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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현 Aug 02. 2017

기분을 UP 하는 방법

  가뿐한 발걸음에 대하여

골프 방송을 하다 보면 골프 경험이 많은 해설가로부터 골프 관련 이야기지만 인생에도 도움이 될 만한 재미있는 얘기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나 1대 1 대결, 맞대결 형식의 매치 플레이에서는 골프 실력보다도 심리, 즉 멘틀이 결정적으로 승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동 하나하나가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 동남아에서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예선 경기, 16강 플레이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해설가가 다소 엉뚱한 소리를 나에게 했다. 

 “에이…… 쟤는 이번 대결에서는 안 되겠네…… 틀렸어.”

“누구요? 덩치가 작은 친구요?”

“아니, 큰 애.”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저 선수가 비 거리도 많이 나고 경력도 좀 더 나은데.”

“두고 봐. 쟤 곧 실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질 거야.”

이 해설가는 수십 년 동안 다져진 골프 내공이 있어서 그런지 선수의 스윙 동작 한 번만 보고도 해당 경기의 승패나, 심지어 우승 선수도 잘 맞히곤 해서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예상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조건 질 거라니. 그때 당시 승부는 라운드 초반이어서 박빙의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야 뭐 아마추어니까 선수 보는 눈은 한참 멀었지만 그래도 저 선수는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데……?”

“쟨 걸음걸이가 너무 쳐졌어. 저 봐 힘 없이 터벅터벅 걷잖아.”

“아 진짜. 해설위원님 엉뚱하시네. 아니 골프 선수가 샷(Shot) 만 잘하면 됐지. 걸음걸이랑 무슨 관련이 있어요? 그럼 뭐 힘차고 당당하게만 걸으면 무조건 다 이기겠네?”

“실력이 엇비슷할 때는 그때부터는 멘탈 싸움이야. 덩치 큰 친구는 저 걸음걸이로 스스로 플레이를 망치고 있어.” 

“에이…… 내기할까요? 얼마짜리? 해설위원님 이건 좀 억지예요!”

경기 결과, 덩치 큰 선수가 경기에 졌다. 그것도 아주 큰 스코어 차이로. 경기 초 중반까지는 서로 비슷하게 승패를 주고받더니. 중반 이후부터 덩치가 큰 선수가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어이없게 승리를 헌납했다. 축구로 치면 전반전엔 0대 0으로 팽팽하게 가다가 후반전에 내리 서너 골을 내주면서 무참하게 참패한 결과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18홀 내내 선수들의 걷는 모습만 살펴봤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한 선수가 버디를 기록한 다음의 걸음걸이와 실수를 해서 파를 놓쳐서 보기나 그 이상을 한 다음의 걸음걸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나 한 번 무거운 발걸음을 보이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 걸음걸이에서 경쾌한 모습으로 되돌아 오기가 무척 힘들었다. 바로 해설위원에게 물어봤다. 

“위원님 진짜로 어딘가 걷는 게 무겁고 무기력해 보이면 경기력에도 영향이 있나 봐요? 멀쩡하던 친구가 어떻게 저리 확 무너지죠?”

“경기를 즐기라고 하잖아. 평소에 연습량이 뒷받침돼야만 경기를 즐길 수 있겠지만 경기를 즐기는 사람은 발걸음이 무거울 수가 없어. 발걸음이 가벼운 사람이 얼굴 표정이 굳어질 수도 없는 거고. 그런 선수는 간혹 실수를 했다 해도 바로 회복할 가능성이 높거든.”

“아.. 그럼 좋은 기량을 갖고 있다고 해도, 승패에 집착하거나, 조금이라도 자신의 스윙을 믿지 못하면 발걸음이 가벼울 수가 없겠네요. 그러면서 점점 자기 자신을 수렁에 빠트리게 하는 거네요.”

“그렇지. 뭐 골프만 그렇겠어? 인생이 다 그렇지. 그래서 일이 안 풀리거나 힘들 고지 칠수록 더 뛰어 댕겨야 해!” 말로만 들었던 회복 탄력성을 골프장에서, 골프 내공 40년의 해설 위원으로부터 듣고 직접 확인할 줄이야. 

 최민석의 소설 ‘능력자’에서도 아주 흡사한 얘기가 나온다. 3류 소설가 남루한이 돈을 벌기 위해서 전 세계 챔피언의 이력이 있지만 선수 시절에 맞은 뇌의 충격으로 자신 이초 능력자라고 믿는 공평수의 자서전을 쓰기로 한다. 그런데 공평수가 재기를 위해서 어느 외딴섬으로 가는 전지훈련에 따라가게 된다. 단순히 돈에 눈이 멀어 정신 이상자의 자서전을 쓰는 것도 자괴감이 드는데 아무것도 없는 외딴섬으로 간다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처럼 착잡하다. 

‘물론 섬에서의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땅을 치고 하늘에 읍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공평수와 헤드가 첫날 훈련을 한다 했을 때, 정말이지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마음이 무거운 자는 몸까지 무거운 법인지라, 내 발은 천근만근이었다. 앞으로 이 힘든 훈련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어떤 핑계를 대서 빠져나갈까, 아무래도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해야겠지. 그러다가 ‘손가락이 생명인 작가에게, 오른쪽 손가락 뼈마디와 왼쪽 발가락 뼈가 연결되어 있으니 무리해서 뛸 수는 없다.’ 따위의 변명이라도 해야겠지.’

 마음이 무거워 발걸음이 무거워진 것까지는 괜찮다 쳐도 그다음이 더 큰 문제다. 한 번 무거워진 마음과 발걸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가 무거워져서 감당하기 힘겨워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걸음걸이와 이미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굳이 그런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하다. 

 발걸음이 가볍거나 발을 높이 들고 걷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저 사람은 뭔가 좋은 일이 있나 보다.’ 혹은 ‘저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겨도 씩씩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반대로 생기가 없고 무기력하게 발을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을 떠올린다면 뭔가 부정적인 이미지나 심하게 얘기하면 불행을 몰고 다니는 사람 같은 느낌마저 들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그런 이미지가 평판이나 평가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많고, 반대로 좋지 않은 일들도 많이 일어난다. 문제는 좋지 않은 일들이 나를 둘러쌓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뭘 해도 되는 일이 없고, 안간힘을 써도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이런저런 상념으로 고민하지 말고 발걸음부터 바꿀 일이다. 사뿐사뿐 가볍게 걷는 모습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경쾌한 느낌을 주지만 나에게도 한 없이 많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입해 준다. ‘지금을 견디고 나면 반드시 나에게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어려움에 대해서 항상 이겨낼 수 있는 의욕이 넘친다.’, ‘실패한 것이 좌절이 아니라 성장의 밑거름이다.’는 회복탄력성이 다른 것도 아닌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에서 비롯될 수 있다. 발을 올리면 기분도 같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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