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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Oct 17. 2021

첫 직장

”누구나 고고하게 살고 싶어해.“

스물여섯 때의 나는 미래를 고민했다.

내가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 아니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던 시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돈 버는 일로 카페 일을 주로 해왔기에 다른 일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어차피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니 한 번쯤은 직장인 체험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금융업을 하는 대기업의 파견직을 지원했다.


면접에서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과 딱 봐도 금융인일 것 같은 분이 함께 나와 이것저것 물었고, 다음 주부터 출근해달라는 말로써 나는 면접과 동시에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내 전에 누군가 뽑혔었는데 그 사람이 인수인계 기간 도중 그만두게 되었고, 그 탓에 전임자 퇴사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을 부랴부랴 뽑아야 했던 것이었다. 세전 150만 원, 9시 ~ 18시 근무, 최장 2년 동안 재직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마저도 3개월 수습 기간으로 일해보고 사측에서 동의하면 1년 단위로 연장하는 거였다.


나는 출근 전부터 2년 후 28살이 된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나 음악으로 돈을 벌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엔 가시성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이곳에 뼈를 묻을 각오로 다니기엔 남는 장사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철분 수치를 넉넉히 유지한 채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눈치 보지 않고 칼퇴를 시행했고, 커리어라던가 전문성 같은 단어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파견직의 입장을 공감하시는지 차장님은 파견 직원들에게 여기서 돈 벌면서 빨리 다른 것들 열심히 준비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알고 보니 면접 때 나온 인상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 차장님이셨다. 정년퇴직을 앞두고 계셔서 그런지 뭐랄까, 이미 인생의 봉우리를 넘어 내려오는 길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분이셨다. 나는 '차장님은 당연히 대졸이시겠지.'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었는데, 언젠가 차장님은 사실 자신이 중졸이라는 얘기를 하셨다. 그때 나는 '그 시절엔 중졸이 대기업에도 들어올 수 있었구나.' 생각했다. 또 차장님은 퇴직하면 시골에 내려가서 살려고 땅도 봐뒀다는 이야기, 2억만 있으면 베트남에서 여유롭게 살 수 있으니 얼른 돈 모아서 베트남으로 가라는 우스갯소리도 종종 하셨다.

'2억만 있으면...'

나는 2억 뒤에 '만'이라는 글자가 붙는다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계속 이렇게 집값이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들이 용돈 달라고 할 때 '엄마 나 2억만.'이라고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2억만이라는 소리가 비로소 자연스럽게 들릴 것이다. 억 소리 나도록 앞뒤 가리지 않고 케이블카에 실려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와 내 친구들은 이제 막 등산로 입구를 묵묵히 걸어 올라가고 있다.


나는 프로세스 운영부에서 각종 사무 업무와 고객들로부터 반송된 카드를 보관하고 폐기하는 업무를 했다. 지금은 친한 동생이자 당시 내 선임이었던 한솔이가 옆에서 잘 알려준 덕분에 문제없이 적응해나갈 수 있었다. 한솔이는 그냥 내가 잘한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도, 한샘에서도, 한솔이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다큐멘터리라 생각했던 내 인생이 자주 시트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평화로운 지겨움 속에서 한솔이와 바보짓을 함께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팀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도급 직원으로 일해볼래요?'


팀장님은 내가 도급 직원으로 일하기를 제안했다. 프로세스 운영부에는 카드 발급기가 있는 별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도급 직원들이 발급 팀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도급직이 되면 다른 업무를 하게 되지만 일하는 시간은 같았고, 무엇보다 월급이 60만 원가량 많다고 했다. 원래는 한솔이에게 먼저 제안이 들어갔었는데 서서 일해야 하는 도급 업무의 특성 탓에 발이 아팠던 한솔이가 나에게 양보한 거였다. 나로서는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듯 때때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선의를 통해 얻은 기회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되고는 한다.


얼마 후 나는 카드 발급기를 운용하는 발행 담당 도급직이 되었다. 일은 단순했지만 까다로웠다. 카드를 신청한 고객들의 정보가 담긴 파일을 선택하고, 카드 자재를 알맞게 집어넣고, 기계를 통과해 나온 카드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글로 정리하니 더 별거 아닌 일 같은데 이 기계가 생각보다 자주 오류가 발생했다. 더구나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카드의 종류와 수량, 순서가 파일의 내용과 맞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발급팀은 각 파트끼리 뭉쳐 다른 파트와 기싸움을 자주 벌였고, 같은 파트원끼리도 텃세를 부린다거나 신경전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것을 조장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는 표현이 아무래도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때도 그것이 본인들의 권력과 관련된 행위라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사람은 이따금씩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보다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림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편이 자기가 발전하는 것에 비해 더 즉각적이고 분명하며, 수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끄집어내 자신의 행위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일도 일어난다. 물론 이것은 나에게도 있는 면모일 것이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떤 환경에서든 내 방식의 최선을 찾으려는 고집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알 수 있었다. 나의 업무에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 다수가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함께 무시하지 않는 것, 그에게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걸어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업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해 주는 것. 그러나 막상 이것들을 실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배울 법한 이토록 평범한 일마저도 나에게는 적지 않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끔은 시류에 휩쓸려 그러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파트별로 협동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오해받을 일은 생겼는데, 사람들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 서로 비난하거나 싸우기도 했다. 기계 소리 때문에 큰 소리를 내도 잘 묻히는 싸우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나는 나에게도 가끔씩 생기는 오해들에 대해 딱히 반박하지도 마냥 기죽어 있지도 않았다. 모두 나보다 연장자들이었으며 그들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오해를 잘 견디는 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군대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단지 내게 정해진 업무량을 충실히 소화했고, 대부분의 형들은 나를 예의 바르고 일 잘하는 놈이라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회식에 참여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다.


한 번은 발급팀 안에서 함께 근무하던 과장님이 나에게 진지하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누구나 고고하게 살고 싶어해. 나도 젊었을 때는 고상하게, 우아하게 살고 싶었어. “

아마 과장님 눈에는 내가 고고해 보였던 것 같다. 


내가 퇴사하던 날 과장님은 2차 회식으로 LP펍에 데려가 술을 사주셨다.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나는 그때 과장님이 까마득한 어린 시절과 꿈을 아직 기억하고 이야기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취기 탓이었는지 기억의 왜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 과장님의 표정이 참 좋았던 걸로 기억되어 있다.


2년 후 나는 한샘에서 일을 하면서 과장님처럼 고고함과는 담을 쌓게 되었다. 책임을 떠넘기려고 작정한 사람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나는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힘주어 말하며 싸워댔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해와서인지 꽤 잘 싸울 수 있었다.


도급직 시절 나를 못살게 굴던 어떤 형은 마냥 나를 싫어한다기보다는 뭐랄까, 나에게 기특함과 고마움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형에게 퇴사 선물로 니트를 받았었는데 나는 그 옷이 작아서 백화점에 들러 다른 옷으로 교환을 했다. 꽤 비싼 옷이었다. 기계가 나보다 비싸니까 조심히 다루라고 이야기한 까칠했던 그 형은 지금 본인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문득 나는 나의 가격이 얼마일까 생각해 보다가 내가 책임지고 싶은 존재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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