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없애는 나만의 부적 만들기
쇼호스트의 수입은 TV홈쇼핑 채널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출연료로 결정이 된다. 방송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입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방송이 많으면 몸이 바빠지고 피곤하겠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커진다. ‘내가 방송이 이렇게 많으니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고, 더불어서 내가 정말 잘 나가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수입이 많은 것보다 더 뿌듯하게 여겨진다. 반대로 방송이 점점 줄어들면 누구나 그렇듯이 조바심이 생기고 불안이 엄습한다. ‘내가 밀려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것 잡을 수 없이 멘탈이 황폐화된다. 사람들이 내가 방송이 없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고, 능력이 떨어진 쇼호스트라는 시각으로 나를 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면 의도치 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고, 방송 때 자신감도 현격하게 줄어든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슬슬 피하게 되고, 약속도 좀처럼 잡지 않으면서 혼자 끙끙 앓게 된다.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심리 상태가 되고 이때부터는 외부 요인보다도 스스로 자신을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더욱 몰아간다. 그리고 끝내는 아무 일도 아닌데 사소한 것 때문에 분노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수입을 떠나서 나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처럼 무서운 게 없다. 굳이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불안감이나 외로움, 분노, 의욕 상실 같은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걸 어떻게든 해소를 하긴 해야 할 텐데…… 쿨하게 이겨 내서 자신감을 회복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면? 다행히 사람은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부정적 감정에 바로 맞서는 정면 돌파로 말이다.
김중혁의 장편소설 ‘나는 농담이다.’에서 부정적 감정을 이겨낼 수 있는 작은 힌트가 나온다. 아마추어 코미디언 송우영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어머니가 이복 형인 이 일영에게 쓴 편지들을 발견한다. 아이를 낳고 다른 사람과 결혼한 후 또 자식을 낳은 어머니가 떨어져 있는 맏아들에게 갖는 감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일영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 속죄의 내용이 구구절절이 담겨있는 편지 들이다. 그런데 직업이 우주 비행사인 일영은 화성 탐사선에 몸을 싣고 난 후 복귀하지 못해 우주 미아 신세다. 그리고 일영의 어머니 정소담은 그 사실을 알고 우주에 떠돌고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일영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 강차연이 있는데, 송우영은 강차연에게 남자 친구 이일영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찬 어머니의 편지를 전해 줄지를 고민한다. 안 그래도 슬픔에 빠져 있는 강차연에게 편지를 주게 되면 강차연은 더더욱 슬픔에 빠지지는 않을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아닐까? 전해주지 않는다면 강차연이 어차피 만나지 못할 이일영을 잊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편지를 전해주러 가면서도 고민하고 있는 송우영에게 여자 친구 제니가 이렇게 말한다.
“보여주는 게 무조건 맞아. 걱정하지 마. 누군가 슬퍼할 거라는 이유 때문에 그걸 얘기하지 않으면 슬픔이 사라질 것 같아? 절대 아냐. 세상에 슬픔은 늘 같은 양으로 존재해. 슬픔을 뚫고 지나가야 오히려 덜 슬플 수 있다고.”
“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기 힘들어요.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기쁠까, 대체 얼마나 아플까.”
“당연하지 바보야. 당연한 거야. 그걸 이해할 수 있다고 떠드는 놈들이 사기꾼이야. 감정은 절대 전달 못 해. 누군가가 ‘슬프다’고 얘기해도, 그게 전달되겠어? 각자 자기 방식대로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진짜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아픈 걸 10퍼센트도 말 못 해. 우린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각자 알아서들 버티는 거야. 이해 못해 준다고 섭섭할 일도 없어. 어차피 우린 그래. 어차피 우린 이해 못하니까 속이지는 말아야지. 위한답시고 거짓말하는 것도 안 되고, 상처받을까 봐 숨기는 것도 안 돼. 그건다 위선이야.”
나에게 들어온 부정적인 감정들도 마찬가지다. 슬픔이든 외로움이든 분노든 불안이든 그 감정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약한 마음에 맞서서 무엇이든 행동해야 한다.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으면 약한 마음은 더더욱 약해지고 스스로를 수렁에 빠지게 한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삶의 어딘가에서 ‘행동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경영 컨설턴트로 유명한 한근태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그가 ‘운(運)’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운(運)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세요? 이 운이란 게요. 한자를 풀어보면 그대로 방법이 나옵니다. 잘 보세요. 차(車) 자가 보이죠? 예전에는 이 글자가 군대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좌변에 辵 辶(갈 착)이 보이죠? 그다음 군대(車) 위에 민 갓머리 갓머리( )가 있습니다. 결국 이런 뜻이에요. 운이란 ‘머리를 써서 군대(車)를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辵, 辶) 하는 것’입니다. 운을 부르려면 무조건 움직이세요. 답답하거나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그리고 슬프거나 화가 나서 좀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지 않을 때는 무조건 낯설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은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래야 새롭고 긍정적인 운(運)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답답하고 운이 없는 사람은 ‘집에 틀어 박혀 있는 사람’이에요.” 부정적 감정이 지어놓은 집 안에만 있으면 들어올 복도 차 버리게 된다. ‘어차피 그래 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내가 이 마당에 뭘 할 수 있겠어. 뭘 해도 안 변할 텐데……’ 이런 생각이 뇌를 좀먹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프로이트도 ‘갈 데 없는 마음의 에너지가 불안으로 연결되기 쉽다.’[i]고 말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한 층 더 불안해지고 마음이 약해진다. 그리고 마음이 유약한 사람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나도 직업이 쇼호스트이고 그전에 사람인지라, 수시로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 때문에 괴롭고 힘들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내 나름대로의 치료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립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어김없이 책과 씨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는다. ‘내가 멍 때리는 시간에 이렇게 열심히 책을 보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는 책을 골라서 책상에 앉아 집중하게 된다.
직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유난히 힘들었던 어느 가을이었다. 날씨는 너무나 예뻤지만 내 마음은 한 겨울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서관을 찾았는데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신달자 선생 특강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말들.’ 평소 성격으로는‘가봐야 별 거 있겠어?’라며 지나쳤을 텐데, 이 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절박한 마음을 품고서 특강 강의장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막상 가니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 특히나 강의장에 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 나보다 연세가 훨씬 높은 ‘어르신’들이었다. ‘그냥 책이나 볼 걸 괜히 왔나……’라는 생각도 컸지만 일단 꾹 참고 신달자 시인의 특강을 들었는데 거기서 진짜로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신달자 선생의 큰 말씀을 들었다.
신달자: “선생님~ 선생님의 대표작은 ‘나그네’인가요?”“제가 이렇게 박목월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박목월: “아이다! 내대표 작은 오늘 밤에 나올 끼다!!”
신달자: “그 이후 ‘오늘 밤’이란 낱말은 나의 살과 뼈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후 나 역시 ‘오늘 밤’에 책을 읽는 날과, ‘오늘 밤’에 글을 쓰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조금씩 부정적인 감정이 활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공격할 때에는 깨질 때 깨지더라도 무조건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내야 한다. 부딪혀 이겨 내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새롭고 낯선 곳으로 일단 움직여라.’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하려 하지 말고, 미리 결과를 생각하지도 말고 무작정 나가서 움직여라. 나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 순간이 운이 극적으로 바뀌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
[i] 쎄 보이는 기술. 니이토 요시히토/신주혜 역. 지식여행. 2016. P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