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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bada Nov 23. 2016

모네 생각

Le 24 Avril 2015

  튈르리(Tuileries)와의 첫 만남. 한때는 왕과 귀족들만의 공간이었던 이곳이 현재는 파리 사람들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쭉 뻗어 있는 가로수와 그 길에 놓인 분수대. 푸른 잔디, 그리고 그것과 너무 잘 어울리는 녹색 의자들. 날 좋은 날 몇 시간이고 가만히 녹색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은 공간.

 파리에 도착한 이후 내내 좋던 날씨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좋은 날씨를 핑계로 튈르리 정원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약간의 허기짐은 그 날 오전 마트에 들려 사 들고 온 물과 커피, 그리고 샌드위치 하나로 충분했다.



 무슨 생각을 했던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그런 여유는 오랜만이었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기에 조금 어색해했던 것 같다. 튈르리 정원 곳곳의 녹색 의자엔 가족들, 커플, 친구들, 혹은 혼자 온 이가 앉아 있었고, 나는 어색함에 조금 그들을 의식했던 것도 같다.  ‘어색하다’라는 말 속엔 불편함이 들어 있지만, 그날 내게 ‘어색하다’라는 말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았다. 그날 날씨만큼이나.



 줄곧 모네를 생각했다. 파리에서 가장 기대되고 가고 싶은 미술관은 그래서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이었다. 책과 영상에서 숱하게 봤지만, 모네의 마지막 수련을 실제로 꼭 보고 싶었다. 튈르리 정원에서 햇살을 맘껏 느낀 후, 모네를 만나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갔다. 모네를 만나기 전, 두근거림을 아껴두려고 지하에 있는 다른 작품들을 먼저 찾았다. 먼저 만난 인상파 화가 작가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고 감탄하는 와중에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모네를 계속 생각했다. 


 잠시 후, 나는 모네의 수련을 마주했고, 그의 작품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천장으로 들오는 햇빛에 지베르니의 호수가 일렁이고 수련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 거대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네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나는 그 작품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졌다. 


 그러다 폐관시간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는 모네의 수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그의 작품을 바라보며 한없이 앉아 있었다. 미술관 관리인이 이제 관람 시간이 끝났다고 다시 한 번 알려줄 때까지. 한없이 앉아 있고 싶었는데, 아쉬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꼭 날 좋은 날에 가야 한다. 흐린 날 가면 모네의 수련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모네가 애초에 그림을 그릴 때 자연광에서 그림이 제대로 빛을 낼 수 있도록 그린 탓이다. 미술관도 그에 맞게 지어졌다.  모네에 의한, 모네를 위한 미술관. 그곳에서 만난 모네를 여전히 아직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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