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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15. 2017

한 번 해볼까?

100%가 아니라 50%의 가능성에 움직인다.

나에게는 헤어 디자이너 친구가 있다. 방송국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에다가 연예인들을 자주 만나서 그런지 머리 손질을 할 때마다 세상에 떠도는 재미있는 가십거리들을 많이 알고, 또 들려주는 친구다. 그런데 어느 날엔가 엉뚱한 아르바이트 얘기를 꺼냈다. 

“너 만약에 말이야. 사방이 하얀 벽지로 돼있는 방에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버티는 아르바이트가 있어. 수입은 월 천만 원. 대신 방에는 TV도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음. 그냥 가만히 있다가 오면 돼. 물론 식사는 모두 제공. 샤워시설 완비. 너 같으면 하겠냐?”

“그래? 그런 게 진짜 있어?”

“인터넷에 떠돌더라고. 어느 병원에서 공고를 냈다고 하던데…… 아무튼 천만 원에 그 정도면 할만하지 않겠냐?” 

“그러게…… 아주 못 할 건 아닌 듯한데?”

실제로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다면 절대 시도해선 안 된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비슷한 내용이 우 에카 리에의 ‘간파하는 힘’에 나오는데, 그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몇 주도 못 버티고 우울증과 환청 때문에 중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매우 가혹한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그런데도 웬만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하게 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100% 보장된 것보다는 어느 정도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러니까 한 50% 정도 승산이 있겠다 싶은 일에 더 흥미를 갖고 뛰어든다고 한다. 마치 친구와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고윤규의 소설 ‘트렁커’의 주인공 이온 두는 유모차 판매점인 ‘베이비 앤 마미’의 판매원이다. 그녀가 하는 일은 유모차를 사러 온 고객에게 최적의 유모차를 추천해 주는 것이다. 이온 두는 유모차 판매의 독보적인 매출을 기록하고 있어서 ‘유모차는 베이비 엔 마미에서’라는입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래서 전국의 엄마들이 그녀를 찾아 직접 매장까지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녀가 이렇게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이유는 그녀가 유모차에 대해서 박사 논문을 쓰는 사람이 그녀를 찾아와 인터뷰를 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엄마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유모차를 판매하고 또 엄청난 성과급을 받고 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해박한 지식으로 고객들을 친절하게 상대하는, 외모도 곱상할 것 같은 세련된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쉽다. 그런데 이 여성은 의외로 외모도 훌륭한 편도 아니고 고객들에게 상당히 불친절하고 심지어 건방지기까지 하다. 

 ‘나는 친절은커녕 오히려 불친절한 판매 사원이었다. 그냥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유모차가 무엇인지 선택해서 판매할 뿐이었다. 그래서 매장에 와서 대접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불쾌를 느끼고 돌아가기도 했다. 나는 ‘고객님’이란 간지러운 말은 쓰지 않았다. 만약 꼭 서야 한다면 ‘님’을 빼고 싶었다. 고객! 이물 건은 어떤가요? 고객! 당신한테 가장 어울리는 건 이 유모차입니다.’ 

 그러던 그녀에게 또 한 명의 까다로운 고객이 찾아왔다. 처음 인사부터 이 고객은 이온두에게 까칠하게 군다. “저한테 맞는 유모차를 골라주세요. KTX 타고 여기까지 온 게예요.” 태어나서 11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는 아이 때문에 엄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곤과 짜증에 절어 있다. 그런 고객이라면 어떤 판매원이든 당연히 고객의 눈치를 보면서 아이가 무조건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유모차를 고르는데 신경을 쓸 텐데 이온 두는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한다. 

‘그녀의 말에 피곤이 묻어났다. 나는 친절한 판매 사원이 아니었다. 때문에 멀리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고객의 간단한 인적 사항 등을 파악한 후, 이온 두는 바퀴가 아주 큰 유모차를 소개하는데 보통의 판매원들이 할만한, 친절과 미소를 동반한 소개보다는 고객 입장에서는 다소 듣기 거북한 얘기를 한다. 

 “다시 말할게요. 이 유모차를 끌고 오전에 두 시간씩 외출을 하세요. 힘이 붙으면 빠른 걸음으로 운동하세요.”

 “애를 태워서요?” “그럼 유모차에 누굴 태우려 하셨어요?” ‘내 말투는 썩 좋지 않았지만 그녀도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바퀴가 세 개밖에 없네요. 전복되지 않을까요?”

“앞바퀴와 연결된 프레임이 이렇게 길게 쭉 앞으로 빠져나와있지요. 바퀴 네 개 달린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에요. 이건 뛰는 용으로 나왔어요. 그러니깐 여기에 애를 태워서 뛰어도 되는 유모차란 것이요.”

“이 저한테 이걸 사라는 거죠?”

“왜 이걸 추천했는지 잘 아실 텐데요. 소담 어머님은 꼼짝을 못 하고 있어서 산후 우울증에 걸린 거예요. 오전에 집에 있지 말고, 아이를 태우고 공원이나 산책로를 뛰어다녀요. 아이는 아마 아주 잘 잘 거예요. 햇빛만큼 두 분 모자께 필요한 건 없어요. 일주일간 써보세요. 지금 생활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면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설득 메시지를 접하면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첫인상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가 어렵듯이, 사람은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제안이나 설명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색안경으로 삐딱하게 바라보고 순간적으로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훌륭하고 매력적인 메시지라 할 지라도 곧이곧대로 들릴 수가 없다. 더구나 제안자의 전문성이나 권위가 떨어진다면 신뢰도도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고 설득은 더더욱 어렵고 힘들다. 이럴 때 ‘무조건 100% 된다.’ 거나 ‘무조건 확실하다.’는 메시지보다는 상대방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면서 50%의 가능성을 제시하면 이번에는 제안을 받은 쪽에서 반응이 온다. ‘오 할만 하겠는데. 한 번 해 볼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놀이든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공존할 때 그 재미가 극대화된다. ‘내가 조금만 신경 쓰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사람들의 태도는 아주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의미이다. 

앞서 소설에서도 소담 엄마가 ‘무조건 아이가 편안해하는 유모차.’라는 말을이온두로부터 들었다면 더더욱 까다로운 고객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아니라 ‘엄마는 아이와 같이 햇빛을 받고 따로 운동이 필요하다.’는 메시지에 흔들린다. 즉 엄마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당연히 ‘나도 노력을 해야겠지만 충분히 할 만하겠군.’이란 생각 때문에 불친절한 이온두의 태도에도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순순히 결제를 했다. 

 ‘100% 좋아요!’보다 ‘50%만 좋아요.’가 때로는 더 설득력이 있다. 나머지 50%는 상대가 알아서 움직인다. 도전 정신이 생기고, 그 도전 때문에 설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TV 홈쇼핑에서는 이런 식의 메시지는 별로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무조건 제품의 우수성에만 집착하다 보니까, 모두들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포인트를 찾지 못하고 허공에 대고 무조건 좋다고만 외쳐댄 것이 아닐까? 만약 다이어트 상품을 한다면 이렇게 외치리라.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이것만으로 살을 빼겠다는 생각은 하지 도마세요. 세상에 그렇게 절대적인 100% 다이어트 상품은 없습니다. 단 꾸준한 운동을 하겠다는 분들은 주문하세요. 이상품의 다이어트 효과는 자신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럼 방송을 보는 시청자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지. 다이어트는 내가 하는 거니까. 상품 효과는 확실하다니까……. 한 번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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