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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Oct 24. 2021

싱어송라이터 계약

그리고 얼마 후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으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다.

대기업 금융회사에서 도급 직원으로 일하다 다시 백수가 된 나는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만 만들었다. 3개월 동안 음악을 만들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돌려보고 연락이 안 오면, 그때는 정말 음악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십수 년간의 반지하 생활 덕분에 지하 작업실에서 계속 지내면 골병이 들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나는, 끈질긴 검색 끝에 창문 달린 3층 작업실 방을 월 25만 원에 얻을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단톡방에서 나갔다. 어차피 내 친구들은 대부분 은평구에 포진해 있던 터라 영등포에 얻은 내 작업실로 오는 것을 고사할 녀석들이지만 나름대로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내가 생각나 연락했다는 전화를 한번씩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약한 돈과 시간 속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충분히 익숙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절실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느낄 때 유감스럽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시간을 공유한 대상에게 내 감정이 드러났고 지금은 주체적으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히 하면서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감정의 많은 부분이 해소된다. 시간보다는 덜하지만 돈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가성비 위주 식사를 하던 그때 나에게 한솥도시락에서 사 먹던 돈까스 카레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계란후라이 추가는 소소한 사치였다.


밥 먹으면서 뉴스를 볼 때면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연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가 나오던 시기였다. 내가 온전히 통제하고 있는 작업실 바깥으로 통제력을 잃은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활개쳤다. 나라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라니까 나는 내심, 나만 혼란스러운 건 아니구나 싶어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또 나는 속으로는 당장 나 하나 돌보기도 버겁다고 생각하면서, 밥 먹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 속이 불편한 건지 다른 이유로 속이 불편한 건지 어찌 됐건 무엇이든 편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광화문에 외출을 다녀오곤 했다.


3개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내공이나 기술력은 부족했지만 집요하게 달려들다 보니 음악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나는 마스터링까지 완료된 세 곡을 CD로 구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등기 우편으로 보냈다. 아무래도 이메일로 파일을 보내는 것보다는 실물을 받아보는 편이 더 들어볼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몇 곳에서 연락이 왔다. 수취가 되지 않았다는 우체국의 연락이었다.


다행히 한 군데에서는 진짜 연락이 왔고, 몇 차례 그 회사에 방문해 이야기 나눈 끝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대표님 부부와 직원 3명이 있는 업력이 오래된 곳이었다. 내가 아는 뮤지션들도 몇 있었다. 대표님은 근래 이룬 성과에 자부심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다. 드라마 도깨비의 OST 세 곡을 본인 회사 뮤지션들이 불렀으며 한 곡은 차트 상위권에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대표님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나는 '혹시 나에게도 곧 그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에 나는 그 이전보다 더 열심히 생계를 유지하게 되면서 음악을 쳐다보지 않았다. 노력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도 못하는 총체적 난국의 상태였다. 나는 나를 질책했다. 음악에 시간을 쏟지 못하는 여러 이유만 늘어놓는 내 몸뚱이와 전두엽을 한심하게 여겼다. 그래서 좀 아팠던 것 같다. 그간 내가 노력한 것, 지켜내고 있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자꾸 갖고 싶은 것만 생각하면서 불명확하게 구니까 내 신체 기관들이 그러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일종의 팬데믹 선언을 해주었나 보다.


이제 와 나는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을 자각하며 최대한의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리 없이 찾아올 불행에 나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면서,

내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면서.


그렇다고 내가 음악을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한차례의 팬데믹 후 다시 세워진 질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덕분에 내 하루는 빠듯하고, 치열하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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