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양자택일의 프레임
일본의 경제학자 시오자와 요시노리의 실험 내용이다. 슈퍼컴퓨터에 비슷비슷한 특징과 장단점을 갖고 있는 상품이 10개가 있을 때 하나의 상품을 선택하는 시간을 재봤더니 0.001초가 걸렸다. 과연 슈퍼 컴퓨터답다. 그럼 다음에는 상품을 30가지로 늘렸다. 그랬더니 시간이 17.9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40가지로 늘렸더니 시간은 12.7일이 걸렸고, 마지막으로 상품을 50가지로 늘렸더니 선택하는 시간은 35.7년으로 계산되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10가지만 해도 무리이니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가지, 4가지가 되고 선택할 수 있는 가지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컴퓨터 못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여러 가지 조건 중에서 딱 하나만 보고 단순하게 결정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선택의 가지 수가 많아지면 결정의 순간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그럼 바꿔서 생각했을 때, 인간의 빠른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선택 옵션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런데 하나는 곤란하다.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장 이른 시간 내에 결정을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선택 옵션의 수는? 바로 2가지를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히틀러 의대 중 연설이 당시 독일 국민들에게 먹혔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많이 공감을 받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같은 문장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한 놈만 계속 패’라는 유명한 영화 대사에도 있듯이 하나의 문장이나 낱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저절로 듣는 사람의 뇌에 입력이 된다. 걸 그룹 노래의 훅 송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같은 운율에 같은가 사가 반복되면 저절로 입에 붙게 되고, 그리고 이게 성공하면 바로 히트곡이 되는 원리와 똑같다. 가수가 누군지는 몰라도 “픽 미 픽 미 픽미업, 픽 미 픽 미 픽미업..”을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리고 히틀러의 연설이 대중에게 잘 통할 수밖에 없었던 기가 막힌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양자택일’ 방법이다. [i]
“독일을 공산당이 지배하는 것이 좋은가?” vs. “독일 노동당이 하는 것이 좋은가?”
“전쟁인가?” vs. “평화인가?”
“유대인에게 지배당하겠는가?” vs. “모두 몰살하겠는가?”
거의 대부분의 연설을 이런 식으로 했다고 한다.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러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식의 질문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어떤 대답을 할지는 상식적으로도 알 수 있다.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흥분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렇게 극단적인 질문을 던져서 마치 그 이외의 선택은 없는 것처럼 즉각적인 판단을 강요하는 방식은 아주 효과적이다. 이런 식의 양자택일 형 질문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들어오면, 설마 예상했다 할 지라도, 그 이외의 다른 선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2가지 중에서 대답을 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최수영의 장편 소설 ‘하여가’에서도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곽 병장과 나(김준만 일병)는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와 아들 군번이고 사회 식으로 말하면 멘토, 멘티 사이다. 어느 날 나는 신병 유준만의 하극상 사건을 목격한다. 신병이 자신을 괴롭힌 부대 선임을 모두가 잠든 사이 몰래 불러서 다시는 꼼짝 못 하게 두들겨 패는 끔찍한 사건. 나는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끙끙대다가 또다시 못 볼 광경을 보고 만다. 유준만 신병이 드디어 곽 병장에게까지하극상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눈이 뒤집힌 나는 곽 병장과 격투 끝에 유준만을 제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상하게 신병이 숨을 쉬질 않는다. 마지막 몸싸움 때 이마로 신병의 이마를 받은 것이 결정타가 된 듯하다.
‘어느 순간 상체를 일으켜 보니 놈이 까닭도 안 하고 쓰러져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미치겠다. 점점 더 왜 이러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막사로 내려간 곽 병장이 오면 신병을 의무실로 엎고 뛰든지 아무튼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몸싸움 후에 축 늘어진 신병 유준만을 보니까 점점 더 판단이 흐려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가 됐다.
‘내 헐떡 숨이 가라앉을 즈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군복 차림으로 다시 올라온 곡은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쟤 깨났었냐...... 안 죽은 거지?”
‘나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곡이 제 담배를 꺼내어 내게 권했다. 라이터까지 켜주고는 저는 빼물지도 않고 도로 담뱃갑을 넣었다.’
“나 간다. 넌 어떡할래?”(같이 갈 거야, 아니면 안 갈 거야 하나를 선택해)
‘나는 주저앉은 채 장초를 짓이겼다.’
“개새끼야 그럼, 지금 이 마당에 나 혼자 어쩌란 거냐.”
“어쭈구리! 졸다고 주제 이게 완전…….”
“아, 까, 까!”
그리고선 곽 병장은 나에게 피 묻은 군복을 벗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으라고 권한다.
‘듣고 보니 그랬다. 피 묻는 군복을 입고 나갈 수는 없지. 내가 물었다.’
“안 나가면 안 되나?”(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난 그래…… 넌 너 알아서 해.”(같이 갈 거야, 말 거야 네가 결정해.)
‘자식, 단호하고 찼다.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산 밑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담 위에서 나는 잠시 나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인생이 꼬여도 이렇게 꼬이냐…… 이래저래 일단은, 뛰고 보는 수밖에!’
군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곽 병장과 내가 무작정 탈영을 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란 걸 금방 알 수 있다. 곽 병장은 그렇다 쳐도 최소한 나는 이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했어야 하는데 그만 곽 병장과 똑같은 선택을 하고 만다. 결정적인 그 한마디 때문에. “난간다. 넌 어떡할래?” 이런 말을 들으면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두 가지에만 매몰돼서 다른 건 생각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좀 거리가 있지만 1992년 젊은 대통령 후보 빌 클린턴이 반복한 구호도 역시 양자택일이었다. Change or more of the same! (변화하거나 계속 이대로 머물거나) ‘프레임 효과’란 대화의 프레임이 달라짐에 따라서 판단이나 선택이 크게 바뀌는 것을 말한다. 곧 질문의 프레임이 바뀌면 대답도 바뀐다. 그리고 의사결정도 바뀐다. 질문의 프레임을 두 가지에서 선택하는 것으로 바꾸면 상대는 긋도 가지 안에서 결정한다. 개방형 질문에서 두 가지로 좁힌 압축 형 질문을 해야 내 뜻대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만약 TV홈쇼핑 여행 방송에서 쇼호스트 가이런 말을 한다면 바로 어떤 생각이 들까?
“여행 같은 거 떠나지 않아도 잘 삽니다. 무리하지 마세요. 하지만 떠나본 사람만이 인생에 또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잖아요. 지금 그냥 있으시겠어요? 아니면 또 다른 기쁨을 맛보시겠어요?" 이것도 괜찮은 코멘트이지만 이런 양자택일 방법을 살짝 틀어서 다르게 표현했더니 제법 재미를 본 경험이 있다. ‘기다 아니다.’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도하는 쪽으로 아예 프레임을 옮긴 상태에서 양자택일을 권유하는 방법이다. 신기하게도 내 의도대로상 대는 프레임을 옮겨 준다.
“지금은 살까 말까를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에요. 지금부터는요. 무이자 할부가 유리할까 일시불이 유리할까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한 상품이잖아요.”
[i] 검은 심리학. 마르코사. 김정미 역. 그리고 책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