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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바벨 Oct 24. 2021

커피 자전거

사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자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싱어송라이터 계약을 하고 음원 발매를 기다리고 있는 시기였다.


수중에 150만 원 정도의 돈이 있었다. 바로 취직을 하기는 싫고, 이 돈으로 뭘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 돈을 벌어보는 경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한 짓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식하고 행동한 건 아니었으나 나는 즐거움과 생존의 균형을 맞춰보는 일종의 실험을 한 셈이다. 한 번쯤 해보고 싶던 카페 창업에 앞서 프로토타입을 개발해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선, 나는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다 푸드 트럭을 떠올렸다. 대충 생각해도 150만 원으로는 어림없었다. 그러다 푸드 오토바이를 떠올려냈다. 역시 어림없었다. 어느새 생각은 푸드 자전거에까지 이르렀고, 그런 게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푸드 자전거를 검색해 보았다. 있었다. 문제가 있었다.


푸드 자전거를 찾긴 찾았는데 제일 저렴한 모델도 200만 원이 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직구는 얼마일까 생각하며 외국 사이트들을 뒤진 끝에 중국 인터넷 쇼핑 사이트인 알리바바에서 마땅한 가격의 물건을 찾았다. 가격은 530달러였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구매하기도 전부터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 타고 도로를 질주하면 사람들이 쳐다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대한민국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자전거가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조만간 나의 조상 문익점의 목화씨 보급 업적의 결을 이어받아 푸드 자전거 보급화에 크게 기여하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거나 둘 중 하나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푸드 자전거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건 내가 부정적인 감정을 깨고 나오는 일에 무의식적인 의무감 같은 걸 가지는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내 사고의 알고리즘은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왜지? 이게 맞아?'를 먼저 떠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랬다. 태생적으로 반골기질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부분이 내가 깊은 시선을 가지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우연히 우아한형제들의 COO 한명수 님의 강연 영상을 보게 되면서부터 나는 질문 방식을 의식적으로 '이거 왜 이래? 이거 언제부터 이랬어? 이거 꼭 이래야 돼?'로 확장해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와 과거, 미래를 모두 고민하게 만드는 좋은 성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음식이 아닌, 내가 좋아하고 익숙했던 커피를 판매하기로 결정하고 푸드 자전거를 커피 자전거로 개조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전제로 놓고 생각해 보았다. 자전거에 업소용 생맥주 타워를 설치한 뒤 미리 만들어 놓은 콜드브루에 질소를 투입해 따라주는 방식으로 장사하는 게 제일 효율적일 것 같았다. 지금은 니트로 커피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당시엔 드롭탑을 제외하고는 판매하는 곳을 찾기 힘들 때였다. 한국에는 정보가 부족해 유튜브와 외국 사이트를 참고하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얼마 후 질소통, 케그, 드래프트 타워, 관련 부속들을 아마존에서 주문한 나는 '이게 맞아?'를 속으로 읊조리며 제발 내가 문제없이 구매한 게 맞기만을 기도했다.


커피 자전거를 만드는 일은 크고 작은 우당탕탕의 연속이었다. 자전거를 530달러 주고 샀는데 관세와 배송비가 30만 원이 넘게 들었고, 자전거가 담긴 상자 부피가 커서 집으로 받지 못해 급하게 자전거 가게를 섭외했다. 질소통은 구매했는데 질소 가스를 충전할 곳을 찾기 어려웠고, 아마존에서 배송받은 제품은 뒤죽박죽 섞여 내가 커피 자전거를 만드는 건지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 건지 헷갈리게 했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었다. 어쩌면 나는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 홀로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을 겪어보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커피 자전거를 준비하던 중에 나는 우연히 '푸드바이크 창업 공모전'이라는 걸 개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벚꽃축제 행사에 참여할 수 있고 제작비 지원도 해준다길래 공모전 지원을 해둔 뒤 행사일 전까지 자전거를 서둘러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고, 완성된 자전거를 뿌듯해하며 제작비 지원 관련 내용을 살펴보던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감지했다.


자전거를 만든 후에 지원금을 받는 게 아니라 지원금을 받아서 자전거를 만들어야 되는 거였다. 나는 그렇게 또 교훈을 하나 얻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사전에 많이 알아두어야 한다는 것. '사전'이 붙은 것들은 다 중요하다. '사전 정보, 사전 예약, 사전 청약.'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나처럼 닥쳐서 준비하다 보면 노심초사 전전긍긍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주최 측에 이미 사비로 제작을 했다고 이야기하니 주최 측은 공모전 당선 전에 구매한 부분은 지원이 어렵고, 당선 이후 제작비에 대해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덕분에 내 커피 자전거는 센터드라이브 모터를 장착한 초강력 전기 자전거가 되어버렸다. 언덕길에 자전거에서 내려 끙끙대며 끌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벚꽃축제 행사에 앞서 테스트 겸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며칠 동안 상암동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판매했다. 질소 가격을 감안하면서 싸지도 비싸지도 않다고 느낀 3000원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그리고 마침내 장사를 시작한 나는, 어찌됐건 카페인데 호객 행위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독서를 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지라 책이 술술 잘 읽혔다. 그러니 누군가 독서에 집중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번 시도해 보시길 추천한다. 다만 시기는 잘 선택해야 한다. 당시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아 쌀쌀했던 터라 손이 얼어 책 페이지를 2장씩 넘기기 일쑤였다.


다행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나의 요상한 행위 예술에도 찾아와 주신 손님들이 있었다. 아마도 요상해서 찾아왔거나, 나를 응원해주고 싶어 찾아왔거나,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진이거나 하지 않았을까. 사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자생을 응원하고 있었다. 단지 방법이 좀 서투를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의 서툰 장사를 마치고 번 돈을 시급으로 계산해보니 최저시급에 조금 못 미쳤는데, 지금의 나 같으면 매출을 높일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개인 업장들에 이벤트성 협업을 제안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의 나는 그런 것에 둔감했다. 분명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강했으면서도 말이다.


이윽고 열린 벚꽃축제 행사에서도 모든 푸드 자전거는 법적인 문제로 영리 행위를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자전거 도로에서의 합법적 판매 행위를 위한 제도 개선 또한 실효성이 부족했다. 주무관이며 도지사며 다들 고무적인 말을 했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고무고무처럼 잠깐 길게 늘어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성질을 가진 말인 것 같았다.


그보다 나부터가 문제였다. 당시 여자친구와의 관계, 꿈, 생계, 직업 같은 것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시기를 정통으로 맞고 있던 나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자주 생각했다. 떠날 돈은 없었다. 매달 최소 150만 원 이상은 벌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돈 생각을 할 때면 자꾸 힘이 빠지곤 했다. 그러나 늘 해결책을 찾아냈던 나는 그날도 어떤 방법을 떠올렸는데, 그건 제주도에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제주도 갈치구이 식당, 월급 250만 원, 숙식 제공.'


나는 '이거다.' 생각하며 그곳에 지원했고 얼마 후 제주도에 내려가게 되었다.


커피 자전거는 중고 거래 카페에 올렸다. 자전거를 만들 때 '잘 안되면 중고로 팔고 취직하지 뭐.'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로 잘 안됐고, 취직을 했으며, 중고로 팔면서 셋 다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어쨌거나 가장 놀라운 건 나처럼 커피 자전거를 구매하는 누군가가 대한민국에 또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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