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을 섞어 설명하라
“선도 연합회요?”
“ 그래. 선도 연합회. 너도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우리 지역에선 공식적으로 일진이란 말 안 써. 우리끼리야 내막을 아니까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재훈이 형도 회장님 뭐 그런 소리 듣는 것 웃긴다고 싫어하니까 일대 부대 그러지만, 공식적으로는 회장 부회장 부장 그렇게 다 따로 간부 직급이 있어. 재훈이 형이 선도 연합회 회장이야. 내가 우리 학교 자율 선도부 부장이고. 자율 선도부가 뭔지 모르지?”
“선도부 아닌가요?” 강충식이 고개를 저었다.
“선도부는 따로 있고. 우린 자율 선도부 소속이야. 아침에 등교할 때 교문 앞에 서 있는 애들이 선도 부고 우린 그런 건 안 해. 우린 야간에 애들 시내 단속 같은 걸 하지. 공식적으로는. 학원 폭력 근절 뭐 그런 활동도 하고.”
시내 단속? 무언가 앞뒤가 바뀌어 있는 것 같았다. 일진이 학원폭력 근절 활동을 한다고?
도선 우의 소설 ‘스파링’의 한 대목이다. 고아원 출신의 타고난 싸움꾼 강태주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일진도 아닌, 그렇다고 선도부도 아닌 신흥 폭력 집단의 입단 제의를 받지만 단칼에 거절하고 거기다 그 집단의 이인자를 한 방에 때려눕힌다. 그리고 다음날 쓰레기 소각장에서 그 자리에 있었던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에게 선도 연합회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쇼호스트를 하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방송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주위에 있는 누구에게나 내가 하고 있는 상품의 장점을 얘기할 때면 상대는 ‘아 그런 좋은 상품이 있구나~.’하는 반응보다는 다음 반응 부정적일 때가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오늘 방송하는 상품 뭐야?”
“응 몸에 좋은 홍삼.”
“그래? 홍삼은 체질에 따라서 다르다고 하던데…… 괜찮아?”
체질과 상관없이 괜찮다고 말을 하면 대부분 그다음은 가격이나 형태(농축액인지 파우치인지)를 물어보면서 본능적으로 어딘가 단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어릴 때부터 ‘~하지 마.’ 소리만을 듣고 살아서 그런지 좀처럼 긍정적인 면에 호응을 하는 사람을 자주 보진 못했다. 이런 성향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위 소설에서 강태주의 반응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새로운 집단에 대해서 갈등도 있기 때문에 반감도 적지 않았겠지만 이 장면 전에 충분한 설명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물론 자세한 설명은 저 장면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강태주는 여전히 삐딱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입장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결국 대화는 많이 했지만 태주는 선배 강충식이 얘기하는 내용에 동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 소설의 스토리도 그렇게 진행이 된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구두쇠’가 떡 하니 들어앉아 있어서 무언가 처음 접하는 것을 보게 되면 좀처럼 후한 점수를 주지 않고 단점을 먼저 찾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머리에 구두쇠가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태도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상대가 생각할 만한 부정적인 정보나 생각을 먼저 언급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앞서 언급한 홍삼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상대가 생각할만한 부정적인 포인트를 내가 먼저 지적하는 거다.
“오늘 방송하는 상품 뭐야?”
“응 몸에 좋은 홍삼.”
“그래? 홍삼은 체질에 따라서 다르다고 하던데? 괜찮아?”
“그럼 당연하지. 특히 나 요즘처럼 미세먼지 많을 땐 면역력이 떨어지니까 당연히 홍삼이 필요하지. 단 가격이 좀 비싸긴 하지만 농축액 타입이라 조금씩만 먹어도 효과는 확실히 다르잖아.”
“아.. 비싸긴 해도 필요하겠구나.”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포인트를 단순화해서 3가지로 압축해서 전달하라는 메시지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5가지 10가지를 줄줄이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쉽게 얘기하면 정보는 엄청나게 많이 늘었지만 이에 반비례해서 관심은 뚝 떨어졌다. 관심이 없는데 정보가 무슨 소용이 있나. 더구나 우리의 머리엔 이미 예전부터 짜디 짠 구두쇠가 떡 하니 들어앉아 있는데. 그래서 포인트를 3가지로 압축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여기에 중간에 살짝 부정적인 메시지나 질문을 추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신 이것을 맨 처음이나 마지막에 언급하는 것은 금물이다. 처음부터 부정적인 메시지를 접한 사람은 그것이 처음에 각인이 돼서 끝까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게 된다. 첫인상이 나쁜 사람이 나중에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그 인상이 좋아질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 않다. 마지막에 부정적인 정보를 접하면 그냥 부정적인 인상이나 기억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법은 중간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오히려 내가 먼저 노출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긍정의 포인트를 2개 제시했다면 그다음은 부정적 포인트를 전달한 다음 그 부정적인 포인트를 압도할 만한 가장 매력적 인정보를 제시하는 것이다.
두피에 레이저를 쏴서 머리카락이 새로 나게 하는 ‘발모 기기’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이미 식약처로부터 ‘발모가 된다.’를 표현할 수 있도록 허가까지 받았기 때문에 방송하는 것이 그렇게 쉬울 수 없었다. 그동안은 어떤 제품이든 기껏해야 ‘탈모 방지’ 정도만을 언급할 수 있었는데 ‘발모’라니. ‘머리카락이 자란다.’라니. 더구나 한국인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까지 마쳐서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으니 신뢰감이 팍팍 묻어난다. 탈모로 고생하는 많은 이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이니 굳이 따로 부연 설명을 안 해도 ‘임상 시험 결과’과 ‘발모’만을 얘기해도 되는 땅 짚고 헤엄칠 수 있는 고마운 상품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면 뭔가 양념이 덜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조건 좋다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 같아 1. 발모(결과 제시) 2. 식약처 임상 시험 결과(근거 제시)의 두 가지 정보를 전달한 후에 일 부러 부정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다.
“이렇게 임상 시험 결과를 봤듯이 모낭만 살아 있다면, 8주 동안 하루에 18분씩 레이저를 쏘이면 머리카락이 새로 자라거나 기존의 머리카락이 굵어집니다. 그런데 이걸 보시고 어느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저거 머리숱 많은 사람 데려다가 시험한 거 아냐?’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험에 참가했던 분들의 모발 상태를 공개하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공개하면 그 안에는 머리숱 상태가 심히 안 좋은, 속알 머리 없는 사람, 주변머리 없는 사람, 앞이 훤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모르긴 해도 제품에 대하 신뢰도가 급상승했으리라.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한마디를 더한다.
“보셨죠? 이런 분들이 시험에 참가했습니다. 이제 인생 역전이란 말은 복권에서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 역전보다 더 큰, 더 짜릿한 한 방이 있습니다. 우연도 아니고 행운도 아닙니다. 과학에 맡기세요. 이제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무조건 장점 만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단점을 질문의 형태로 섞으면서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설명하면 상대의 관심이 증폭된다. 세상엔 정보는 넘치지만 관심은 갈수록 줄어드는 세상에 꼭 새겨야 할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