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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21. 2017

몸이 풀려야 마음이 풀린다.

답답하고 갇혀있는 듯한 일상을 타파하는 방법

 언젠가 유명 소설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 워낙 좋아하는 소설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누군가 돌발 질문을 했다. “글이 잘 안 써질 땐 어떻게 하세요?” 그 질문을 들은 소설가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음…… 저는 뛰어요.” 뭔가 거창한 답변이 나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냥 뛴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소설가의 집에는 트레드밀, 즉 러닝머신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문장 하나, 낱말 하나에도 혼을 실어서 스토리를 만드는 소설가들에게 글이 안 써진다는 건 경험하진 못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그 스트레스를 뛰는 걸로 이겨낸다니? 그럼 어지간히 뛰고 나면 꽉 막혔던 글이 다시 술술 풀린다는 얘기일까? 그 소설가가 ‘뛴다’는 답변을 했을 때 강의장에서는 순간 폭소가 터졌지만 그 소설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단순히 뛰기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글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위대한 사상가나 철학가들이 다른 습관은 몰라도 산책을 즐겨했다는 얘기는 많이 본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라면 운동 부족 때문에 여기저기 몸에 군살이 붙는 건 물론이고, 이런저런 몸 고장으로 고생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운동을 하지 않으면 뇌에도 지방이 붙는다. 그래서 생각이 둔해지고 탄력을 잃는다는 사실은 웃어넘길만한 얘기는 아닌 듯하다.

글쓰기에 타고난 자질을 갖고 있고, 남다를 시각으로 사람들의 일상을 재미있게, 또는 뛰어난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작가라 할지라도 한계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 벽을 이렇게 원시적인 방법으로 타파한다니 좀 의아하긴 했지만, 시청자를 상대로 재미있는 말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그 말을 들은 이후로 항상 마음에 새기고 틈만 나면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침울한 상태에서 좋은 생각이 나올 수가 없다. 기분이 다운됐는데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마음이 잔뜩 흐림인데 몸 상태가 맑음일 수 없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마음이 몸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살아야 마음도 살고 머리도 한층 더 밝아진다는, 그래서 더 머리가 팽팽 잘 돌아간다는 얘기다.

백영옥의 ‘애인의 애인에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앞두고 고통스러워 하는마리라는 여성이 있다. 미국 영주권 자인 그녀가 유학생 성주를 위해서 결혼까지 감행하면서 성주의 영주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성주는 그새 변해있었다. 마리는 남편인 성주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알아채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모른 척하고 성주의 행동만을 주시하고 있다. 점점 둘 간의 대화는 없어지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이별은 점점 더 강하게 굳어져 간다. 하지만 그런 성주를 증오하는 만큼 사랑하는 마리는 혼자만의 상상과 침묵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항우울제 처방을 받고 약을 먹는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는 이곳에 머물러야만 했다. 지금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살아야 하는 것. 그게 그의 현재이며 미래였다.’ 

마리의 고통이 어땠을까? 점점 누더기가 돼 가는 몸을 이끌고 그녀가 간 곳은 앞서 말한 대로 병원이었다. 그리고 약을 받고 처음으로 처방받은 약을 삼킨다. 그리고 그다음 그녀의 행동은? 개인적으로는 잠을 자거나 아니 면술을 마시거나 또는 성주에게 그동안 참았던 화를 폭발하는 것으로 스토리를 예상했지만, 마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했다.

‘그날, 처음으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삼켰다.

마루를 쓸고 휴지통 네 개를 깨끗이 비웠다. 마루를 다시 쓸고 행주로 닦고 네 개의 휴지통을 씻었다. 커튼을 빨았다. 그릇들을 정리했다. 세탁해 말린 커튼을 다시 빨았고, 그릇을 다시 정리했다. 욕실 바닥과 변기의 뒷부분까지 락스를 뿌려 닦았다.’

한마디로 집안 대청소를 했다. 커튼까지 다시 빨았다. 그릇은 두 번 정리했다. 멀쩡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해도 모자를 일을 우울증 약을 삼킨 상태에서 이 엄청난 일을 한 것이다. 마리는 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뽑아내기 위해 대청소를 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극심한 우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본능적인 방법으로 대청소를 했다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약을 처방받아서 바닥까지 떨어진 세로토닌 수치를 올리는 방법도 사용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우울에 지친 마음을 바꾸고, 뇌의 상태를 바꾸는 방법으로 마리는 몸을 쓰는 것을 선택했다. 

 언젠가 승마 운동기를 방송한 적이 있었다. 지난 방송을 모니터 하면서 승마 운동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나이를 보니 압도적으로 50대 이상이 많았다. 결국 그들의 마음을 움직 여야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릴 것 같은데, 코어 근육이 어떻고 허리 운동이 어떻고, 원리를 얘기해 봐야 큰 효과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승마운동기 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부터 시작했다. 

“요새 자주 깜빡깜빡하거나 쉽게 피로해지고 힘이 약해지진 않으세요? 또 괜히 불안하거나 초조해서 저녁에 잠을 잘 못 이루진 않으세요?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 도 잘 못 보신다고요?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잔소리가 많아지진 않으세요? 이게 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나이를 먹어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얼마든지 젊을 때 몸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운을 띄운 다음 ‘정신이 늙는 건 몸이 늙어서 그런 것이다.’ ‘나이 먹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네 깜빡깜빡하네 이런 말씀 마시라. 몸이 젊어지면 마음도 젊어지고 머리도 같이 활발해질 수 있다.’를 강조하면서 제품 설명을 했더니 확실히 주문이 많았다. 어찌 보면 예전 같지 않은 본인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스스로 놀라거나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아닐까? 특히나 이런 몸의 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물론 승마운동 효과의 특징을 빗대어서 ‘허리를 바로 세워야 건강 이바로 섭니다.’ ‘승마운동기로 허리를 똑바로! 곧추 세우세요!’등의 우스개 소리로 이목을 끌긴 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브레인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디에서 본 통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나라 남성 40대 3명 중한 명이 만성 피로, 불면증, 집중력 저하, 근력 감소 등 갱년기 증상을 겪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빠르게 늙어간다는 얘기다. 이게 어디 남성 40대에만 국한된 얘기일까? ‘내가 왜 이렇게 멍청해졌지?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돌지 않으니 답답해……’ 불안해하지만 말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습관을 만들자. 내가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을 아주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그러면서 효과적인 방법은 일단 막혔다 싶으면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땀을 내면 더더욱 좋다. 행복을 느끼는 데 기여하는 호르몬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가면서 보이지 않던 답이 순식간에 나올 수 있고,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아이디어가 샘솟거나 용기가 용솟음 칠 수 있다. 분명한 건, 몸이 굳으면 머리도 같이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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