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석현 Jul 14. 2017

분노의 표현은 약일까? 독일까?

무조건 참으면서 방긋방긋 웃는 건 독이다.

기업에서 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면접 기법 중 ‘압박 면접’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 겪어본 사람이라면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혼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하는 악명 높은 면접 기법이다. 이 압박 면접의 원래 의도는 일 부러 구직자를 연속된 질문이나 의도된 스트레스 등으로 압박한 후에 그런 극한 상황에서 응시자의 임기응변과 자제력, 순발력, 상황 대처능력 등을 테스트하는 면접이다. [i]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보단 면접자의 인품이나 사회생활 적응도 등을 알아보는 면접이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인 의도와는 달리 조롱이나 성적 비하 등의 내용을 담은 질문을 통해서 응시자의 충성도나 순응도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일부 성격이 변질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여성 구직자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식의 질문. “아주중요한 거래처와 미팅을 하는 자리입니다. 이 미팅은 회사의 존망이 걸린 아주 중요한 자리이고 우리는 반드시 이 거래를 성사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 키 맨이 당신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회사는 존재해서도 안되고 당연히 이런 면접을 하기 전에 망해야 상식이겠지만, 만약 진짜로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머리 속이 하얘지고 입이 바짝 타 들어간다. 모른 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중요한 미팅인데 박차고 나와서 산통을 깰 수도 없다. 더구나 반드시 붙어야 하는 면접이 아닌가.

 마침 조남주의 장편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아주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인문학부 졸업반인 김지영. 그녀는 당연히 취직을 위해서 여기저기 입사 원서를 낸다.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43개 회사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원서를 냈지만 단 한 곳도 서류 전형을 통과하지 못한다. 낙심한 김지영은 이후에는 조금 규모가 작아도 내실 있고 꾸준하다 싶은 회사 18 곳에 원서를 넣었지만 역시 모두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다. 그렇게 절망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실수로 회사 이름을 안 바꾸고 자기소개서를 보냈는데, 처음으로 서류 전형에 합격한다. 그야말로 합격이 간절해지는 상황이다. 

이윽고 면접날. 3명씩 들어가는 면접 자리, 세 명 모두 또래의 여성들이다. 학창 시절에 대해, 눈에 띄는 경력에 대해, 그리고 회사에 대해 업계 전망 등에 관한 무난한 질문에 대해 잘 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안도하고 있던 김지영은 한 이사의 돌발 질문을 받는다. 

 “여러분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래처 상사가 자꾸 좀, 그런, 신체 접촉을 하는 겁니다. 괜히 어깨도 조물조물하고, 허벅지도 슬쩍슬쩍 만지고, 엉? 그런 거? 알죠?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김지영 씨부터.”  

 ‘김지영 씨는 바보같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도 안 될 것 같고, 너무 정색하는 것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것 같아 그 중간 정도로 답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자료를 가지고 오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자는 명백한 성희롱이며 그 자리에서 주의를 주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질문했던 이사가 눈썹을 한 번 올렸다 내리고는 파일에 뭔가 적었는데 괜히 김지영 씨가 움찔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 모범 답안을 고민했을 마지막 면접자가 대답했다.’

 “제옷차림이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사분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유발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두 번째 면접자가 하! 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큰 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김지영 씨도 씁쓸했는데, 한편으로는 저런 대답이 높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후회했고, 그런 자신이 한심했다.’ 

 여기까지 읽고서 나도 ‘하~ 설마 이런 식의 면접이 있을까?’ 하며 분노의 탄식이 나왔다. 그런데 어찌 됐든 읽는 나도 사람인지라 세 명중 누가 과연 합격했는지 궁금했다. 결론은 세 명 모두 탈락. 다른 이의 합격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는 인사 담당자에게 “저 지금 절박해요.”라는 읍소로 알아내긴 했지만 힘이 쭉 빠지기는 마찬가지.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 김지영이 한 행동은……

 “그런 개자식은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놔야지! 그리고 당신도 문제야! 면접이랍시고 그딴 질문하는 것도 성희롱이라고! 남자 지원자한테는 이런 질문 안 할 거 아냐?” 

 ‘혼자 거울을 보며 큰 소리로 하고 싶던 말들을 다 쏟아 냈지만 속이 시원해지지 않았다. 자다가도 억울하고 열이 올라서 이불을 몇 번이나 걷어찼다. 그 이후에도 숱하게 면접을 보았고, 종종 외모에 대한 지적이나 옷차림에 대한 저속한 농담을 들었고, 특정부위를 향한 음흉한 시선,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겪기도 했다. 취직은 하지 못했다.’  

 심리학자인 Marwan Sinaceur와 Larissa Z. Tiedens는‘When and why anger expression is effective in negotiations.’라는 연구를 통해 제목 그대로 상대에게 분노를 표현했을 때 과연 효과적인지를 검증하는 심리 연구를 실시했다.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쪽이 노골적으로 분노나 불쾌감을 표현하면 상대방의 심리는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연구였다. 일단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상황에서 한쪽이 분노나 불쾌감을 표현할 때 상대방은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좋은 방향으로 끌기 위해 살짝 양보를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더 큰 반발심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 앞서 소개한 소설의 김지영 씨의 상황과도 흡사하다. 김지영 씨가 했던 것처럼 일단 참는 것이 최선일까? 아니면 혼잣말처럼 면접 장에서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 우선일까? 실험의 결과는 놀랍게도 분노나 불쾌감을 드러냈을 때 상대는 양보하는 자세를 취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자신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굳이 면접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나에게 부당한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꾹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는 혼자서 분을 삭이지 못하고 끙끙 앓는다. 마치 82년생 김지영처럼. 정신 건강에도 당연히 좋을 수 없다. 아무리 예절이 중요하다 해도 분명히 잘못됐다 싶으면 잠깐이라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취업 관련 사이트 ‘SeeMore’에서 소개하는 압박 면접의 대응 원칙과 전략 중에 한 문장을 인용하면 ‘많은 면접 코치들이 미소를 잃지 말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는 조언을 하는데, 쓸데없이 계속 웃는 것보다는, 인상을 좀 쓰더라도 신중한 모습으로 자신의 답변에 집중하여 차별화된 대답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잊지 마시라. 적절하고 적당한 분노나 불쾌감 표현은 절대 나에게실이 되지 않는다. 


      

[i] 나무 위키 ‘면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