론을 호도하는 21세기형 첨단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도 댓글을 이용한 여론 몰이인데, 텍스트에 감정을 싣고, 이를 증폭시켜 순식간에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

 ‘그는 소위 ‘어그로’를 끄는 방법을 자주 활용했다.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은 된장녀가 쓴 허위 게시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된 장녀는 남녀 모두에게 눈길을 끌고, 선망의 대상이 되며, 동시에 응징을 하고 싶게 만드니까. 사람들은 응징을 한답시고 문제가 된 게시물을 다른 게시물로 퍼 나른다. 

 예를 들어 새로 나온 스파클링 와인을 홍보해야 한다고 치자. 이럴 때 팀-알렙은 다리 모델이나 가슴 모델을 고용해서 이 음료가 한구석에 슬쩍 들어간 사진들을 여러 장 찍었다. 모델들 이호텔 수영장 선베드에서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하는 셀카를 찍도록 한다….. 이런 사진을 가짜 페이스북 계정에 올려놓고, 밑에는 ‘OO오빠 덕에 하얏트 갔던 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재미있게 놀았다~ ♡♡♡ 초섹시 수영복 입고 갔더니 눈빛이 아주 ㅋㅋㅋ 투자한 보람이 있었쒀~~~’와 같은 글을 달아둔다. 그리고 이 포스트를 화면 캡처한 뒤 남자들이 주로 몰리는 사이트에 그 캡처 파일을 올린다. 제목은 ‘김치년 클래스 좀 보소’ 정도가 적당하다. 

 가만히 놔둬도 불과 하루 이틀이면 이 사진은 중소형 포털 20~30 군데에 퍼지고, 수십만 명이 신제품 스파클링 와인을 보게 된다. 신제품은 하얏트호텔과 잘 나가는 남녀의 호화로운 이미지를 공짜로 얻는다.’

 뭔가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글만 읽는데도 머릿속에서 특별한 장면이 떠오르고, 특정 감정이 솟구치진 않는지. 이게 바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텍스트의 힘이다. 

 언젠가 새해가 밝고 며칠 후에 대표이사가 신년사를 전제 사원에게 메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작년 한 해 고생 많았고, 위기 이긴 하지만 새해 좋은 기회도 많으니 더 열심히 일해보자.’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 긴 신년사 중에 딱 한 줄의 문장 때문에 전 사원들이 공포에 떨었던 적이 있었다. ‘부진한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바로 ‘정리’라는 낱말 때문에 사원들은 ‘드디어 대표이사가 인원감축의 칼을 빼 든 것이 아닌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느 부서가 0순위다.’ 별의별 소문이 돈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회사에선 인원 정리와 관련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당시 대표이사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사원들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서 진짜 텍스트의 감정 유발/증폭 효과를 알고 일부러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상식적으로도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빨리 정리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면 별 일 아니다. 그러나 모든 임직원들이 메일로 전달받았기 때문에 모두 각자 여러 상상을 하게 된다. 그것도 좋은 쪽이든 반대든, 한 번 방향이 정해지면 무서운 기세로 감정은 폭발한다. 인터넷 악성 댓글처럼. 미담 사례처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때는 메일, 문자, 전화가 아주 효과적이다. 좋은 일이어서 더욱 긍정적인 이미지가 증폭된다. 하지만 반대로 사과나 불만 대응 등을 할 때는 직접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것이 상대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는데 훨씬 효과적이다. 

 간혹, 문자 등을 주고받으면서 ‘아 문자로 대화할 때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나, 자주 말하거나, 자주 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구나 글, 텍스트만 보면 내 의도와는 달리 상대는 나름대로 상상을 한다. 또 각자의 감정을 싣는다. 그래서 글은, 그 글을 보는 이의 감정과 상상을 부풀린다. 나의 의도와는 달리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