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석현 Jun 26. 2017

외 집단 편애 현상

남자는 남자가 여자는 여자가 알아본다? 그 감춰진 속마음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의 주인공 은수에게는 그녀만을 좋아하는 유준이 있다. 은수의

고등학교 동창 유희의 사촌인데 소설뿐 만 아니라 대부분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 은수는 유준

의 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냥 은수에게 유준은 ‘남사친’이다. 그렇게 평범한 친구로 지내던 사이

은수는 4살 아래 인태오와 연애를 한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듯이, 동거를 하던 태오의 존

재를 꼭꼭 숨겨왔던 은수는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인 제인의 결혼식 뒤풀이 때 친구들에게 태오

의 존재를 공개한다. 평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은 구속이다.’라는 이유로 독신을 유지했던 

은수에게 아무 조건 없는, 정말 친구같이 허물없는 사이끼리의 동거를 제안했다가 일언지하에 거

절 당했던 유준이었기 때문에 은수의 동거인 태오의 등장은 어마어마한 충격일 수밖에.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유준 은은수의 회사를 찾아온다.

‘이 아이를 알아온 지난 십이 년간, 이런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던가. 맹세컨대, 없었다. 며칠 전 재인의 결혼식에조차 스웨터와 면바지 차림으로 등장했던 유준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의 신상에 상서롭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혹시…… 자살이라도 하러 가는 거야?”

유준은 매우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쩌면.”

가슴이 철렁했다. 

“야! 안돼.”

“친구. 놀라긴. 32세 무직 남 모씨가 한강에 뛰어든 이유는, 32세 회사원 오 모씨에게 실연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뉴스라도 나올까 봐 그러냐?”

‘이 순간, 유준의 농담 속에서, 나에 대한 그의 진짜 속마음이 어떤 빛깔인지 가늠해보려고 애쓰

는 스스로가 가증스럽다. 우리는 회사 근처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물만두라도 하나 더 주 문해주

려 했지만 유준은 굳이 자장면이면 충분하다고 우겼다.’

“태오 씨는 잘 있고?”

“으응.”

“너 내가 웬만해선 남 칭찬 안 하는 거 알지? 특히 남자에 대해서는.”

“………..”

“원래 남자는 남자를 아는 거야. 세상에는 별의별 놈들이 다 있거든. 그런데 태오 씨는 그만하면 

괜찮은 사람 같더라. 결국 네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겠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그만하면 우리 오은

수양 맘 편히 먹어도 되겠어.”

 여기서 주목할 만한 말은 유준이 은수에게 한 마지막 말이다. ‘남자는 남자를 아는 거야.’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흔하게, 쉽게 하는 말이고, 또 대수롭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남자는 남자가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고, 여자는 여자가 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시라. 며느리 마음에 쏙 들어하는 시어머니는 정말 흔치 않다. 그리고 또, 훌륭한 사위를 뒀다고 여기저기 자랑하는 장인어른의 모습은 정말 귀하다.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알아보는 건 나름 일리가 있고, 합리적이라고 본다. 하지 만단 하나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 남성은 남성을, 여성은 여성을 너무, 지나치게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성향이나, 고향, 출신 학교, 취미 등이 같거나 비슷하면,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금방 친해진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내 편과 반대 편으로 나누려는 이분법 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신념이나 출신지, 취미 등이 같으면 일단은 내 편으로 생각하고 호감을 갖게 된다. 이와 반대의 상황이라면 상대의 본질적인 면은 고려하지 않고 일단은 거리를 두거나, 반감까지도 갖는다. 모두 다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본능. ‘인지적 구두쇠 이론’때문이고, 밑도 끝도 없는 ‘내집단 편애’(in group favoritism)로 이어진다.. 상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알아보려는 노력 대신에 단순하게 입력되는 정보를 기준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본능이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경험이 많이 쌓인 계층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습성에는 또 하나, ‘질투’때문에 ‘내 집단 편애’와 반대의 현상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예가 바로 동성끼리, 같은 처지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것이다.

우에키 리에의 ‘간파하는 힘(세상에 속고 사람에 속는 당신을 위한 심리학의 기술. 홍성민 역)’에는 같은 집단끼리의 ‘질투’가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쓴 작문을 읽게 한 후 그 문장에 대해 평가를 하는 실험이다. 평가자는 모두 문과생이다. 작문 내용은 ‘최근에 이런 일로 감동했다’는 내용으로, 평가자 모두 똑같은 글을 읽는다. 단, 글 쓴 이의 프로필을 조작해서 평가자의 절반에게는 글을 쓴 이가 문과생인 것 같다고 얘기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작성자가 이공계 학생 같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글을 읽은 후의 소감을 얘기하라고 한 결과, 글 쓴 이가 문과생이라고 들은 그룹(문과생들)은 ‘재미없다.’, ‘특별히 감동적이지 않다.’라고 냉정한 평가를 내린 반면, 글 쓴이가 이공계 학생이라고 들은 그룹은 ‘감동했다.’, ‘문장력이 있다.’라고 호의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내집단 편애가 아닌 외집단 편애가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남의 떡의 커 보인다.’도 맞는 말이지만 ‘남이 자식이 더 똑똑해 보인다.’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런 외집단 편애 현상 은성 별이나 학력에 대해서도 같은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즉, 취미는 골프로 같이 잘 어울려도 같은 남자라면 서로 상대의 실력을 얕잡아 볼 수 있다. 같은 종교를 갖고 있지만 같은 직종에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보다 자신이 더 실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경향이다.

 이‘외집단 편애’로 따지자면 위 소설에서 유준은 태오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이것저것 따지기 이전에 일단 같은 ‘남자’니까 좋게 볼 수가 없다. 그래야 나 자존심이 상처를 받지 않으니까. 이런 이기심과 질투는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식한다. 적절한 표현은 아닌 듯 하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 혹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동료 쇼호스트의 실력에 대해서 후하게 점수를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동료의 방송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찾았다. 내 생각엔 그래도 내가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고 아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몰지각한 일인가? 더 재미있는 것은 크게 실력이 없어 보이는 경쟁사의 사람을 큰돈을 들여 스카우트하면서 오히려 더 실력 있는 자기 식구를 홀대하는 경우도 있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 안심하고 살아야 할까? 그러니 누구나 나름대로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람을 볼 수 있다고 자부하는 건 다소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외집단 편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상에서 냉정하게 구분하면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사실 상당히 어려운 수준의 능력이다. 하지만 반드시 머리 속에 삽입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흔히 ‘같은 남자(여자) 끼리니까 툭 터놓고 얘기할게’ 이런 식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두 번 이상씩은 했을 법한 대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뇌에 깊숙하게 뿌리 박혀 있는 구두쇠 뇌, 이기심, 외집단 편애 등을 고려한다면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1순위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