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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Jul 27. 2017

사람은 입은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

옷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내가 주로 진행하는 상품 중에 ‘생식’이 있다. 워낙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고, 약이나 인공적인 건강 기능 식품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더해지면서 매출이 상당히 좋은 상품이다. 이생식의 레시피를 직접 개발한 만든 의학박사의 명언이 있는데 그 말이 바로 ‘사람은 그 사람이 먹은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성인 기준으로 1주일 동안 마시는 커피가 잔으로 12잔이 넘는다. 쉽게 말해서 밥보다 커피를 더 마신다는 얘기다. 여기에 육류 섭취량은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제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짜게 먹고 탄수화물을 좋아한다. 이런 상태에서 몸이 항상 푸르른 봄날처럼 산뜻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도둑 심보다. 먹는 게 이러니 당연히 컨디션이 항상 바닥이다. 몸에 병이 있는 것은 아닌데 입원해 있는 환자보다도 더 안색이 안 좋다. 이런 상태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고, 잘못되었는지 알면서도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식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생식을 먹으면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이 좀 씻겨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뇌리를 스칠 때 들리는 서울대 출신 예방의학박사의 카랑카랑한 한마디. “사람은 그 사람이 먹은 그대로의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 방송을 할 때마다 매 번 박사의 인터뷰 화면이 나올 때부터 주문 콜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백번 지당한 말이다. 몸에 좋은 것 먹으면 몸이 좋아지고, 입이 좋아하는 것 먹으면 몸이 망가진다. 아주 평범한 진리인데도 세상에는 비범한 사람 투성 이어서일까? 좀처럼 이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여기에서는 물론 몸에 좋은 음식을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은 그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 진리라면 또 하나의 평범한 진리가 있다. ‘사람은 입은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사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로 이 중요한 진리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장강명의 소설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통일 이후의 혼란 상황을 그린 이야기이다. 북한 김 씨 정권의 몰락으로 갑작스럽게 통일을 하게 된 대한민국. 다른 여러 문제들보다 우선 북한 지역의 치안과 군사적 보호가 절실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군에서 제대한 예비역 학사 장교들을 다시 징집해서 북한 지역에 배치한다. 그래서 유엔에서 파견한 평화유지군과 함께 북한의 안보를 담당한다. 게임 기획자로 일을 하던 강민준은 느닷없이 재 입영 통지를 받고 한 달간의 군사 교육을 받은 후 북한 개성공단으로 발령을 받는다. 남자에게 있어 두 번 입대한다는 사실은 두 번 죽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말았다. 더구나 남한의 입영 대상자들 사이에는 북한 근무에 대한 괴문서도 돌고 있다.

‘현역 입대를 해야 하는 남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꿀 임지’, ‘헬 임지’를 분류한 인터넷 문서가 돌았다. 문서는 서론에서 ‘무조건 남한에 배치되는 게 좋다. 있는 백 없는 백 다 써라. 남한 방공포병이 평화유지군 휘하 부대의 비 전투 병과보다 낫다.’

이런 와중에 공단이 밀집돼 있는 개성의 헌병대로 발령을 받은 강민준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아예 산중이라면 북한의 극심한 추위만 견디면 되는데 일거리가 많은 공단지역은 북한 여기저기서 무직자들이 몰려오고, 인민 보위부의 잔존 세력이 알게 모르게 진을 치고 있고, 신흥 폭력 조직까지 가세한 가장 위험한 우범지대다. 이런 와중에 강민준은 부대가 있는 장풍군에 대한 인터넷 문서를 보고 더욱 좌절한다.

‘개성 앞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개막 장중의 개막장이다. 지난해 남북한을 통틀어서 시군 구 단위로는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 멕시코나 엘살바도르의 시골 우범지대를 생각하면 된다. 장풍군에 배치되면 생명 보험 꼭 들길. 어차피 뒈질 인생이라면 가족들에게 좋은 일이라도 하자.’

제발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제대만을 하길 간절히 기도했던 강민준에게는 어쩔 수 없이 어마어마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다행히도 강민준은 아슬아슬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평화유지군과 함께 장풍군의 마약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치열한 소탕 작전 후 가벼운 부상을 입고 입원해 있는 강민준은 평화유지군 소속 미녀 대위 롱과 대화를 하는데 여기서 옷차림에 대한 결정적인 얘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나무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대위님.” 민준이 말했다.

“수류탄을 몸으로 덮을 생각은 어떻게 한 거예요?” 롱의 질문에 강민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수류탄이 정말 제 바로 앞에 떨어졌거든요. 어차피 터지면 죽을 처지였습니다. 도망을 갈 곳도 없었고요.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잖아요? 기왕이면 다른 장병들을 살리는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정말요? 그 짧은 시간에 그걸 다 생각한 거예요?” 롱이 물었다.

“아니오.” 강민준이 말했다. 롱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뭐예요?”

“그냥 창피했거든요. 저는 장교이고,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젊은 사병들이었어요. 장교 옷을 입고 이럴 때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전까지 군복이나 계급장에 길바닥에 떨어진 낙엽만큼도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었다. 군인으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해 본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상황이 되자 그에 따라 행동했다. 타고난 개인주의자로서, 민준은 군인 정신, 충성심 같은 단어나 ‘군인은 군인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따위의 구호에는 여전히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강요된 의무감 없이 다시 수류탄 앞에 섰을 때 자신이 막연한 인류애와 냉철한 이성만으로 용기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강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본래 자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는 뜻이 된다. 더위를 막고 추위를 견디게 하고 피부를 보호하는 기능을 하는 옷이 본래의 역할을 넘어서 사람의 본질까지 바뀌게 하는 역할을 했다니.

부분적 인평가가 전체 평가에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는 심리 효과로 ‘후광 효과’가 있다. 깔끔하고 스마트한 옷차림은 분명 나를 보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후광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내가 선택한 옷차림 덕에 나 자신이 나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점잖고 멀쩡하던 사람도 예비군 군복만 입으면 자세가 바로 달라지는 걸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으로 바뀌기 위해서 옷차림의 덕을 볼 것인가? 아니면 옷차림 탓을 할 것인가? 특별한 날에 특별한 옷을 차려입을 것이 아니라 평범한 날에도 특별하게 의상을 선택한다면 조금씩 나 자신이 특별하게 바뀌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열 일 제쳐두고 의상 선택만큼은 신중하게 고려한 후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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