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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19. 2017

NOVEL REQUEST

귀가 열리는 특별한 코멘트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MC가 했던 이 말은 금세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됐다. 지금도 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조마조마했던 발표 순간 때 나왔던 이 한마디로 모두들 탄식을 자아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순간에 “광고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잠시 후에 공개합니다.”라고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탈락자를 확인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들어오는 광고는 짜증을 유발한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 광고가 수입의 원천이므로 아주 중요하겠지만 시청자는 그 순간을 기다리기가 못 견딜 정도로 길다. 그래서 “광고 후에 공개합니다!”라는 말처럼 얄미운 말도 없다. 그런데 이 말을 살짝 다르게 돌려서 “60초”라는 말을 하니까 부정적인 반응이 거짓말처럼 줄어들었다. 광고라는 말 대신 ‘60초’를 제시하면 시청자는 순간적으로 60초 만을 생각하고, 60초라면 충분히 기다릴 만한, 만만한 시간이라는 무의식이 발동한다. 그리고 늘 생각했고 예상했던 ‘광고’란 단어 대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60초’를 들으면서 신선함 또한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누가 어느 순간에 어느 곡을 노래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거나, 반대로 다음 단계로 진출했는지, 또 어느 곡을 노래해서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대신 오직 MC의 우렁찬 목소리 “60초 후에 공개됩니다.”만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더니 그야말로 말 한마디로 광고 대신 60초라는 낱말 바꾸기로 가차 없이 채널이 돌아갈 위기를 모두가 숨죽여 기다리며 광고를 보는 역전의 시간으로 바꿔버렸다. 한마디로 천덕꾸러기가 신데렐라로 변신한 셈이다. 이렇게 누구나 예상하는 평범한 얘기가 아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마디로 상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 나아가서 그 예상 밖 한 마디에 대해 상대가 스스로 상상하고 예측하게 하는 화술의 기법을 피크 테크닉(Pique Technique)라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산토스(Santos, Leve and Pratkanis (1994))가 피크 테크닉에 대한 정의를 내린 주인공인데, 그는 거지로 분장시킨 실험자에게 길거리에서 한 시간 남짓 동안 다음 두 가지의 말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도록 시켰다. 하나는 “미안하지만 저에게 돈을 좀 주시지 않겠습니까?”였고 또 하나는 “미안하지만 저에게 17센트만 주시겠습니까?”였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에 지나가는 사람들 중 몇 퍼센트가 거지의 요청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 실험을 했다. 첫 번째 질문에서는 지나가는 사람 중 44%가 거지의 부탁에 응했다. 44%의 사람들이 부탁을 들어줘서 돈을 주거나 부탁에 말로써 응대를 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두 번째 부탁, “미안하지만 저에게 17센트만 주시겠습니까?”라는 말의 응대율은 무려 75%까지 올랐다. 이 실험도 역시 앞서 ‘광고’와 ‘60초’의 비교와 일맥상통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거지의 행색을 보고 쉽게 떠오를 수 있는 평범한 말인 ‘돈을 좀 주시겠습니까?’ 에는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광고 후에 공개합니다.’란말을 듣고 짜증을 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 ‘17센트 만주 시겠습니까?’에는 마음이 움직였다. 행인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거지에게서 뻔한 말이 아닌 생각 밖의 말을 듣는다. 그러고 나서 그 17센트란 낱말에 호기심이 작동한다.  ‘왜 하필 17센트일까?’ 일단 호기심이 작동하면 부정적인 마음은 긍정적으로 마인드 세팅이 바뀐다. 그러고 나서 행인은 고맙게도 이 ‘17센트’에 대해서 나름의 상상력까지 발휘하기 시작한다. ‘하고 많은 돈 중에 17센트를 콕 짚어서 얘기할 정도면 이 사람은 분명히 필요한 이유가 있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참고로 산토스는 이 실험 논문에서 이런 ‘한 푼 줍시오’가 아닌 ‘17센트만 주세요’처럼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로 요청하는 것을 ‘novelrequest’라고 하였다. 아마도 상대로 하여금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조정래의 장편 소설 ‘풀꽃도 꽃이다’에서의 주인공인 강 교민은 수업 중 학생들을 둘러보고는 칠판으로 돌아선 후 한 문장을 적는다. 

<필요한 사람은 적어두도록>

 보통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무언가를 적으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당연한 듯이 그 무언가를 따라 적게 된다. 그런데‘필요한 사람은 적어두도록’이라고 적으면 자연스럽게 그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선생님이 칠판에 적으셨으니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은 적지 않으실 것 같고, 결국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적으시려나 보다.’까지 상상하게 한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너나 할 것 없이 칠판의 내용을 따라서 노트에 옮겨 적는다. 그냥 “중요한 것이니 노트에 필기해라.”라고 하는 말보다 더더욱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novel request’가 된 셈이다. 강 교민 선생이 학생들에게 필요한 사람을 적어두도록 부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 중에 하나는 나와 남을 비교해 가며 불행을 키우는 것이다.’

‘공부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많은 능력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듯이 인간의 모든 능력도 평등하고 공평하다.’

‘학교 교육의 가장 큰 잘못은 시험 점수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규정하고 속단하는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한평생 신명 나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다.’  

‘이 세상에 귀하고 천한 직업은 없다. 도둑질과 사기가 아닌 한 그 어떤 직업이든 소중하고 존귀하다.’

‘성공한 인생이란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한 평생 열심히 즐겁게 해 나가고, 그리고 사는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노년을 맞는 것이다.’ 

‘인생은 연극이다. 그런데 그 연극은 극작가도, 연출가도, 주인공도 자기 자신이면서, 단 1회의 공연일 뿐이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 교육가 닐-  

 읽어 보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인데, 강 교민 선생은 오히려 ‘novelrequest’를 구사하면서 내용의 중요성을 더 크게 학생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확실히 ‘소통’은 훌륭한 선생님에게 반드시 필요한 첫 번째 덕목이다. 

 대한민국 연예인 중에서 지상렬은 뻔한 뜻의 말을 뻔하게 구사하지 않고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을 구사하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유쾌하게까지 만든다. 한 마디로 ‘핀 테크닉’을자유 자재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가 TV나 라디오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그의 말에 집중한다. 

‘이 사람들이 입에서 쓸개즙이 나오네.’(말을 막 하네)

‘어디다 대고 지문을 묻혀?’(어딜 만져?)

‘혀에 니스 좀 발랐구나.’‘훈민정음 드리블 좀 하는데.’ ‘너 혓바닥에 와이파이 좀 터진다.’(말 잘하네)

너 언제부터 내 말에 리플 달았어? (너 왜 말대꾸 질이야)

 꼭 기억하자. “저 할 말 있는데 시간 좀……”과 “저 할 말 있는데 30초만 들어주실래요?”는 뜻은 같지만 효과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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