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언제나 가르칠 기회만 노린다.
‘국내 제일의 사립대학이라는 Y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계 유명 핸드폰 제조업체인 H사에 다니고 있는 남자. 일단 눈에 띄게 키가 컸고, 길고 가는 얼굴에 날렵하고 높은 콧대, 살짝 긴 듯한 머리가 순정 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을 연상케 하는 남자.’
만약 미혼 여성이 이 정도의 프로필을 갖고 있는 남자와 소개팅을 제안받는다면? 여성이라면 누구에게나 거절하기 힘든 제안일 것 같다. 그리고 일단 한 번 만나면, 이 남자와의 만남을 연장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까.
저런 매력적인 남성은 정아은의 장편 소설 ‘모던 하트’에 나오는 태환이라는 남성이다. 헤드헌터인 미연은 우연히 외국계 회사원 동호회를 통해 태환을 만났다. 미연의 명함을 받은 태환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진지하게 미연과 대화를 나누고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점심 식사 등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프로필이나 외모만 봐도 백 점 만점에 90점 이상인데 이 남자는 보통 남자와는 다른 고상한면까지 있다.
‘고기나 술을 입에 대지 않고 명상을 즐기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여자에게 깍듯이 존댓말을 쓰면서 전혀 스킨십을 시도하지 않는 남자는 세상에 흔치 않다. 태환을 이루는 키워드는 자기 절제와 지적 향상 욕구, 이둘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다이 남자, 손가락까지 길어서 한 번 여성의 눈이 손가락에 가면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식사하는 내내 내 눈길은 태환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손가락은 태환의 신체 가운데 가장 매력 있는 부분이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혹시 기타 칠 줄 아세요?”
저손으로 기타 줄을 튕긴다면 참으로 고혹적 이리라. 저 손으로 빠르게 키보드를 친다면 참으로 지적 이리라. 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는다면……’
어떤 여성인들 이런 생각이 안 들까. 결혼 적령기를 살짝 지난 미연은 한 살 많은 태환에게 푹 빠져들고 만다. 소설이어서 약간의 상상이 곁들여지긴 했겠지만, 사실 대한민국 남성중에 이런 남성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선후배, 동기, 친구, 친척을 통틀어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런데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남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신체, 외모, 학벌, 직업 등 모두가 최고 수준이고 명상을 즐기는 남자. 심지어 손가락까지 치명적으로 긴 데다, 식성은 채식주의자다.
조금 명치끝이 거북하게 막히는 느낌은 들지만 ‘눈 딱 감고 참고 살면 그만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남자인데 무슨 약점이 있을까?
직장에서 든 가정에서 든 무심코 있는 남자에게 여성이 말을 건넨다. “지금 바쁘세요?”그럼 남자들의 반응은? 모르긴 해도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뉜다. “아뇨 안 바빠요. 왜요?”라거나 “네 지금 뭐 하는 중이에요. 왜요?” 그럼 대부분의 여성은 이렇게 말하다. “아뇨 됐어요. 일 보세요.”
이 글을 읽는 남성이 있다면 이 대화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뭐가 잘못됐다는 거지? 하는 일이 없으니 없다고 하는 것이고, 뭔가 일이 있으니 있다고 얘기한 것뿐인데?’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성은 당연히 이 상황을 다르게 해석한다. 사실 여성이 “바쁘세요?”라고 묻는 속 뜻은 ‘저 좀 도와주세요.’라는 뜻인데 애 석하 게 도그 말을 알아듣는 남성은 극히 드물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직선적이고 두괄식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도 남자여서 결론부터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바쁘세요?’라는 말을 남자는 ‘바쁘냐? 무슨 일하냐?’의 의미만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정직하게 ‘바쁘다.’ 혹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묻는 그대로 답했기 때문에. 그래서 남자는 자신이 반응을 보일만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거나 상대방의 말이나 질문이 그의 직선적인 사고패턴에서 벗어나 있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아주 짧게 있는 그대로 결론만 얘기한다.
거기에다가 남성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이나 포커싱은 바로 ‘문제 해결’에꽂혀 있다. 그래서 여성이 무언가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일단 남성은 여성의 감정 상태 등을 같이 공유하는 것보다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만을 몰두한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게 잔소리를 한다고 하면 남성은 여성에게 ‘가르치려’ 하는 실수를 자주 하게 된다. 무엇이든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훌륭한 대화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묻는 그대로 대답하고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은 남성끼리의 대화에서는 훌륭할지 모르나 남성과 여성과의 대화에는 사정이 다르다. 남성의 단편적이 고직 선적인 사고방식과 이에 따른 대화 방식은 여성에게는 생각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심하면 상처까지 줄 수 있다.
남성은 꼭 기억하기 바란다. 여성이 ‘지금 바빠?’, 혹은 ‘지금 통화 가능해?’라는 메시지를 보낼 때에는 ‘나 좀 도와줘.’ 라거나 ‘나의 기분을 같이 공감해줘.’, ‘나의 이 기분을 누군가에게 꼭 얘기하고 싶어.’라는 뜻이다. 이럴 때 남성은 그냥 같이 기분을 맞춰주고, 관심만 표현해 주면 베스트다. 이런 작은 노력만 해도 여성은 놀랍게도 남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갖고 또 강한 동료애나 지지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여성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성에게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무리수인 듯하다. 마치 소설 ‘모던 하트’의 태환처럼.
“미스 커뮤니케이션이요?”
‘태환의 눈에 웃음이 서렸다. 나는 살짝 불안해졌다. 저런 웃음 뒤엔 늘 내 말에 대한 트집이 따라붙곤 했다.’
“원래 헤드헌터들이 다 그래요? 미연 님 만나면서 느낀 건데, 영어 섞어 쓰는 걸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미스 커뮤니케이션이란 말도 그래요. 그냥 ‘의사소통이 잘 안 됐다.’고 하는 편이 일반적이지 않나요?”
“태환 님도 외국계 회사 다니니까 잘 아시겠지만 원래 외국계 쪽이 좀 그렇잖아요. 근데 외국계 회사보다 더 심한 데가 서치 펌이에요. 저도 원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주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결국 그렇게 되더라고요, 어쩔 수 없어요. 용어 자체가 그런 걸.”
“그렇지만 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안 하려고 하면 가능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그가 일침을 놓았다. 또 시작이다. 그는 훈계하고, 나는 반성하고 하지만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라 결국 나는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러게요, 안 그러려고 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네요. 조심해야죠.”
‘이렇게 말하는데 살짝 기분이 상했다. 김미연, 너 너무 비굴한 거 아니야.’
미연은 너무나 매력적인 태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 상황을 꾹 참고 넘겼지만 나만 그런가? 나는 이 둘의 끝이 환하게 아주 잘 보인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태환이 ‘미연 씨는 영어 참 많이 섞어서 쓰네요? 말하면서도 민망할 때 많겠어요? 본인도 모르게 툭툭 나오니까.” 이렇게 말했다면 정말 남자로서 심한 질투를 할 뻔했다. 부족한 게 없이 모든 게 넘치는 남자니까. 아무튼 남성들은 부족한 게 없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 무엇부터 챙겨야 하는지 좋은 참고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