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크기에 멘탈이 좌우된다
개가 큰 소리로 짖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있는 영역에 낯선 존재가 다가오거나 할 때 이를 주인에게 알리거나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크게 짖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소심하거나 두려움이 많은 개일수록 더 크게, 격렬하게 짖는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덩치가 큰 개일수록 크게 짖거나 하는 행동은 자주 보진 못한 듯하다. 작은 개일수록 쉬지 않고 크게 짖는다. 강아지가 크게 짖는 것을 보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심리 상태가 어떨 때 목소리가 커질까?
최민석의 소설 능력자에는 유별나게 목소리가 큰 한 남자가 등장한다. 3류 소설가인 남루한에게 자서전을 부탁하려 하는 전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공평수. 안타깝게도 공평수는 선수 때 맞은 펀치의 후유증인지 굴곡이 많았던 인생 때문인지 정신 상태가 약간은 정상적이지 않다. 급기야는 자신은 매미로부터 신비의 에너지를 전수받아 초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이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허황된 포부까지 갖고 있다. 다음은 남루 한과 공평수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그때였다. 그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찌른 것이……
그는 기세 좋고, 당당하고, 자신 있고, 호탕한 목소리로 30평 남짓한 식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마 식당이 100평, 1000평, 아니 1만 평이라 해도 그 목소리로 가득 차고 남을 정도였다. 만약 그 목소리가 시청 앞 광장에서 울려 퍼졌다면, 플라자 호텔의 벽에 걸린 행사 안내 대자보가 들썩거릴 정도였으며, 광화문 광장 앞에서 울려 퍼졌다면, 이순신 장군이 깜짝 놀라 칼을 8차선 도로에 떨어뜨리거나, 세종대왕 역시 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거나 뒤로 나자빠질 정도였다.
“반갑다 조카야.”
그는 또 이순신 장군이 칼을 놓치고, 세종대왕이 책을 떨어뜨리다 못해, 미국 조지아 주의 스톤마운틴에 새겨지니 남부군 장군 세 명이 동시에 식겁하여 말에서 떨어질 정도로 크게 말했다.
“내, 네 말 마이 들었다 아이가- 끼 가락국수!”
“네?”
귀청이 떨어질 듯한 큰 목소리 만으로도 온 정이 떨어지는데 어색한 말장난까지 하고 있다. 약간 정신 이상자 공 평수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짧은 글로도 아주 쉽게 이해가 가지만 여기서 눈여겨볼 중요한 포인트는 공평수의 큰 목소리이다. 물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목소리도 정상일 수가 없다. 아주 크거나아주 작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그래도 공평수를 보고 하나 인정할 것은 그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쯤 미친 사람이 당연히 허황된 자신감으로 목소리가 넘치도록 큰 것 아냐?’라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정신이 정상인 사람도 평상시에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쇼호스트들이 많이 모여 있는 사무실이나 분장실에 가서 동료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누가 요새 가장 잘 나가는지 아주 쉽게, 단박에 알 수 있다. 방송만 했다 하면 매출 목표를 거뜬히 넘기거나, 아니면 매진을 밥 먹듯이 하거나, 남들이 다 말아먹은 상품을 거짓말처럼 정상 궤도에 올려놓거나 하는 능력 있는 쇼호스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바로 남들보다 큰 목소리로 말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어디에 있는지 얼굴은 보이지 않는데 그 사람의 목소리부터 들리는 경우도 있다.
원래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발성 훈련이 잘 되어 있는 편이어서 목소리가 큰 편이다. 그런 상태에서 조금만 더 큰 목소리로 말을 해도 어지간한 사람 소리 지르는 것 못지않다. 이런 동료는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라 동시에 생기가 넘치는 인상에, 힘이 넘치는 눈에서는 밝은 빛이 나온다. 이런 사람의 심신 상태는 한마디로 ‘나는 지금 자신감이, 에너지가, 활력이 넘쳐 있는 상태고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야!’라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이런 큰 목소리를 듣는 사람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니히토 요시히토의 ‘쎄 보이는 기술’[i]엔비슷한 내용의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비디오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비디오를 만들어 258명의 대학생들에게 보여주고 각각의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했다. 그 결과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1. 신뢰가 간다. 2. 교양이 있다. 3. 정직하다. 4. 지적이다. 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아주 쉽다. 어떤 말을 해도 목소리가 작다. 목소리가 작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 발음 마저도 웅얼웅얼하게 돼 더더욱 잘 안 들린다. 이런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받기가 쉽지는 않다. 신중하고 조심성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도 긍정적이고 높은 이미지 점수를 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단순하게 음색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잘 들려야 목 소리가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상대가 잘 알아들으려면 먼저 내가 크고 또렷하게 말해야 한다. 혹시 지금 무기력 증에 빠져 있거나,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져 있다면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이 마음의 근력을 키우는 방법은 몸의 근력과 비례하긴 하지만 우선 지금의 목소리보다 조금만 더, 한 10% 정도만 더 크거나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자. 이것 역시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일단 용기를 내서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또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면 마음의 근력은 몰라보게 단단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메말랐던 자신감 또한 폭발적으로 넘쳐날 수 있다.
마음의 근력을 올리는 보디랭귀지 하나 더. 이종 격투기 같은 험한 경기에서 코치나 스태프들이 선수들에게 항상 요구하는 것이 있다. 말도 안 되게, 혹은 처참하게 K.O패 했다 할지라도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말고 꼿꼿하게 세우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장면을 많이 봤는데.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는 의미는 ‘나는 경기에는 졌지만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렇게 당당한 패자의 모습을 어필해야 그 기세를 인정받아 다음 매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기운이 없거나 허약한 사람의 고개는 항상 아래로 향해 있다. 실제로 이런 자세는 ‘나는 나약한 인간입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꼴이다. 그리고 십중팔구 멘탈도 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자세가 거듭돼 고고 정 될수록 수렁에 더 깊게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피해를 보는 건 본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세상이 움직인다고 느끼면서 무언가 두렵고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소심해질수록 턱을 드는 습관을 들어야 한다. 턱을 들어야 어깨가 펴지고 상체가 꼿꼿해진다. 턱을 들고 상대를, 혹은 다른 사물을 응시할 때 정신적으로 단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음 또한 단단 해 질 수 있다.
[i] 쎄 보이는 기술. 니히토 요시히토. 신주혜 역. 지식여행. 2014.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